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산9
[李庄家(이장가) 가족 묘역 재실]
묘역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재실 李庄家(이장가)
[李庄家(이장가) 현판]
[李庄家(이장가) 솟을 삼문 전경]
답사를 다니다보면 문이 닫혀 있는 곳이 많아서
활짝 열린 李庄家(이장가) 솟을 삼문이 반갑다.
[南齋(남재) 현판]
[南齋(남재) 전경]
이장가 솟을 삼문을 들어서면 곧장 보이는 재실 南齋(남재)
[좌측옆에서 담은 南齋(남재) 전경]
[남재와 정자 그리고 솟을 삼문]
[우측옆에서 담은 南齋(남재) 전경]
관리가 잘 된 이장가 재실 건물이 자꾸만 사진을 찍게 만든다.
[월성이씨 문중 묘역]
[묘역 앞 재각으로 오르는 돌계단]
이상화는 시인으로 호는 尙火(상화)이며,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17년 고향에서 현진건, 백기만, 이상백 등과 습작을 모아서 ‘拒火(거화)’라는
표제로 프린트판을 내었으며, 1922년 1월 홍사용, 박종화, 나도향 등과 함께 문예지
‘백조‘를 발간, 그 창간호에 ‘나의 침실로’를 발표했다.
[입구에서 담은 齋閣(재각) 전경]
무덤이나 사당 앞에,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
[재각 우측 앞쪽 비각과 비 전경]
이어서 ‘말세의 희탄’, ‘가을의 풍경’ 등
당시의 퇴폐적인 풍조를 나타내는 시를 쓰더니, 1926년 ‘개벽’지
6월호에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여
신경양파에 속하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정면에서 담은 재각 전경]
1930년 이후로는 시를 쓰지 않았으며,
그의 시들은 백기만 편 ‘상화의 고월’에 실려 있고,
1948년 동향 출신 시인 김소운의 발기로 대구 달성공원에
우리나라 최초의 상화 ‘詩碑(시비)’가 세워졌다.
[묘지 약력을 적은 碑(비)와 비각]
[묘지 약력]
[묘지 약력 뒷면]
[이장가 世葬壇(세장단) 전경]
[李一雨(이일우) 頌德碑(송덕비) 전경]
[李一雨(이일우) 頌德碑(송덕비)]
이일우 선생은 교육기관인 우현서루를 세워, 박은식, 장지연
‘일제에 항거하는 글귀인 시일야방성대곡 저’등을
키워냈으며 항일 투쟁에 매진한 인물이다.
이상화 시인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면서
큰 아버지인 이일우 선생이 그를 거두어 키웠습니다.
아마 그의 큰 아버지가 이상화 시인을 민족 시인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라 합니다.
[좌측에서 담은 이장가 가족 묘역 전경]
묘소들이 운집해 있는 우측 제일 윗부분에 이상화 시인의 묘소가 있습니다.
[묘역 전경]
[우측에서 담은 이장가 가족 묘역 전경]
[우측 첫번째 묘 이상백 묘]
IOC 위원으로 활동한 이상백 박사 묘와 묘비
[우측 첫번째 묘비와 묘 이상화 시인의 묘]
이상화 시인의 묘 옆에는 그의 부인이었던
달성 서씨(베로니카)의 묘소가 있었으며, 왼쪽에는
독립운동가였던 그의 형 이상정 선생님의 묘도 있습니다.
[이상화 묘와 묘비]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암흑가의 민족 시인이자 민중 시인, 저항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민족시인 이상화 墓碑(묘비)]
民族詩人李公相和之墓(민족시인이공상화지묘)라 새겨져 있다.
[이상화 묘비 뒤면]
뒷면 묘비에 적힌 글 내용중에 옮겨적어 봅니다.
이상화는 부친 이시우 모친 김신자여사의 차남으로 출생
이들 4형제를 두고 세인들은 龍鳳麟鶴(용봉인학)이라 불렀다 한다.
龍(용, 상정 독립운동 중장) 鳳(봉, 상화 민족시인),
麟(인, 상백 문학박사 IOC 위원) 鶴(학, 상오, 수렵인 문필가 사격협회장)
慕南(모남) 李相旿(이상오, 수렵인 문필가 사격협회장)
정통수렵인으로 수렵, 야생동물, 개 등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바둑 유단자이기도 하였다.
저서로 ‘한국야생동물기’, ‘사냥’, ‘수렵비화’와
신문연재물로 ‘세계명포수전’, ‘축견야화’ 등이 있다.
[상화시인과 그 형 상정 묘비와 묘 전경]
[이상정 장군 묘비]
愛國志士李相定將軍之墓(애국지사이상정장군지묘)라 새겨져 있다.
[이상정 장군 묘비 뒷면]
[묘 뒤 좌측에서 담아 본 전경]
[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가족 묘역에서 담은 재각 전경]
[묘역을 둘러본 후 내려오며 담은 이장가 재실 전경]
오래전부터 이상화 시인의 묘에 다녀오고 싶었다.
이상화 고택과 달성공원에 세워진 그의 시비(우리나라 최초)
두류공원의 시비 등은 다녀왔지만, 그가 잠들고 있는 묘에는 들리지
못하였는데, 마침 ‘상화 기념관. 이 장가 문화관’ 개관을 하였다는 뉴스와
신문을 보고 상화 기념관. 이 장가 문화관에도 들릴 겸 그곳 가까이에 있다는
묘에도 들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들리게 되었다.
오래된 숙제를 풀은 듯 마음이 가뿐하다.
혹 기념관을 들러보시고 싶으시다면 요기 클릭하셔서 들러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