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33
[대구 근대 전시관 전시실 입구 전경]
[입구 정면에서 담은 1층 전시실 전경]
[입구에서 담은 안네 데스크 쪽 전경]
[조선식산은행]
조선식산은행은 일제 식민지 경제정책에서 금융 지배를
담당했던 핵심기관이었으며 1918년 조선식 은행이 설립되자
경상 농공은행이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개편되었다.
조선식산은행 대구 지점 금고에
당시 사용되었던 은행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식산은행 내부 전시물]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안내 글 내용]
[조선식산은행 내부 전시된 자료]
[조선식산은행 내부 전시된 자료]
[근대의 태동]
대구는 선조 34년(1601) 경상감영이 설치된
이후 경상도의 행정. 사법. 군사 중심지였다.
그러나 일제 침략 이후 대구 도심은
일본인 중심의 상권으로 변모되었다.
전시 문안, 모형. 영상을 통해 일제 내륙의
침탈의 거점으로 변모된 뒤 근대도시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00년대 초 경상감영 모형]
[관풍루 잡상]
雜像(잡상) :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놓이는 瓦製(와제) 土偶(토우)
장식 기와의 하나로서, 이를 만드는 사람을 雜像匠(잡상장)이라 한다.
[전시실 내부 전경]
[역사 연표실]
대구부로 개편된 대한 대한 제국부터 현재까지 대구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하여 시각 자료와 영상 자료로 설명하고 있다.
[1870(조선 말기)~1920년]
[1930년~2010년]
[근대를 향한 기적소리-대구역 설명 글 내용]
[근대를 향한 기적소리. 대구역과 버스 승강장 전경]
[부영 버스 영상 체험실]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내버스를 도입하여 운행하였다.
대구 부가 운영했던 버스 ‘府榮(부영) 버스’를 타고 영상물을 보면
대구 근거리를 체험할 수 있다.
부영 버스는 5개 노선이 있었는데,
본 체험 영상은 4호선을 기준으로 제작하였다 합니다.
안내양의 목소리도 들으며, 그 옛날 추억을 떠올려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전시실 내부 전경]
[사라진 대구읍성]
영상으로 보여주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대구읍성 돌]
대구읍성 축성 때 사용된 성 돌이라 합니다.
[전시실 내부 전경]
[‘대구’ 술병(大邱酒甁)]
[일제강점기 대구의 통치. 억압기구, 전시체제의 대구와 일제의 전시 수탈]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 대구]
1907년 대구의 서상돈이 중심이 되어 시작한
국채보상운동과 1960년 4.19민주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던 2.28학생 운동 등을 시각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실 내부 전경]
[대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영상과 홀로그램으로 역사를 말하다.]
[전시관 내부 전경]
이곳은 대구의 근대미술, 음악, 문학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 주제는 ‘대구, 대한민국 문학의 금자탑을 세우다’,
‘대구, 대한민국 미술계의 터전을 다지다’,‘ 대구, 대한민국 음악계의 산 역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6.25 전쟁과 대구]
[2.28 민주운동]
[근대교육의 산실 대구]
[음악]
[미술]
[전시된 자료와 사진]
고종 32년(1985) 교육입국 조서가 발표된 후 대구에서도
광무 3년(1899) 달성 학교를 비롯하여, 계성학교(1906)
신명여학교(1907) 등 종교계에서 설립한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민족교육과 계몽운동이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교육 관련 자료인 학습지도안, 졸업기념첩, 교과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자료와 설명글]
[사진자료와 설명글]
[蓄音機(축음기), 대구아리랑 레코드 판]
원반에 홈을 판 레코드판에 소리를 녹음하고
바늘을 사용하여 소리로 재생시키는 장치이다.
축음기의 레코드판은 대구 아리랑이다.
대구아리랑 음반
‘대구아리랑’의 음반은 1936년 9월 가야금 병창인
최계란이 불렀으며 ‘밀리언 레코드’ 사에서 발매하였다.
애수 깊은 정서를 담은 대구아리랑의 발견으로
지역에서도 아리랑의 존재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아리랑]
가야금 명창인 최계란이 부른 ‘대구 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다.
[竹筍(죽순)]
대구에서 창간된 국내 최초의 시 전문지인 ‘竹筍(죽순)’
1946년 5월 창간하여 1949년 7월 통권 11호로 종간했다.
대표는 이윤수이다.
50쪽 안팎으로 대구의 죽순 구락부에서 발간했으나
동인뿐만 아니라 당시 영남 지방의 기성 시인 대부분이 참여했다.
논문. 시. 수필. 잡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간호에 이윤수의 시 ‘竹筍(죽순), 이영도의 시조 ‘除夜(제야)’,
이호우의 ‘春恨(춘한)’, 박목월의 ‘봄비’, 박영호의 ‘먼 길’ 등이 실렸다.
[유물로 보는 향토 생활 인력거]
인력거는 1890년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는데
주로 관리, 부자, 기생 등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대구에서는 역전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1920년대 당시 요금은
부내 5정이내 30전 내외(쌀 한 되 약 39전)로 매우 비싼 편이었다.
인력거는 주인의 심한 폭압과 멸시를 참아가며
끌어야 했던 가난한 한국인들의 생계수단 중 하나였다.
[학창생활]
[전시된 자료]
개항 이후 서구문물의 수용과 더불어
지역민들의 삶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시계, 라디오 등 새로운 생활품들이
들어와 일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화, 시계, 라듸오 등]
[근대 상업도시, 대구. 삼성, 대구에서 성장하다]
대구에서 성장한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과
근대산업도시, 근대 상업도시, ‘박정희와 대구’ 등의
자료를 통해 근대 대구의 발전상을 살펴볼 수 있다.
[순종황제. 헬렌 켈러. 메릴린 먼로]
우측부터
메릴린 먼로 위문 공연(1954년 2월 19일)
헬렌 켈러의 대구방문(1937년 7월 12일)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 대구 방문(1909년 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