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학관(문학 살롱)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449

20180119_140405[문학 살롱 안내판]

오늘은 문학 살롱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명사님과의 만남의 시간도 가지시구요.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80202_142448[입구에서 담은 문학 살롱 전경]

이곳을 소개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들렸습니다.
먼저 담아온 사진이 미흡한 것 같기도 하고 사진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두 번의 발걸음이 제겐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참 좋으신 분을 만나 행복했답니다.
고왔던 그 인연은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문학 살롱 소개합니다.^^

20180202_142834a[문학 살롱 안내 글 내용]

20180202_142457[문학 살롱]

문학 살롱에 자리하고 계시는 문인님을 소개합니다.
앞쪽부터 차례로….

20180202_142517[趙芝薰(조지훈, 1920~1968) 시인]

본관은 漢陽(한양). 본명은 趙東卓(조동탁).
1939년 4월 ‘文章(문장)’지에 시 古風衣裳(풍의상)’이 추천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39년 11월 僧舞(승무)’, 1940년 鳳凰愁(봉황수)’를 발표함으로써 추천이 완료되었다.

20180202_142522[申瞳集(신동집, 1924~2003) 시인]

1924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
1948년 대학 재학 중 시집 ‘대낮’을 간행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정의 유형’(1954)으로 1955년 자유문학상을 받는 등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서정의 유형’, ‘제이의 서시’ 등이 있다.

20180202_142623[爾豪愚(이호우, 1912~1970) 시인]

본관은 慶州(경주). 아호는 본명에서 취음하여 爾豪愚(이호우)라 하였다.
경상북도 청도 출신

19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落葉(낙엽)’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1940년 ‘文章(문장)’지  6. 7호 합병 후에 시조 ‘달밤’이 李秉岐(이병기)의
추천을 받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20180202_142633[李潤守(이윤수, 1914~1997) 시인]

경북 대구 출생. 호 石牛(석우).
대한민국 최초의 시전문지 ‘竹筍(죽순)’ 창간했다.
초창기 유치환, 박목월, 이호우, 이영도 등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다.

‘죽순 시인 구락부’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며
1948년 김소운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시비인 尙火(상화) 시비를
대구 달성공원에 건립하고 이상화 선생 추모사업회 결성을 주도하는 등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20180202_142642[具常(구상, 1919~2004) 시인]

1946년 ‘원산 문학동맹’에서 펴낸 동인 시집 ‘응향’
‘길’, ‘여명도’, ‘수난의 장(章)’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56년 시집 ‘焦土(초토)의 시’를 펴냄
피난지에서 첫 시집 ‘구상 시집’을 펴내 ‘응향’ 필화 사건으로
꺾일 뻔한 문학적 소망까지 이룬다.

20180202_142648[李永道(이영도, 1916~1976) 시조시인]

경상북도 청도 출생. 호 丁芸(정운). 시조시인 李鎬雨(이호우)의 누이동생이다.

1945년 대구의 문예 동인지 ‘竹筍(죽순)’
‘除夜(제야)’를 발표하면서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조집으로 ‘靑苧集(청저집)’(1954). ‘석류’(1968)가 있고
수필집으로 ‘春芹集(춘근집)’(1958). ‘비둘기 내리는 뜨락’(1966).
‘머나먼 思念(사념)의 길목’(1971) 등이 있다.

20180202_142652[李孝祥(이효상, 1906~1989) 시인]

정치인, 교육자, 철학자, 시인이다.
제5~7대, 제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1963년 12월부터 1971년 6월까지는 7년 6개월간
국회의장(6대~7대)을 역임했다.
이는 역대 국회의장 중 최장 재임기간이다.

1936년 ‘가톨릭청년’지에 ‘기적’이라는 시를 발표하여 등단한 후
많은 작품, 특히 문학과 관련된 연구논문 등을 발표하였다.

20180202_142655[吳相淳(오상순, 1894~1963) 시인]

1920년대 ‘폐허’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인생의 허무를 주로 노래한 시인이다.
본관은 해주. 호는 공초. 선운. 성해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다.

그의 시에는 ‘허무, 폐허, 태고, 원천’ 등의 생경한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며, 허무적,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해방 후 시 ‘항아리’, ‘해바라기’를 발표해 민족적 염원과 정서를 노래하기도 했다.

20180202_142543[고인이 되신 작가님과 함께]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귀한 인연이 되어주신
수필가 김영희 님께서 기념사진을 담아 주셨다.

20180202_142707[바다 출판기념회 자료 사진]

20180202_142714a[전시된 자료]

1951년 초판 李孝祥(이효상) 한솔 시집 바다
골초셨던 吳相淳(오상순) 시인의 평소 피우시던 솔 담배와 안경 등

page[전시된 자료]

page-1 [전시된 자료]

page-3[전시된 사진 자료]

20180202_143115a[7인 합동 출판기념회 기념사진]

1949년 2월 5일 경복장에서 열린 해방 후 최초의 7일 합동 출판기념회
이효상(산), 이설주(들국화), 신동집(대낮), 김성도, 박목월, 윤백, 황윤섭(청과집)

20180202_142842[전시실 내부 자료]

20180202_142850[전시실 내부 자료 전경]

20180202_142937[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

20180202_142907[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 앞에서]

또다시 담아 준 기념사진
찍어준다기에 무조건 섰지요. 얌전하게~ㅎㅎ

20180202_142930[대구역]

20180202_142945[향촌동]

20180202_142951[한국은행]

20180202_142957[육사 시집]

20180202_143010[육사 시집]

20180202_143010a[산 / 이육사]

20180202_143017[신동집 시집]

20180202_143022[대구의 뒷거리]

20180202_143031_HDR[?]

20180202_143121a[날이 갈수록 / 박훈산(1950)]

20180202_143129[다시 담아 본 문학 살롱 내부 전경]

문학 살롱 소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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