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관찰사 및 대구 판관 선정비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길

20180202_145219[경상도 관찰사 및 대구 판관 선정비 전경]

경상감영공원에는 경상도 관찰사, 대구 도호부사,
대구 판관 등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29기의 선정비가 있다.

20180202_145230[경상도 관찰사 및 대구 판관 선정비 설명 글]20180202_145238[앞쪽에서 담은 경상도 관찰사 및 대구 판관 선정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180202_145246_HDR[관찰사 李敬與(이경여) 거사비 / 인조15년(1637)]

20180202_145253_HDR[관찰사 具鳳瑞(구봉서) 청덕선정비 / 인조18년(1640)]

20180202_145259_HDR[관찰사 閔蓍重(민시중) 영세불망비 / 현종 10년(1669)]

20180202_145302[관찰사 李彦紀(이언기) 청덕선정비 / 숙종 22년(1969)]

20180202_145307[관찰사 洪禹寧(홍우녕) 영세불망비 / 숙종 40년(1714)]

20180202_145311[관찰사 金始烱(김시경) 영세불망비 / 영조 8년(1732)]

20180202_145316[관찰사 閔應洙(민응수) 영세불망비 / 영조 11년(1735)]

20180202_145321[관찰사 閔應洙(민응수) 무휼승도비 / 영조 11년(1735)]

20180202_145327[관찰사 李箕鎭(이기진) 영세불망비 / 영조 14년(1738)]

20180202_145332[관찰사 尹光顔(윤광안) 영세불망비 / 순조 6년(1806)]

20180202_145347[관찰사 鄭晩錫(정만석) 영세불망비 / 순조 9년(1809)]

 

20180202_145343[관찰사 金會淵(김회연) 영세불망비 / 순조 10년(1810)]

20180202_145353[관찰사 洪在喆(홍재철) 거사비 / 현종 6년(1840)]

20180202_145358[관찰사 金學性(김학성) 거사비 / 철종 5년(1854)]

20180202_145402[관찰사 金世均(김세균) 영세불망비 / 철종 11년(1860)]

20180202_145408[관찰사 李根弼(이근필) 거사비 / 고종 15년(1878)]

20180202_145413[관찰사 趙康夏(조강하) 불망비 / 고종 20년(1883)]

20180202_145419[관찰사 南一祐(남일우) 영세불망비 / 고종 22년(1885)]

20180202_145423[관찰사 金明鎭(김명진) 불망비 / 고종 25년(1888)]

20180202_145431[관찰사 趙漢國(조한국) 송덕비 / 고종 35년(1898)]

20180202_145436[대구도호부사 鄭經世(정경세) 영세불망비 / 선조 40년(1607)]

20180202_145442[대구판관 韓配周(한배주) 선정애민비 / 숙종 34년(1708)]

20180202_145447[대구판관 金箕絢(김기현) 영세불망비 / 헌종 12년(1846)]

20180202_145454[대구판관 趙冕夏(조면하) 거사비 / 고종 15년(1878)]

20180202_145501[대구판관 趙弼永(조필영) 영세불망비 / 고종 22년(1885)]

20180202_145508[대구판관 李聖烈(이성열) 송덕비 / 고종 23년(1886)]

20180202_145513[대구판관 金榮灏(김영호) 청덕비 / 고종 32년(1895)]

20180202_145518[대구판관 兪命岳(유명악) 청덕선정비 / 숙종 39년(1713)]

20180202_145523[관찰사 兪拓基(유척기) 위국혜민비 / 영조 2년(1726)]

20180202_145537[끝에서 담은 경상도 관찰사 및 대구 판관 선정비]

대구향교를 비롯해 각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선정의 현장인 경상감영공원에 옮겨 놓았다 한다.

20180202_145558[碑(비) 옆 우물과 장독대]

‘이 문 앞에 서 있는 건
개꼬리 木碑(목비)요
동구 밖에 서 있는 건
수렁밭 목비라’ / 비석 타령의 한 구절

감사나 원이 부임하면 개가 주인 보고 꼬리를 흔들 듯
아부하고자 세우는 게 ‘개꼬리 목비’이고 감사가 오면 급조한
송덕비를 수렁 속에 넣어서 오래된 것처럼 위장한 것을 ‘수렁밭 목비’
하는데, 이렇게 비아냥 거리가 된 송덕비처럼 각 지역에 즐비한 많은 송덕비들이
실질보다는 허세에 치우쳤다는 말이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실제로 선정을 베풀어
그 고마움에 세운 비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곳에 옮겨 세운 비는 선정을 베풀어서 세운 비라 생각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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