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 101-11 대구은행(북성로지점)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우현서루 옛 터) 전경]
우리나라 최초의 항일운동 대구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또 이후 각계에서 일어난 항일운동가 상당수
키워낸 곳이 바로 友弦書樓(우현서루)였으며, 현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
자리가 友弦書樓(우현서루) 자리였다 한다.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하고 의기를 기르는 곳’
대구 북성로 공구상가가 즐비한 골목을 나와 마주한 사거리에 섰습니다.
[은행 앞 소남 이 일우와 태극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일제에 저항했던
이상화 시인의 할아버지 이동진 선생이 을사늑약 한 해 전인
1904년에 友弦書樓(우현서루)를 지었고, 이상화 시인의 큰아버지인
小南(소남) 李一雨(이일우) 선생이 이일우 선생이 이곳을 운영하였다.
[태극기와 태극기의 의미풀이 글]
[小南(소남) 李一雨(이일우)]
友弦書樓(우현서루) 는 1911년 강제폐쇄 때까지
新知識(신지식) 보급은 물론 抗日(항일) 지식인의 사랑방이자
학숙으로 대구 抗日(항일)운동의 산실이자 애국지사의 양성소였다.
[정면에서 담은 友弦書樓(우현서루) 안내판 전경]
[뒤쪽에서 담은 友弦書樓(우현서루) 안내판 전경]
앞쪽이나 뒤쪽이나 안내판 글 내용은 같았다.
행여 앞쪽만 보고 지나치거나, 아니면 뒤쪽만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서, 앞 뒤로 같은 내용을 안내글을 적어놓은듯…
[우현서루 안내글 내용]
언론인 장지연, 독입운동가 박은식,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일본에서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 등 주요 인물만도 150여명이었다.
[우현서루 외국어 안내판 전경]
[우현서루 외국어 안내판 글 내용]
근래에 이동진 선생의 큰 아들인 소남 이일우 선생의 고택에서
이 우현서루가 일제에 의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강제 폐쇄’가 아니라
‘강제 매각’ 되었다는 걸 밝힐 수 있는 등기등본과 근저당 포기 증서 등이 발굴되었다 합니다.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내의 우현서루 옛 터]
은행 한쪽에는 우현서루 옛터 자리를 알아 볼 수 있게 우현서루와
관계된 자료 등을 벽면에 붙어 놓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좌측부터 순서대로 사진과 자료들을 소개합니다.
[민족의 정기가 서런 터 우현서루]
[1904년 友弦書樓(우현서루)]
이동진(이상화 조부)선생이 사재로 창설하여 그의 장자인
이일우(이상화 백부)선생이 운영하였다.
서재필, 송준필, 박승조, 김용선 등 150여명의 우국지사들이
이곳을 거쳐간 민족지사 양성소 였으며, 이상화의 백부 이일우 선생은
이들의 공부를 돕기 위하여 중국등에서 일만여권의 서적을 수입 비치하였다.
우현서루는 초등학교 교실 2배 가량의 한옥본관과 서고,
소남 이일우 선생의 소유인 생사공장 및 사택등으로 되어 있었으며
현재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은 우현서루의 남동쪽 일각에 해당된다.
1911년 강제폐쇄 때까지 전국에서 지식을 갈망한 백성들이 찾았는데,
신지식 보급은 물론 항일 지식인의 사랑방이자 항일 계몽사상 전파처였습니다.
언론인 장지연, 독입운동가 박은식,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일본에서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 등 주요 인물만도 150여명이었습니다.
그는 우현서루 폐쇄 뒤에도 강의원(講義院)이란 고급 서당과
학교 운영등올 대구 변혁에 나섰으며, 그의 활동은 조카인 저항시인
이상화 네 형제와 숱한 대구 출신 문인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소남 이일우 선생. 이상화 선생]
[교남학원 1921]
1911년 일제의 우현서루 강제 폐쇄이후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이일우는 강의원과 애국부인회를 만들어 무료 교육기관으로 사용하였으나,
다시 일제에 의해 폐쇄되고, 1921년 홍주일, 김영서, 정운기 등이
우현서루에 교남학원을 설립하여 우현서루의 정신을 계승하였다.
당시 교사로 재직중이던 ‘이상화’ 와 당시
학생이었으며 시인 독립운동가인 ‘이육사’를 배출하였다.
[해조 신문]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크의 한글 동포신문
‘해조신문’은 4월 22일 대구 ‘우현서루’를 소개했습니다.
조선 패망 전 우현서루가 국내 제일 완고한 영남풍습을
바꾸려 어떤 일을 하는지를 동포에게 알리는 글이라 합니다.
[대륜학교 현판식]
1904년 10월 교남학원에서 교명을 대륜학교로 변경.
[현 대구은행 북성로지점]
[민족시인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詩 전경]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일제에 저항했던 이상화 시인의
할아버지 이동진 선생이 을사늑약 한 해 전인 1904년에 우현서루를 지었고,
이상화 시인의 큰아버지인 이일우 선생이 이곳을 운영했답니다.
[다시 담아 본 우현서루 자료 전경]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우현서루 옛 터) 전경]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 건물 외벽에 설치된 조형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우현서루와 이일우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라는 말을 우현서루 소개를 마치며 떠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