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전라남도 장성군 영천리 430-2
전라남도 기념물 제241호
[고경명 신도비각과 안내판 전경]
제봉 고경명 묘소로 가는 길에 만난 그분의 신도비
잠시 주차를 한 후 담아 소개합니다.
[장성 고경명 신도비 안내판 글 내용]
[장성 고경명 신도비 안내판 영문 글 내용]
[고경명 신도비각 전경]
神道碑(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 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제봉 高敬命(고경명 1533~1592)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로, 1800년대 초에 건립되었다.
귀부와 가첨석(지붕돌)을 갖추고 있으며, 높이는 238cm에 이른다.
[고경명 신도비와 비각]
비문은 1608년(광해군 즉위 년) 당대의 문장가였던
월정 尹根壽(윤근수 1537~1616)가 지었고, 글씨는 고경명의 7대손인
수촌 高廷鳳(고정봉 1743~?)이 썼다.
[신도비 앞면 전경]
고경명의 행적은 물론 조선시대 제도사와 지방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석으로,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오동촌에 있다.
신도비의 龜趺(귀부)가 정면을 보고 있지 않고,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 바라보고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신도비의 머리 부분인 螭首(이수)]
보통의 신도비에는 대게 용머리가 새겨져 있는데,
고경명의 신도비에는 화려한 용머리 대신 소박한 螭首(이수)가 얹혀 있다.
[신도비의 몸체 碑身(이수)]
몸체인 碑身(이수) 부분에는 신도비의 주인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한다.
[이수와 비신을 받치는 龜趺(귀부)]
거북 받침돌 위로 비 몸을 새기고 높직한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거북의 머리는 왼쪽을 향하고 있다.
[신도비 뒤면 전경]
고경명 신도비는 2008년 9월 19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41호로 지정되었다.
장흥 고씨 충렬공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신도비각 옆 전경]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임금을 지키려고 의주로 가던 중 금산 전투에서 아들 인후와
유팽로, 안영 등과 더불어 순절했다.
자세한 얘기는 내일 소개할 고경명 묘에서 말씀드리기로 하고
그분이 남긴 시조 한 수로 대신할까 합니다.
청사검 둘러메고 백록을 지즐타고
부상 지는 해에 동천으로 돌아드니
선궁에 종경 맑은 소리 구름 밖에 들리더라 / 高敬命(고경명)
데레사
2018년 7월 4일 at 8:40 오전
지금 사람들은 전쟁나면 도망가기 바쁠걸요.
옛 선인들에게 부끄럽게도 지금 우리는 국가관이 무너지고
있어요.
뭘 해볼려고 해도 다음정권에서 또 어떻게 심판받을지
모르니…
초아
2018년 7월 4일 at 7:56 오후
그게 한심하다는거죠.
어쩌자고 우리들에게 불신만 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옛 어르신님들이 그립습니다.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가족보다는 나라를 먼저 챙기셨는데…
요즘은 만약 그런일이 생긴다면 언니 말씀처럼
도망가기 바쁠것 같아요.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이라 생각하는 것 부터 정치인들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