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장흥 고씨 의열공 학봉 신도비 전경]
鶴峯(학봉) 高因厚(고인후, 1561~1592)
본관 長興(장흥). 자 善健(선건), 호 鶴峯(학봉).
형조좌랑 高雲(고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 호조참의 高孟英(고맹영)
아버지 의병장 高敬命(고경명), 어머니 金百鈞(김백균)의 딸이다.
형은 의병장 高從厚(고종후)이다.
고경명의 아들이자 권율 휘하의 장수였다.
[장흥 고씨 의열공 학봉 신도비 전경]
아버지 의병장 高敬命(고경명) 그에게는
종후, 인후, 준후, 순후, 유후, 용후 등 아들 여섯이 있었다.
이 가운데 문과 급제자인 장남 종후는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으며,
차남 인후 역시 문과 급제자인데 아버지와 함께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장흥 고씨 의열공 학봉 신도비]
鶴峰(학봉)은 高因厚(고인후)의 호이다.
시호가 毅烈(의열) 이어서 그 문파를 ‘의열공파’라고 한다.
정조 10년(1786)에 고인후 부조를 명 받았다.
불천위 제례를 모시고 있는 종가로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를 기리는 신도비가 종택 근처에 세워져 있다.
저서로는 ‘월봉집’ 9권이 있다.
[신도비 헌성금 방명록 기록비(앞면)]
[신도비 헌성금 방명록 기록비(뒤면)]
임진왜란 금산전투에서 순국전사한 고인후 선생 신도비
근처에 묘소가 있다 하는데, 들리지 못하고 일정에 따라 사진만 담고는 출발하였다.
[月峰高先生遺庄碑(월봉고 선생 유장비) 전경]
출발하기 전 鶴峰(학봉) 선생 신도비 뒤편 골목길
건너편에 무언가 심상찮은 비각이 보였다. 뭘까 궁금해서 가보았다.
[月峰高先生遺庄碑(월봉고 선생 유장비)]
월봉(월봉) 高傳川(고전천) 자 君涉(군섭), 호 月峰(월봉),
鶴峰(학봉) 因厚(인후)의 아들이다.
그러고보니 앞 뒤로 아버지 신도비와
아들의 유장비가 나란히 자리 하고 있었네요.
[아들 유장비 쪽에서 담은 아버지의 신도비 전경]
할아버지인 제봉선생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가장사랑하고 기특히 여겼다.
14세에 전라감사가 시행하는 백일장에 응시하여
수석으로 합격하여 논어 한질을 상으로 받았다.
이듬해 15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 因厚(인후)가 함께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였다.
[月峰高先生遺庄碑(월봉고 선생 유장비 전경]
호남의 담양군 창평면 유천 마을은 월봉 고 선생의
유장으로서 자손이 근 400년을 세거해 온 고장이다.
호남을 절의의 고향이라 하는데,
한마디로 義鄕(의향)으로, 맨 앞에 서 있는 분이 바로
제봉 高敬命(고경명, 1533~1592)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