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9-9
[박경리 기념관 안내 팻말 전경]
어느 따뜻한 봄날 친구들 모임에서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에는 볼거리가 참 많다.
그중에서 문학의 향기를 담아내는 곳으로 박경리 기념관과 청마문학관이 있다.
두 곳 다 다녀왔지만, 오늘은 박경리 기념관과 박경리 추모공원을 함께 할까 합니다.
[박경리 기념관 전경]
우리나라 대표 소설가였던 박경리 그의 대하소설 ‘토지’
4대에 걸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민중의 한과 아픔을 그려낸 작품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긋고 가신 분이셨다.
박경리 기념관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기념관은 내려올 때 들리기로 하고 우선 묘소가 있는
박경리 공원부터 들리기로 했다.
[박경리 공원 안내도]
친구들은 묘소에는 관심이 없는지, 기념관부터 들리려 하기에…
혼자서 박경리공원으로 바쁜 걸음을 총총 옮겼다.
[박경리 추모공원 가는 길]
묘소로 향하는 이 길이 참으로 마음에 쏘옥 들었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네요
혼자서 가는 길도 즐겁다.
[박경리 공원 안내도]
안내도 앞에서 잠시 머물며 공원의 도면을 보며,
전체의 모습을 눈으로 익히고 박경리 선생의 묘소로 향했다.
[묘소 가는 길]
공원 곳곳에 선생의 시와 어록이 새겨진 바위들이 있어 새삼 그의
문학관과 인생철학,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시비와 쉼터 정자 전경]
시비와 선생의 어록이 새겨진 글을 읽으며 오르는
길은 옛 고향을 찾아가는 듯 마음은 어느덧 평온해진다.
[박경리 선생 묘소]
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충무시(지금의 통영)에서 출생
본명은 박금이. 1945년 진주 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 씨와 결혼해서 이듬해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한 후
황해도 연안 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6.25 전쟁통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을 잃게 된다. 이후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 한국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토지’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집필 26년 만에 ‘토지’ 전체를 탈고하였다.
[박경리 선생 묘소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난 이후 48년 만인 말년에
고향 통영을 찾은 선생은 미륵산 아래 양지 농원에 묵으며
책을 읽고 지내다가 먼 바다를 내려다보곤, “죽으면 이곳에 묻히고 싶다.”
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자 이 말은 유언이 되었고,
양지 농원 주인은 선생의 유택을 위해 선뜻 1000평의 땅을 내놓았다 한다.
박경리 선생의 평소 유언대로 묘지는 작고, 비석 하나 세우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통영 한산도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택에 누워 무슨 생각을 하실까…
[공원에서 기념관으로 가는 길]
일 잘 하는 사내 / 박경리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하략..
다음 생애에서는 비록 시구로 표현하셨지만,
당신의 뜻대로 일 잘 하는 사내를 만나 평범한 아낙으로
농사지으며 근심 걱정 없는 그런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내려오며 들리기로 한 기념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경리 기념관 전경]
기념관 건물은 경상남도 제9회(2011년)
건축대상에서 ‘박경리 기념관‘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한다.
대상 수상작인 박경리기념관은 친환경 개념을 작품에 적극 도입해
친환경 경남건축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한다.
간략하면서도 꾸미지 않은 순수함이 첫눈에 보기에도 좋다.
[출입구에서 담은 기념관 내부 전시된 자료]
박경리 문학이 뛰어났던 이유는 그는
단 한 번도 ‘생명’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는 점이라 한다.
[전시장 내부 전시된 유품 일부 전경]
‘표류도’로 제3회 내성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5년 ‘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토지’ 1부로 1972년 제7회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1990년 제4회 인촌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 ‘토지’ 완간을 계기로
이화여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 수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올해의 여성상 수상,
유네스코 서울협의회에서 올해의 인물 선정 등의 기록을 남겼다.
1996년 제6회 호암예술상을 수상했고,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 메달(Gabriela Mistral Commemorative Medal)
를 수여했다.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전시관 내부 전시된 자료 일부 전경]
그 대표적인 소설 ‘토지’,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
에서도 생명의 존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한다.
[박경리 선생 서재 재현]
이 공간은 원주에 있던 박경리 선생님의 서재를 재현한 것입니다.
라는 작은 팻말이 책상 아래쪽에 적혀 있었다.
좌측에서부터 서문고개 뚝지먼당 과 김약국의 딸들(2005),
김약국의 딸들(1963)이 간략한 설명과 사진이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마을을 복원한 모형도와 함께
고인의 대표작 ‘토지’ 친필 원고와 여권, 편지 등 선생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내부 전시된 자료와 사진과 설명글 일부 전경]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박경리를 기념하고,
박경리 선생의 고향으로 선생 문학에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 고향 통영을
소개함으로써 선생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건립하였다 한다.
데레사
2018년 10월 31일 at 10:39 오전
어느핸가 통영간길에 들렸드니 문이 닫혀
있어서 못 들어갔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표류도. 너무 읽어서
너덜너덜 해졌는데도 아직까지 갖고 있습니다.
초아
2018년 10월 31일 at 7:48 오후
제가 갔을 땐 다행히 문이 열려 있어서
마음놓고 둘러보고 사진도 담아 왔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갔는데, 묘소에는 가보지 않으려해서
저혼자 다녀왔어요.
저도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 참 많이도 읽었습니다만,
많이 읽어도 한권을 3번정도.. 그 이상은 읽어본적은 없습니다.
너덜너덜해질정도로 읽으셨다니 참 대단하셔요.
비풍초
2018년 11월 1일 at 12:09 오전
토지를 읽다 말았는데, 1부만 기억납니다. 용이네와 월선이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습니다. 토지에 등장하는 마을 (최서희네 집)을 조성한 곳이 있다던데.. 평사리를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작가가 상상으로만든 마을이지만..
초아
2018년 11월 1일 at 6:18 오전
전 끝까지 다 읽었지만, 원줄거리만 생각이 나고
세세한 부분은 다 잊어버렸어요.
그래도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예, 있어요. 하동 평사리 문학관에 가시면
소설속 마을을 복원해 놓은 마을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한번 다녀왔지만, 다시 또 들려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