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교 쪽에서 담은 교촌홍보관 전경]
[안내판과 교촌홍보관 전경]
[안내판의 안내문 글 내용]
[안내도와 일어, 영어, 중국어 설명 글]
[교촌홍보관]
월정교를 둘러 본 후 앞쪽에 교촌홍보관이 있어 궁금하여 들어가보았지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교촌마을의 지형 및 건축물등과 역사에 대해 설명과 자료들을
전시해 둔 곳이었습니다.
[홍보관 들어가는 바닥의 문양]
[교촌 홍보관 출입구 전경]
[출입구에서 담은 정면 전경]
[좌측 영상실]
영상실에선 예전 경주의 모습 12대 동안 400여년간 부와 명예를
지킬 수 있었던 경주 최부자의 참된 정신을 영상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영상실 입구 경주 교촌마을 최부자 이야기]
[영상실 입구 안쪽 경주 교촌마을 중요문화재]
[좌측에서 담은 교촌마을 모형 전경]
[우측에서 담은 교촌마을 모형 전경]
[경주교동 최씨고택, 가계도, 자료사진 등]
[경주교동 최씨고택 안내글 내용]
[경주 최부잣집의 가계도]
[최부잣집의 자료 사진]
[교촌 최부잣집의 역사 자료 전시]
[경주 교촌의 역사]
[교촌 인근 문화유산]
[경주향교, 자료사진, 석전대제, 전통혼례, 성년례 모형 전경]
[경주 향교 안내글 내용]
[석전대제, 전통혼례, 성년례, 자료 사진]
[釋奠大祭(석전대제)]
釋奠大祭(석전대제)란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매년 봄(음력 2월)과 가을(음력 8월)에 성균관과 전국 234개 향교에서 치러진다.
[傳統婚禮(전통혼례)]
혼례는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는 의식이다.
여기서는 傳統婚禮(전통혼례)의 절차 중
交拜禮(교배례 신랑과 신부가 맞절로 인사하는 의식)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成年禮(성년례)]
전통적으로 남자 20세, 여자 15세가 되면 남자에게는
관례[冠(관)을 씌우는 의식], 여자에게는 계례(비녀를 꽂아주는 의식)를
행함으로써 성인이 되었음을 인정했다.
[경주교동법주, 신라토기 등 전시 전경]
[경주교동법주]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최부잣집에서 대대로 빚어 온 술이다.
경주교동법주를 처음 만든 사람은 최국선으로, 그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궁중음식을 관장하는 司饔院(사옹원)의 참봉을 지냈다고 한다.
법주를 만들 때에는 최씨 집안 마당의 우물물을 쓰는데, 물의 양과 온도가
사계절 내내 거의 일정하며 예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술을 빚을 때는 이 물을 팔팔 끓인 다음 식혀서 사용한다.
법주의 주원료는 토종 찹쌀이고, 물과 누룩, 쌀로 빚는 곡주로서,
색은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곡주 특유의 향기와 단맛, 약간의 신맛을 지니고 있다.
경주교동법주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후손인 최경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신라토기]
신라토기는 경주지방을 중심으로 기원전
4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천년 이상 사용되었다.
이 토기는 경주지방에 다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점토를
원료로 하여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열에 구워낸 것으로
색채는 회청색이 가장 일반적이다.
형태는 용도에 따라 일상 생활용품인 장경호, 고배, 각배, 영배,
죽은 자를 위한 골호, 명기인 신구형토기, 차형토기, 기마인물형토기 등
수십 종에 달할 정도로 다양한 편이다.
이러한 토기들은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총 등의 신라고분에서 수천 점이 출토되었다.
[경주교동법주]
[전시된 신라 토기 전경]
[등잔모양토기]
토제 등잔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명기의 일종,
다섯 개의 등잔에 심지를 꽂을 수 있으며 각 등잔은
빈 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토용]
흙으로 빚어 구운 독립된 인물상이나 동물상, 왕이 죽으면 남녀 각
5인씩 순장하였으나, 지중왕 3년(502)에 순장을 금하면서 사람을 대신할
토용이 발달하게 되었다.
[배모양토기]
기마인물형토기와 함께 경주 금령총에서 나온 토기로, 두 점이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이 토기는 높은 받침대 위에 배 모양을 얹어놓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받침대는 신라 중기 후반 형식으로 가냘픈 모습이다.
[전시된 자료 전경]
[경주교촌마을 3D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들]
[군관과 포졸, 도둑]
[崔浚(최준 1884~1970)]
崔浚(최준 1884~1970)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교육인.
호는 汶坡(문파). 경북 경주 출신. 경주최부잣집의 12대 마지막 최부자
전 재산을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투자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백산상회를 운영하여 독립자금을 지원하였으며,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학의 설립자이다.
[김구, 요석공주, 원효대사, 설총]
김구
정치가, 독립운동가, 호는 백범 황해도 해주 출신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조직에 참여하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신민회, 한인애국단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요석공주
태종무열왕의 딸. 설총의 어머니, 원효대가가 배필을
구한다 하므로 왕이 공주로 그의 짝이 되게 하였다.
원효대사
신라의 승려로 일심과 화쟁사상을 중심으로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수많은 저술을 남겨 불교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다.
설총
신라 중대의 대학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아들.
이두를 집대성하였으며, 글을 잘 지어 비문을 여러 개
남겼으나 전해지지는 않는다.
[사진으로 보는 경주교촌마을]
[신라 천년의 역사 경주]
[신라 천년의 역사 경주 안내도 전경]
[신라 천년의 역사 경주 안내도]
992년간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경주의 역사는 곧 신라의 역사입니다.
신라는 경주평야에 있던 여섯 부족의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건국된 나라입니다.
그 후 밖으로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통합하였으며,
안으로 정치체계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22대 지증왕대에는 국호를 新羅(신라)로 확정지었으며,
23대 법흥왕대에는 불교를 공인해 찬란한 불교문화의 막을 올렸습니다.
이처럼 국가의 면모를 일신한 신라는 그 기세를 몰아 고구려, 백제를
병합하고 676년에는 삼국통일의 성업을 달성합니다.
통일국가 신라는 평화로움 속에서 눈부신 문화적 발전을 이룩해 갔습니다.
(위 안내글 옮겨 적음)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