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 187
[대구문화예술회관 1층 4전시실 출입구 전경]
국채보상운동은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화 하기 위해 정치. 군사적 침략과
어울러 경제적 침략을 단행하자 이에 대항해 경제적인 자주권을 회복하여
국권을 수호하자는 운동이다.
러일전쟁에서의 승리와 을사5조약 등을 통해 한반도에서 정치. 군사적
지배권을 확보한 일본은 한국의 경제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차관을 강요
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05년부터 191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일부채는 4,500만원에
달하였다. 이런 막대한 차관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들어 온 것이 아니라,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화하는데 사용될 일제의 식민지 건설비용을 모두
한국 정부에 전가시키기 위한 계략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이와 같은 차관의 이면에 담긴 일제 침략성을 심각히
깨닫고 우리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부채를 갚아 민족의 생존권을
지켜나가기 위해 일어났다.
[출입구 앞쪽 국채보상운동 112주년 기념전시회 안내프랑카드]
국채보상운동은 담배를 끊어 외채를 갚자는 운동으로 대구 광문사의
김광제와 서상돈을 중심으로 발의되었다. 1907년 2월 21일 대구 군민대회를
통해 본격적인 국채보상운동의 닻을 올리자, 전국 각지와 국외에서 그 취지에
찬동하면서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남성들은 담배를 끊은 돈으로 국채보상의연금 모집에 동참했고,
여성들은 솔선하여 금은 패물을 처분하여 동참했다.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제국신문’. ‘경향신문’ 등 국내
언론들은 국채보상운동을 적극 선전하여 확산시켰고, 특별히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은 이 운동을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
시키는데 앞장섰다.(안내책자에서 옮겨 적음)
[마항의 연소 통문 / 취지서 / 신한은행 한국금융박물관 소장본]
[마항의 연소 통문(1907. 5.11 / 번역 글 내용]
[취지서(연도미상) / 번역글 내용]
[국채보상가]
국채보상가
애국심이여, 애국심이여, 대구 서공 상돈일세.
1천 3백만원 국채 갚자고 보상동맹단연회 설립했다네.
면실하는 마음 발양하니, 대한 국민 분명하도다.
지금 우리 국가 艱難(간난) 한데 누가 이런 열성 가질건가.
…………
대한 2천만 민중에 서상돈만 사람인가,
단천국 이곳 우리들도 한국 백성 아닐런가,
외인 부채 해마다 이식 불어나니 많은 그 액수 어이 감당하리.
적의 공격 없어도 나라 자연 소멸되면,
아아, 우리 백성들 어디 가서 사냐.
이 나라 강토 없게 되면 가옥, 전토는 뉘 것인고.
…………
여러분, 여러분, 때를 잃지 말고 보상하오.
국채 다 갚는 날 오면 기쁘고 즐겁지 않을 손가,
힘씁시다., 힘씁시다, 우리 단천의 여러분이여.
(단천 국채보상소의 발기인 이병덕. 김인하 등이 만들어 부른 노래) 위의 글 옮겨 적음
[국채보상기성회 발기문]
[경고 我(아) 부인동포라]
반지. 팔찌. 목걸이 등의 금은패물폐지를 통해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한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활동장소(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진골목 자리)
경고 我(아) 부인동포라
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에 처하와 三從之義(삼종지의) 외에 간섭할
사무가 없사오나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야 어찌 남녀가 다르리오.
듣자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2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 먹고 代錢(대전)을
구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감동케 할지요 진정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母論(모론)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化育中(화육중)
一物(일물)이 아니라오.
본인 등 여자의 소처로 一身所存(일신소존)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河海(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 동포들은 다소를 불구하고 혈심 의연하여 국채를 淸帳(청장) 하심이
千萬幸甚(천만행심).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가 여성들의 국채보상운동 참가를 위해 1907년 2월 23일
전국 여성들에게 발표한 격문]
[취지서(연도미상)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소장]
번역 일부 옮겨적음
아! 임금이 백성이 아니면 함께 나라를 지킬 수 없다.
또 말하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견고해야 나라가 평안하다.”하였다.
아! 우리 2,000만 동포는 나라가 편안한가? 임금은 누구와 함께 임금 노릇하며
백성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도적들이 사리에 맞지 않게 법도를 어겨서 강제로 이웃을 침략하고 폭력을
휘두르니 예로부터 그러한 경우가 있었으나, 혹 칼날이 서로 접하고 혹은 지혜의
힘을 서로 더하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여 한결같이 서구 풍습과 기운이 점점
동아시아를 물들여서 군대가 칼에 피를 바르지 않고, 지혜가 우수하지 않아도
남의 나라를 전복시키고 남의 재산을 빼앗으며, 바로 생명을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게 여기며 심지어는 인종까지도 바꾸고야 마니, 점점 강당하는 자는 그 연고가
채관 한 가지 일에 지나지 않았다.(중략)
[국채 1,300만원 보상취지]
[국채보상의연소 공함 회답 / 창원항상채의연소에서 발행한 청구서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소장]
정미년(1907) 2월 14일 茂洞里(무동리) 里長(이장) 朴允瑞(박윤서)가
의연소에서 보낸 공함을 보고 감사하여 집집마다 알리겠다고 회답한 내용.
[공립협회의 국채보상취지서 / 재일본 한인유학생의 단영동맹취지서]
[각 지역별 국채 보상소 설립 상황(1907)]
[일제의 금융침략에 대항하여 설립된 민족계 은행]
[용궁군국채보상취지서]
[국채보상운동 취지서 / 김병렬 선생 친필 기증]
[국채보상운동 취지서 / 번역]
[창원단연회 광고]
[국채보상금조사정리회 규칙]
일제 침략의 앞잡이인 일진회가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금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국채보상금조사정리회 규칙
[국채보상운동의 의의 / 국채보상운동의 영향]
[양기탁 공판사건 기록]
일제가 국채보상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국채보상의연금 횡령을
빌미로 양기탁을 구속한 사건 기록. 그러나 4회에 걸친 공판결과
양기탁은 아무 혐의없이 무죄로 석방되었다.
[마항의연소 통문(1907. 5.11 /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소장]
[국채보상운동]
[대구광문사 김광제 연설문]
[전시실 내부 전경]
[일제의 경제수탈]
[구빅동화무효에관한고시]
일제 통감부가 대한제국 탁지부에 압력을 가해
백동화를 무효화시킨 구백동화 무효에 관한 고시(1909. 11. 1)
[독립운동 자금후원 활동]
[독립의연금. 국민회의 무금. 혈성금 증서]
대한인국민회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발행한 독립의연금. 국민회의 무금. 혈성금 증서
[일제의 경제수탈]
일제가 식민 수탈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토지조사사업(1910~1918)
경부선 철도부설을 위해 현지 측량에 나선 일본인 측량대.
일제는 한국에 대한 경제수탈과 군사침략을 강화할 목적으로
경부선 부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공장에 동원된 어린 소년들의 집단작업
일본 군인에 의한 한국인의 갈제 사역 등 자료 사진
[일제의 경제수탈]
평양에 있는 일제 총독부 직영 광산
함경남도 갑산에 있는 일제가 경영한 구리광산
일제가 한국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해
군산항에 쌓아 둔 광경
수탈한 면화를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해
목포항에 쌓아 둔 광경 등 자료 사진
[단연동맹가 / 대한자강회월보 / 제10호 / 1907.4]
[단연동맹가 내용]
[전시실 내부 전시된 일부 자료 전경]
[국채보상운동 영수증 등 여러 자료 전시]
[국채보상운동에 관한 자료 전시]
[국채보상모집금조사표 등 여러 자료 전시]
[국채보상연합회의소규칙 등 여러 자료 전시]
[5분영상 상영]
[전시실 내부에서 담은 4전시실 출입구 전경]
[조희정. 김병홍 회문(1907. 2.11) / 창원단연회 광고(1907. 1. 29]
[애국상채문 통문(1907. 음3. 2) /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소장본]
[애국상채문 통문 / 번역]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에서 활발히 전개되자 일제는 이 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민족언론을 탄압하고, 양기탁을 국채보상금 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워 구속시키는 등 교묘하게 탄압하였다.
일제의 계속된 탄압으로 1908년부터 운동의 열기는 쇠퇴하였다.
이와 같이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경제침투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시기에 민족 경제를 보호하여 국권을 지키려 한 강력한
항일민족운동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안내책자에서 옮겨 적음)
데레사
2019년 2월 27일 at 8:03 오후
국채보상운동기념 전시회는 해마다 하나봐요.
작년에도 올린것 같은데..
이렇게 늘 기리는것이 참 좋은 일이죠.
대구의 이런 점이 존경할 일이지요.
초아
2019년 2월 27일 at 9:16 오후
예, 해마다 합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겠지요.
기리는 것도 좋지만, 그 정신과 뜻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비풍초
2019년 2월 28일 at 9:28 오후
기부한 사람 따로, 횡령해먹은 사람 따로…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돈 같은 거 모으기 운동하면 안됨. IMF때 금모으기 운동때 모은 금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요.. 연말에 사랑의 헌금 모으기에 낸 돈도 어디로 쓰였는지 낸 사람들은 전혀 모릅니다.
초아
2019년 3월 1일 at 8:49 오후
그게 저도 분통이 터지는 일입니다만,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는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일입니다.
그렇다고 모른채 하기도 그렇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금을 하대 그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확실하게 밝히고 행여 사리사욕을 위해
손 댄 사람은 극형에 처해야한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