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終命地(종명지)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542-1

20190402_101359[구암마을 표지석 전경]

전남 화순 답사길에 문득 남편이 김삿갓 문학동산이 조성되어 있다며,
“들렸다 갈래?” 한다. 거절할 이유가 없죠. 안간다하면 오히려 제가 삐칠건데…, ㅎㅎ

20190402_101454[시선 난고 김병연 김삿갓 종명 초분 유적지 표지석 전경]

네비에 주소를 넣고 달리다가 구암마을 표지석이 보이자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자는 네비양의 말에 좌측으로 꺾으들어가며 잠시 한쪽에 주차를 했지요.
왜냐구요? 사진을 담기위해서…ㅋ

20190402_101502[시선 난고 김병연 김삿갓 종명 초분 유적지 표지석]

난고 김병연은 몰라도 방랑 시인 김삿갓하면 모르는 이 없죠.
화순은 김삿갓과 특히 인연이 많은 곳입니다.

김삿갓은 평생 화순을 3번 찾았으며 6년간 머물다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그의 방랑이 화순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20190402_101439[김삿갓 방랑로 소개글 내용]

20190402_100334[김삿갓 문학동산 전경]

이곳은 다음에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20190402_095512[김삿갓 종명지 전경]

20190402_095526[삿갓 문학동산 안내도]

20190402_095532[난고 김병연 김삿갓 안내글 내용]

20190402_095542[난고 김병연 김삿갓 종명 초분 유적지 안내도]

20190402_095602[김삿갓 종명지 안내글]

20190402_095609[김삿갓의 詩(시)]

20190402_095627[난고 김병연(김삿갓)선생 운명하신 집 전경]

20190402_095619[난고 김병연(김삿갓)선생 운명하신 집 표지석]

20190402_095645[압해丁씨 창원군 백인당파 유지비]

백인당 정치업은 후손들의 교육을 위한 ‘경몽가’를 지어 대대로 실천하게 했다.
행신처사 편에  ‘내 집에 오는 손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가훈을 남겼다고 합니다.

화순을 두 번째 찾은 김삿갓도 그 소문을 듣고 정치업의 집을 찾아갔는데,
역시 소문대로 후하게 대접받자 마치 자기 고향집 같은 평온함을 찾았고
이후 세 번째 왔을 때도 사랑채에서 머물다 운명한 것이라 합니다.

20190402_095655[김삿갓 종명지 사랑채 대문 전경]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 安東(안동), 자 性深(성심), 호 蘭皐(난고)이다.
별호 김삿갓 혹은 金笠(김립)이라고도 부른다.
1807년 경기도 양주에서 金安根(김안근)과 함평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조부 金益淳(김익순)이 宣川府使(선천부사)로 있다가
순조 11년(1811)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항한 것과
관련해서 폐족을 당한 후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광주, 강원도 평창 등을
전전하다 영월 삼옥리에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게 되었다.

20190402_095729[안쪽에서 담은 김삿갓 종명지 사랑채 전경]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선생은 20세 때 영월 都護府(도호부)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김익순을 痛歎(통탄)한 글을 써 장원을 하였으나,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 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많은 즉흥시를 남겼다.
그의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1857년 지친 몸으로 말 년에 들린 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였다.
그곳 명소 ‘赤壁(적벽)’에 매료되어 자연 경관을 즐기며 몇편의 시를 남겼고
아들 翼均(익균)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이 마을 押海丁氏(압해정씨)
창원군백인당파(派) 정씨의 종가 사랑채에서 기거하며 수려한 자연경관을 즐기며
詩想(시상)을 얻어 작품을 남기다 863년 57세를 일기로 終命(종명)하였다.

그는 해학적 민중시와 많은 변형시를 남겨 미국의 윗트먼,
일본의 이시카와 타쿠보쿠와 함께 세계 3대 詩(시) 혁명가로 꼽힌다.

20190402_095819[김삿갓 종명지 안채 전경]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으로 金笠詩集(김립시집)》이 있다.

20190402_095755[안채쪽에서 담은 앞쪽 사당과 우물 전경]

김삿갓은 평생 화순을 3번 찾았으며 6년간 머물다 방랑을 화순에서 멈췄다.
무엇이 김삿갓을 화순으로 세 번이나 오게 했으며 그를 여기서 운명하게 만들었을까?
바로 천하제일경 화순적벽의 풍경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20190402_095823[우물]

우물이나 장독대를 보면 그냥 지나치치 못한다.
어릴적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던 그리운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

20190402_095832[우물 안]

우물안도 들여다보고 사진으로 담았다.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지만, 왠지 우물속에는
나의 어린시절 추억들이 고여 있을 것 같은 예감.

20190402_100037[사당]

김삿갓은 1841년 35세 때 광주 무등산을 넘어 화순을 처음 찾았다.
이후 1850년 두 번째로 화순을 찾아 구암마을 정치업의 사랑채에 머물며
많은 시를 남겼으며, 마지막으로 1857년 화순을 찾은 김삿갓은 1863년 57세
숨을 거둘 때까지 동복 구암리 정치업 사랑채에서 머물다 생을 마감한 후
마을 뒷산에 3년간 묻혔다가 강원도 영월로 후손이 이장해 갔다 합니다.

20190402_100055[안채 우측에서 담은 전경]

전국을 방랑하며 신세를 지려던 곳에서 문전박대를 받거나
멸시받으면 해학이 넘치는 시를 지으며 서글픈 마음을 달랬다 합니다.

한자의 뜻과 음을 이용한 그의 시는 훗날 과거 지망생들의 교범이 되었고
평민들의 생활상을 시로 읊은 서민문학의 대가로 종명지 앞쪽 삿갓동산
50여개의 시비로 새워 놓았습니다.

그곳은 내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190402_095844[사당과 우물 쪽에서 담은 안채 전경]

앙상한앙상한 가지만 남은듯 보이는 앞쪽 청매나무에 꽃이 곱게 펴 있네요.
그냥 못 지나치죠. 담아왔습니다.

봄이면 꽃은 다시 피어나건만,  한번 가신 난고선생은 사철 내내
우리에게 더욱 진한 향기와 흔적만 남겨놓아 먼 길도 마다 않고 달려오게 만드네요.

page[종명지 안채 뜰에 핀 청매]

20190402_100104[안채 뒤쪽 에서 담은 사랑채 전경]

2009년 화순군에서는 그가 숨을 거둔 종명지에
안채를 비롯한 사랑채, 그리고 사당을 복원하였으며,
그의 주옥같은 삿갓詩(시) 중 50여수를 엄선하여
詩碑(시비)로 제작 2016년 3월에 문학동산을 완공하였다.

20190402_100114[김삿갓 난고 선생이 숨을 거두었다는 사랑채]

김삿갓 문학동산의 시비는 내일 소개를 해드리겠지만,
이곳에서도 그곳에 세워지지 않은 풍자 詩(시) 를 소개해 볼까합니다.

二十樹下(이십수하)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中五十食(사십가중오십식)
망할 놈의 집에서 쉰 밥을 주는구나

人間豈有七十事(인간개유칠십사)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것가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십식)
내 집에 돌아가 선 밥 먹음만 못하구나

현대어 풀이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마흔 집안에서 쉰 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

그의 시에는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받았던
수모와 비애가 절로 묻어나서 슬픈 웃음을 짓게 한다.

만사는 늘 정해져 있거늘
뜬구름 같은 인생
공연히 스스로만 바쁘구나.

천지간을 제 집으로 알고 대자연을 제 정원이라 여기면서
떠돌아다니던 김삿갓 그는 그렇게 이곳에서 한많은 방랑의 생을 마감하였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9년 4월 16일 at 6:25 오전

    여기서 생을 마감하셨는데 무덤은 영월에 있으니 그 당시로서는
    운구하기에 상당히 힘들었을것 같습니다.

    그의 시는 풍자가 넘치지요.
    욕같은데도 욕이 아니고 욕이 아닌데도 욕같죠.

    • 초아

      2019년 4월 16일 at 9:04 오후

      이곳에서 돌아가셔서 근방에 임시로 묻었다가
      나중 소식을 들은 후손들이 와서 모셔갔다 합니다.
      맞아요. 욕 같으면서 욕이 아닌, 아닌것 같으면서 욕같은..
      한으로 뭉쳐진 서러운 속 마음을 풀어놓으신거나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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