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정리 산 71-1
난 참 이상하게도 노거수를 보면 그냥 지나치니 못한다.
보는 순간 가슴이 먼저 반응을 한다.
많은 곳을 답사 다니면서 만난 노거수 그들이 들려주는듯
귀를 기울이며 발걸음을 떼지 못할 때도 있다.
오늘은 능성구씨 시조 제단 앞쪽 느티나무(노거수)에 필이 제데로 꽂혔다.
시간도 없는데… 머뭇거리는 나를 곱지 않은 시선을 등 뒤로 느끼면서도
모른척 서둘러 담아 온 노거수와의 얘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능선구씨 시조 제단 앞 수문장 처럼 서 있는 노거수(느티나무) 2그루
숫한 세월을 보내오면서 영광의 역사도 아픔의 역사도 함께 하였겠지요.
제가 본 것 아니지만, 알아본 결과를 털어놓을까 합니다.
능성 구씨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유력 가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지속적으로 관직에 진출하고, 조선 왕실의 인척이기도 했다.
현대에는 LG그룹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門下贊成事(문하찬성사)를 지낸 具興(구흥)은
1388년 창왕의 제위기에 右政丞(우정승)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杜門洞(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태종 3년(1403) 사후 左政丞(좌정승)에 추증되었다
고려 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분이신 松隱(송은) 具鴻(구홍)
태조 이성계가 좌정승 벼슬을 3번나 제안했으나 거절하며 지은 詩(시)이다.
의롭지 아니한 부귀는
내게 뜬구름과 같도다
돌밭에도 임금의 봄은 서려 있으니
호미를 들고 저물도록 김을 맨다오.
그는 돌아가시기 전 후손들에게
“조선이 준 관직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새 왕조의 명령을 거억할 수 없었던
후손들은 명정에 ‘左政丞(좌정승)’이라 표기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솟구쳐 명정을 찢어 놓기를 세 차례
결국 ‘고려 좌시중’으로 고쳐 표기하여 영원한 고려의 ‘문하좌시중’으로
영면에 들었다 합니다.
[보호수 안내 글 내용]
수종 : 느티나무 수령 : 520년 이라 적혀 있다.
그러나, 조선의 건국에 가담한 세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낸 具致寬(구치관)도 있습니다.
1429년 생원시를 급제하고 1434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 살이를 시작했으며, 세조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신임받는 신하가 되었다.
세조 즉위 이후에 좌익공신이 되어 綾城君( 능성군)에 봉해졌다.
좌의정 등의 중요한 직책을 거쳐 1466년 영의정이 되었다.
조선 중후기 구씨로서 당상에 오른 대신들은 대부분 그의 후손이라 보면 된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단종의 비극을 연출하여 왕이 된
세조는 자신이 왕이 될 때가지 많은 공로를 세운 신숙주와
구치관을 블러 놓고 좌석을 마련하여 한 잔 하기를 청했다.
세조는 구치관을 새 정승에 임명하고, 전임자인 申叔舟(신숙주)를
불러 놓고 물음에 틀리게 답하면 벌주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구 정승!!”
왕의 말에 구치관이 대답을 하자.
왕은 구치관을 부른 것이 아니라 먼저 정승으로 있었던
신숙주를 부른 것이라며 벌주로 한 잔을 주었다 한다.
“구 정승!!”
하고 또 왕이 부르자 이번엔 구치관이 대답을 하였더니
具(구) 정승 말고 舊(구) 정승을 불렀다며 벌주를 내렸다.
그런 다음 왕이 “신 정승” 하고 부르자 둘다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른이 부르는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둘에게
벌주를 한 잔씩 주었다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세조와 신숙주와 그리고 구 정승
구치관은 온종일 술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합니다.
이런 식이었으니 신숙주와 구치관은 도무지 벌주를 피할 길이 없었다.
세조는 그날 두 사람을 잔뜩 취하게 만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그 때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던 신숙주와 구치관은 임금 앞에서 자연스레 화해를 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임금답게 실로 훌륭한 유머 정치요, 웃음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얘기들을 간직하고 묵묵히 세월의 흐름따라 살아온 노거수
검색을 통해 지나온 옛 얘기들을 알아 보았습니다.
데레사
2019년 5월 3일 at 7:46 오전
저 나무에 잎이 돋아나면 그늘이 참 좋겠습니다.
시골마을 지나다 보면 저런 나무밑에서 노인들이 땀을 식히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보기좋던데요.
초아
2019년 5월 3일 at 8:17 오후
커다란 노거수 그늘아래 평상이 펴 있지요.
평상위에 노인들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는 것을
저도 시골마을 지나가가 많이 보았습니다.
언니 말씀처럼 참 보기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