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서성리 147
[들꽃카페 옆 앞쪽 환산정 출입구 전경]
이름도 예쁜 들꽃카페가 환산정 들어가는 입구쪽에
자리하고 있지만, 시간도 촉박하고 서둘러야 한 곳이라도
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곧장 직진 걸음을 옮겼다.
[환산정 가는 길]
좁은 길 양쪽으로 도열하듯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운치를 더해준다.
비록 붉은 색은 아닌 세멘트 포장길이지만, 나만을 위해 깔아 준 레드 카펫위를
걷듯 발걸음도 가비얍고 마음도 즐겁다.^^
[안쪽 환산정 출입구]
길이 끝나는 곳에 작은 대문이 있으나 활짝 열려 있어서 좋았다.
[입구쪽 안내판 전경]
문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면 좌측으로 노거수와 안내판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안내판의 글은 그 자리에서도 읽기가 힘들게
흐려 담아오긴 하였으나, 읽는게 불가…
빠른 교체가 필요한것 같다.
[입구쪽에서 담은 환산정 전경]
환산정은 1637년대명처사 百泉(백천) 柳涵(류함) 선생이
창건한 정자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전퇴를 둔 남향의 평면 형식이다.
선생의 휘는 涵(함). 자 子淨(자정) 호 百泉(백천) 본관 文化柳氏(문화류씨)이다.
[환산정 보수 중건헌성비]
[百泉齋先生遺蹟碑(백천재유선생유허비)]
[環山亭(환산정) 전경]
조선중기 百泉 (백천) 柳涵(류함)선생이 은거생활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1624년 선생의 나이 49세 갑자년 李适(이괄)의 난 때 白石(백석) 柳楫(류즙)과
함께 공을 세웠으며 1627년 공의 52세 丁卯胡亂(정묘호란)에도 창의하였다.
1636년 공의 나이 61세에 丙子胡亂(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분연히 6부자가
몸 바쳤던 창의 總軍(총군)의 副長(부장)으로 크게 활약하여 그 공이 지대하였다.
[보호수 소나무(육송) 수령 350년]
大明處士(대명처사) 百泉(백천) 百泉(백천)선생은 61세인
1636년 丙子胡亂(병자호란)이 일어난 해 6부자가 倡議(창의)에 참여
盡力(진력)하였으나, 조선의 임금 인조와 청나라 태종의 굴욕적 和議(화의)가
전해오자, 류함선생 가족 모두 통곡 歸還(귀환)하여 노년 소요처를 찾았으니
이곳 環山亭(환산정)이다.
공께서 憂國之恨(우국지한)의 마음을 달래고자 350여년전에 이 소나무를 심으셨다.
지난 오랜 세월동안 이곳 상록의 소나무는 柳涵(류함)선생의 변함없는 節槪(절개)를
보여준 듯 꿋꿋이 지켜내고 있다.(안내글 옮겨 적음)
[환산정 앞 일각문]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담도 없으면서 환산정 앞쪽에 일각문을 세워 놓았다.
전체의 전경을 담고 싶었지만, 거리가 짧아 양쪽옆 지붕부분이 잘려버렸다…ㅠ.ㅠ
[우측 옆에서 담은 환산정]
당시 정자는 방 한칸의 초가였으나,
현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진퇴를 둔 남향의 평면형식이다.
공의 후손들은 1896년에 중건과 1933년에 보수를 하였다 합니다.
[環山亭(환산정) 현판]
[환산정 앞 기둥의 주련 전경]
이곳 山紫水明(산자수명)을 자랑하는 環山亭(환산정)은
百泉(백천) 선생의 憂國之恨(우국지한)을 삭히던 곳으로 소요하며
때때로 시를 읊었다 합니다.
[환산정 우측 기둥 주련 / 페이지 편집]
秉春秋義(병춘추의) : 춘추의 의를 지켜
學來栗里(학래율리) : 율리의 학문을 쫓았네
松菊有趣(송국유취) : 솔과 국화의 운치 있으니
[환산정 좌측 기둥 주련 / 페이지 편집]
乾坤時和(건곤시화) : 하늘땅에 시절이 태평하네
山水托情(산수탁정) : 산과 물에 정을 의탁하니
環山淸風(환산청풍) : 환산정에 맑은 바람 부네
[환산정 내부 여러 편액 / 애니메이션 편집]
공은 이곳에서 벼슬을 멀리하고 오직 후학들의 강학에 전력하였다.
작은 정자이지만, 정자 내부에는 유난히 많은 편액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환산정 뒤 전경]
[환산정 뒤쪽 암석]
[환산정에서 담은 앞쪽 일각문 전경]
환산정은 다른 누정과 달리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65년 서성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상류 한 가운데 섬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라 합니다.
서성 저수지가 만조에 가까울수록 환산정의 비경은 빛을 발한다고 한다.
비단 화순 지역뿐만이 아닌 누정 전체의 비경으로 손꼽을 만하다.
[환산정 앞 전경]
예전에는 산으로만 둘러싸여 있었지만 1967년 농업용수를 위해
제방을 쌓아 서성제 호수가 형성되어 호수 가운데 아름다운 섬 위의 정자로 변하였다.
또한 서성제호수에서는 각종 담수 어종이 풍부하여
휴양지 뿐 아니라 좋은 낚시터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합니다.
[환산정 앞 전경 / 애니메이션 편집]
서성제 건너편으로는 마치 별장처럼 생긴 아름다운 건물들이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다.
[환산정에서 담은 입구쪽 전경]
그러나 정자를 보수한지 근 1세기의 세월이 흐르고
호수의 습기로 인해 정자 목이 부식되어 퇴락한 정자를
화순군의 지원과 종원들의 성금을 모아 2010년 11월 보수 중건하였다.
[환산정 앞 출입구 전경]
[환산정쪽에서 담은 들어오는 길 전경]
당대 문장가였던 芝峯(지봉) 李睟光(이수광) 愚伏(우복) 鄭經世(정경세)
謙菴(겸암) 柳雲龍(류운룡) 荷谷(하곡) 許篈(허봉) 등의 당대 명현들과 道義(도의)로
교우하고 理氣(이기) 經書(경서)를 논단하며 한 생을 보내셨다 합니다.
데레사
2019년 6월 24일 at 6:51 오전
앞길이 아주 좋아요.
천천히 걸으면 마음이 안정될것 같아요.
옛 선비들은 이렇게 나라걱정들을 했는데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 해 봅니다.
초아
2019년 6월 24일 at 9:22 오후
네, 들어가는 길이 아주 맘에 쏘옥 들었습니다.
나만을 위해 만든 길처럼 즐기며 걸어들어갔습니다. ㅎ
글쎄말입니다. 우리들은 그래도 나라 걱정이라도 하지요.
그러나 높으신 분들이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차려주었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