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8대 정자 중 으뜸인 勿染亭(물염정)

소재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산 373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3호

20190614_113832[초입에서 담은 전남 화순 물염정 전경]

勿染亭(물염정) 은 물염공 송정순(1521~1584)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 담양으로 내려가던 중 물염적벽을 지나다 경치에 반해 띳집을 짓고
눌러 앉은 데서 연유하였다 하며, 勿染(물염)이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청렴결백하고 효심이 뛰어난 송정순의 호로 그의 성품을잘 말해주고 있다 합니다.

20190614_113850[기념비와 사적비 전경]

20190614_113900a[창립제5주년 물염회기념비명 병서]

20190614_113912a[물염정 삼현선생 사적비]

20190614_113917a[물염정 시가]

20190614_113922[물염정 전승비]

20190614_113934[물염정 오르는 돌계단 전경]

20190614_113950[물염정 오르는 돌계단 우측 옆 비석군 전경]

물염정의 외손 금성 나씨의 공적비와 물염정 전승비도 세워져 있다.

물염 송정순에게는 아들이 없고 여식만 있어 동복 주변의 물염정과
주위의 집, 전답, 몸종까지 모두 외손자들에게 물려주니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여 옛 선현들을 본받아 사용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20190614_114008a[화운송가]

20190614_114003[금성라씨화운라영채종회장공적비]

20190614_113958a[부성방명안]

20190614_114122[난고 김병연 시비 동산 전경]

곧장 물염정으로 오르지 않과 잠시 옆길로 새겠습니다.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인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은
전라남도 화순에서 생을 마치기 전에 물염정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 하는데
그런 연유로 정자 근처에 김삿갓의 동상과 7폭의 詩碑(시비) 등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쪽 계곡쪽으로는 물염적벽도 함께 하고 있네요.
물염적벽은 정리되는대로 다음날 따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190614_114300[난고안동김공병연시비]

20190614_114913[난고 김병연(김삿갓) 동상과 7폭의 시비 앞면 전경]

20190614_114312[난고 김병연(김삿갓) 동상]

20190614_114812[난고 김병연(김삿갓) 동상과 7폭의 시비 뒷면 전경]

앞쪽의 시를 뒷쪽에 풀이해 놓았기에 자세히 보시라고
포토스케이프의 페이지로 편집해서 한편 한편 7편의 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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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_114515[난고 김병연(김삿갓) 시비동산쪽에서 담은 물염정 전경]

김삿갓이 생을 마치기 전에 아름다운 물염적벽의
풍광에 반해 자주 찾아와 시를 읊었다고 하여 더 유명한 정자다.

20190614_114550[물염정 오르는 돌계단 위 안내판 전경]

20190614_114542-1[안내판 글 내용]

20190614_114542-2[안내판 영문 글 내용]

20190614_114555[정면에서 담은 물염정 전경]

광주시 관광협회가 지정한 전남 8대정자 중 하나로
광주 호가정, 담양 식영정, 나주 귀래정(영모정) , 곡성 함허정, 영암 회사정,
장흥 청영정(부춘정), 완도 세연정이 있는데 그 중 물염정이 으뜸이라 하네요.^^

20190614_114610[기록의 문 안내 도와 안내 글 내용]

20190614_114628[기록의 문 안내판 전경]

20190614_114636[기록의 문 안내 글 내용]

20190614_115220[勿染亭歌(물염정가)]

20190614_114728[勿染亭(물염정) 현판]

20190614_114711[좌측 옆쪽에서 담은 물염정 전경]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66년과 1981년에 걸쳐 중수하고, 1996년 지붕을 교체하였다.

물염정 정자 내부에는 조선 중.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들이
남긴 시문등 20여개가 넘는 詩文(시문)등의 편액이 걸려있다.

20190614_114736[정자 내부 편액 전경]

20190614_114743[정자 내부 편액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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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_114748[정자 내부 편액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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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_114801[정자 내부 편액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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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_115046[물염정 기둥]

물염정 정자의 기둥중 하나는 다른 기둥과
다르게 울퉁불퉁 세워져 있는게 사연이 있을듯도 하다.

알아 본봐로는 50여년전 정자를 보수 할 때 마을사람들이
아끼던 마을 앞 배롱나무를 베어와 정자 기둥으로 세운 것이라 합니다.

20190614_114822[물염정 기둥]

영벽정 자료를 찾다가 알게된 것으로 이곳의 얘기인듯 하여 소개해 봅니다.

옛날 능주 고을에는 陳處士(진처사)가 살았는데
영벽강에 정자를 짓기 위하여 높은 산의 거목을 베어 끌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을 지어 상량을 올려놓으면 집이 쓰러지기를 반복하였다.

이에 진 처사는 실의에 젖어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
어느 날 꿈에 용암산의 산신이 나타나 “계책을 가르쳐 주겠다.”라고 하였다.

칠일 째 되던 날 沙彌僧(사미승)이 찾아와 터의 지세가 伏兎穴(복토혈)이라
정자의 기둥 하나를 칡뿌리로 세우고 토끼 지장신을 그려 정자 터 중앙 주추에
묻어야 한다고 하고서는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20190614_114902[물염정 뒤쪽 베어진 나무둥치]

진 처사는 날마다 칡뿌리 기둥을 생각하다 다시 병석에 누웠는데,
용암산 산신이 다시 나타나 뜻을 풀어 줄 사람이 찾아올 터이니 기다리라 하였다.

다음 날 책장수 노인이 나타나 하룻밤 쉬어가기를 청하자
진 처사는 그를 묵게 하고는 은근히 칡뿌리 기둥 이야기를 하였더니,
장흥 天官寺(천관사)에 500년 묵은 칡이 있는데 천관사 스님이 보호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에 진 처사가 천관사를 찾아가 늙은 주지 스님을 뵙고 천관사에서
보호하고 있는 칡뿌리로 기둥을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스님은 전생의 형님을 뵈었다고 하면서 한 달 후에 기둥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하였다.

그 뒤 한 달이 채 못 되어 영벽강에 물이 넘쳤는데,
천관사 스님이 작은 배를 타고 칡뿌리를 물에 띄워 끌고 왔다.
이렇게 하여 칡뿌리로 기둥을 세우고, 즉시 支將像(지장상)을 그려
영벽정 주춧돌 밑에 묻었는데, 그 뒤로 정자는 쓰러지지 않고 무사하였다 한다.

이후 1931년에 원인 모를 불이 났는데 칡뿌리 기둥만은
신기하게도 조금도 타지 않았고 지금도 영벽정 기둥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고 한다.

20190614_114920[좌측 뒷쪽에서 담은 물염정 전경]

제가 들려본 봐로는 영벽정의 기둥들은 다 같았으며,
이곳 물염정 기둥중 단하나의 기둥만 울퉁불퉁 눈에 띄게 세워져 있었다.
아닐지는 몰라도 제 짐작으로는 이곳의 얘기가 잘못 적혀진거나 아닌지…

20190614_114941[뒷쪽에서 담은 물염정 전경]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의 상류로 이 물은 동복수원지로 흘러든다.
물염정 앞쪽이 그 유명한 물염적벽입니다.

20190614_115057[물염정에서 담은 앞쪽 전경]

勿染亭(물염정)을 건립한 宋庭筍(송정순)은 본관 洪州(홍주)
자 中立(중립) 호 勿染(물염) 담양 출신. 할아버지 宋麒孫(송기손)
아버지 宋駒(송구) 어머니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안축(安軸)의 딸이다.

명종 13년(155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조정랑. 구례현감 등을 지냈으며, 성품이 忠厚(충후)하고
효성이 뛰어나 재직 중에 청렴결백하고 덕으로써 정사를 살펴 이름이 높았다.

柳希春(유희춘)과 함께 경사를 강론하였고 宋徵(송징) 등의 문인을 배출하였다.
同福(동복) 滄浪(창랑)에 정자를 세워 거기서 여생을 마친 뒤 담양의 龜山書院(구산서원)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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