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단상
BY 파도의말 ON 9. 26, 2007
내가치매할머니들을만난건작년여름의끝무렵,
그지독했던무더위를간신히넘기고초가을신선한바람을간간히느낄때였다.
어느날느닷없이황혼의늪에빠져생을조금씩바다노을에물들이는할머니들의
모습은삶의가장진실한마지막을정리하는슬픈모습으로보였다.
지치지도않고고기잡이아들을기다리는추자도할머니,오직집으로가고픈욕망
하나로끊임없이탈출구를찾아헤메는강할머니와어느누구손이든잡고놓지않는
애정을갈구하는신할머니,아무리기다려도찾아오지않는자식들의이름을창문에
대고절규하듯부르는김할머니..하루종일망부석처럼말없이앉아계시는고할머니
무슨생각을하실까…
흐릿하게남아있는기억으로묵주기도를하며애쓰는베로니카언니의모양은매우
안타깝게한다.기억의저편에서방황하면서도끝까지놓치못하는건가족을기다리는
공통된할머니들의마음이다.
그토록평생가족을내려놓치못하는그리움은마치인생의슬픈벼랑으로무덤가에
보드라운솜털보송보송하게피어나보기만해도가슴이짠한할미꽃의모습이다.
한편의드라마같은인생을경험하고아내로며느리로어머니로오랜질곡의삶은
반복되는언어와행동안에고스란이배어있다.이제자신의존재의미는상실하고
괴팍한늙은이로남겨진할머니들의나약한모습이머지않은우리들의초상이아닌가..
아무리원하고갈망하여도가질수없는것은모든걸잃어버리는일보다더힘겹다.
무수히변하는계절의흐름처럼삶의흐름도그렇게울고웃으며절망과희망을곁에
두고함께살아가는것일테다.
가끔할머니들의임종을겪는다.생로병사의엄연한진리앞에지상에서의삶은짧고
덧없다.죽음은인생의종말이아닌삶의일부분으로세상떠날것을준비한치매
할머니들은이미세상의낡은옷을버리고,그야말로주님을향하는마지막여정을
위해인간의모든고통을초월한것인지도모른다.
"손자손녀
너무많이사랑하다
허리가많이굽은
우리할머니
너무많이사랑해서
너무많이외로운
한숨같은할미꽃"(이해인/할미꽃)
오늘도바다에노을이진다.굳이노을지는바다를보지않더라도할머니들의얼굴에서
황혼의모습을느낀다.노을지는황혼이이렇게너그럽고아릅다운데비록치매로
정신을놓았지만삶의가장진실한마지막을인정하는황혼의노을이어찌아름답지
않겠는가…
치매할머니들을만난지꼭일년,이제작별을하려는마음에눈물에젖는다.
일년이란시간을치매할머니들과의생활에서치매에대한우울하고적막한편견을
지우게하고치매라는질환에대한또다른의미를알게한인생의진한경험이었다.
다시길을떠난다.언제인가..머지않아치매할머니들을다시만나내영혼의눈에
끼었던무명의백태를벗겨내고나를에워싼이기의허물을말끔히씻어내어정녕
자유롭게사랑할수있도록소망할뿐이다.
그리고치매할머니들을처음만났던초가을햇살좋은날에가졌던그마음이다시
할머니들을만날때까지…언제까지나긴봄볕같은넉넉한마음이었으면좋겠다.
추자도금옥할머니가많이아프다
07/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