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니가 하늘나라로 떠난지 열이틀째다
이 세상의 헌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새삶을 찾아 간지가…
이른아침… 큰언니의 마지막을 보내는 날..
안양에서 대전 국립묘지로 가는 도로는 뿌연 안개비로 덮혀
이정표조차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는지 모른채 갔다
/큰언니는 겨우 76세라겠지만 69세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그 강한 정신력마져 기억을 들락거리며 7년의 투병생활로
우리 네자매와 에쁜 세딸들을 늘 노심초사하게 하였다
이 세상 삶의 고난과 아픔을 안고 살다.. 그 고달픔에서 해방된 듯
싶었으나 병마가 큰언니를 찾아들어 다시 괴롭혔다
/우리는 피난민이었다
1.4후퇴…부모님은 세딸을 평양에서 업고 걸리며 꽝광 언 대동강을 건너
화차 꼭대기에 얹혀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이남에 내려왔다
그때 큰언니 10살 작은언니6살 나 3살…
피난내려온 그 후 두 딸을 더 낳은 엄마의 치열한 삶은 이미 시작되었다
오로지 고향하늘만 바라보고 넋을 놓은 아버지를 대신해
먹고 사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국제시장의 덕수는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아버지가 신다 버린 낡은 고무신을 신을 망정
우리들에게 떨어진 운동화를 신기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시앗을 한 집에 두고 살았어도
그 시앗을 단 한번도 미워하지 않았다
살아생전 여장부처럼 억척같이 살아온 엄마는 딱 한번 흔들리는 모습을보였다.
별볼일 없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였다…
59세에 돌아가신 엄마 대신으로 큰언니가 우리들의 의지였다
엄마를 많이 닮은 큰언니는 일찌감치 철이 들어 파란만장한 삶을
강한 의지로 굳굳이 이겨내더니 외로운 병실에서 쓸쓸히 떠났다
대전 국립묘지에 잠든 남편곁으로…
지금쯤 엄마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리라
딸들을 데리고 이야기하길 무척 좋아하던 엄마였으니까..
“큰언니 ..그 곳도 초여름의 바람처럼 신선하구 아름다운지..
가끔 장미꽃 향기도 은은히 풍기겠지…”
큰언니가 남기고 간 세딸과 네자매…
2016/06/08
데레사
06/08/2016 at 18:04
언니가 저와 나이가 동갑인듯 합니다.
안양에 사세요? 조블때 누구셨는지 여쭤봐도 될런지요?
암튼 글 읽으며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우리 나이의 사람들의 삶이 다 그랬거든요. 고생끝에
좀 편안해 질려니 병이 찾아오고….
언니의 명복을 빕니다.
파도의말
06/08/2016 at 18:34
안녕하세요..동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긴 제주입니다.조블때도 파도의말이었지요.
그리고 본명은 엘리사벳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