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동성당을 찿아서

19세기말제물포에성당이건립된것은이곳이서울의관문이고외국무역의거점이될수있는좋은입지적조건을갖추었다는사실을눈여겨본당시조선교구장블랑(1884∼90년파리외방전교회)주교의결정에의해서였다.

1886년한불수호통상조약의체결로개항지에서의토지매입과성전건축이가능해지자블랑주교는국제도시로부상하고있던제물포에코스트신부(1842∼1896년)를파견해성당건립을서두르게된다.이후페낭신학교에있던빌렘(홍요셉1860∼1938년)신부가초대주임신부를맡아인천지역첫번째본당인제물포본당(답동본당의원래이름)을설립하게되는데,이때가1889년7월1일이다.빌렘신부는일주일후임시성당으로마련한가옥에서84명(한국인59명과일본인25명)이참석한가운데감격적인첫미사를봉헌했다.

답동성전의건립은빌렘신부가이듬해지금의성당자리인답동언덕에대지3,212평을매입함으로써첫발을내딛게된다.1890년용산예수성심신학교로전임된빌렘신부에이어르비엘신부(신바오로1890~1893)가2대신부로부임해성당건립기금을마련하고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에수녀를요청하는등많은노력을기울였지만병으로인해휴양을떠나면서성전건립은1893년에부임한마라발(서요셉1893∼1904년)신부의몫으로넘어갔다.

마라발신부는부임하자마자수녀원건립을시작하는동시에코스트신부로부터성전설계도를받아기초공사를시작했다.1894년청일전쟁으로잠시중단되었던성전건립은1895년정초식을갖고본격적인공사에들어간다.이듬해종탑이완공되고마침내1897년7월4일조선교구장뮈텔(1890∼1933년재임)주교가참석한가운데역사적인축성식이거행됐다.300평규모로전면에3개의종탑을갖춘로마네스크양식의성전이었다.

1933년신자수가1500여명에육박하게되자제4대드뇌(전으제니오1904∼1937년)신부는증축계획을세우고1935년부터성전의외곽을벽돌로쌓아올리는개축작업을시작하여2년후인1937년원라리보(1933∼1940년재임)주교주례로성대한축성식을가졌다.웅장하고화려한자태로인천시민들로부터많은사랑을받아온답동성당은문화예술적인가치를인정받아1981년사적287호로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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