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 창덕궁 탐방)을 찿아서…

2012년9월5일.

아침에는날씨가쌀쌀하더니한낮에는강렬한태양이무척이나

뜨거운날씨였다.

오후에서울창덕궁을다녀왔다.

조선시대의임금이거주하였던곳으로우리에게는너무나소중한

문화유산으로앞으로후손에게도물려줄문화유산인것이다.

사진카페회원님들과종로3가역에서만나서돈화문을지나서

궁내를들려보면서역대임금이거주하였던공간과전각들을

담아보게된다.

지난달강원도강릉대관령휴양림에서만났던금강송이엣날에

한양으로옮겨져서궁을신축하는데쓰여지였을것인데다시한번

새롭게전각의대들보나기둥을눈여겨보게된다.

창덕궁은1977년도에세계문화유산으로유네스코에등재되여있다고

한다

현재서울에남아있는조선시대의5대궁궐은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운궁)그리고경희궁(경덕궁)이다.

태조이성계는조선을건국(1392년)하고나서수도를지금의서울인한양으로옮긴뒤제일먼저종묘와사직그리고궁궐인경복궁을세웠다(1394년).그리고3대태종때(1405년)에는경복궁의동쪽에창덕궁을창건했다.이로써정궁경복궁에이어이궁창덕궁인양궐체제가확립되었다.그러나임금들은경복궁보다창덕궁에거처하는것을더선호했다.그리하여많은임금들이창덕궁에서거처하면서함께거처하는식구들도늘게되었다.따라서성종때이르러서는세분의대비를위해서창경궁을세우게된다.그러나창경궁은원래수강궁(세종대왕이상왕아버지태종을위해서지은곳)이라는곳에몇개의건물을더만들어붙여진이름이었다.창경궁은창덕궁옆에위치하여창덕궁의부속역할을많이하였다.
그후1592년임진왜란으로경복궁,창덕궁,창경궁이모두불타없어지게된다.일년정도의시간이지난뒤선조는창덕궁을재건하게된다.이는경복궁이풍수지리학적으로길하지못하다는판단에서그런것이었다.그리하여창덕궁은1610년광해군때다시지어져서마지막황제에이르기까지270여년간경복궁을대신하여정궁의역할을하고창경궁은1616년에복원되었다.

반면덕수궁(경운궁)은원래는성종의형월산대군의후손의집이었으나그후선조가임진왜란당시임시로거처하는행궁(왕이궁궐을떠나잠시경유하는궁)으로사용하였다.그후광해군은이곳에서즉위한후경운궁이라이름지어7년간왕궁으로사용하였다(‘덕수’란말은궁궐자체의이름이라기보다는그궁궐에사는고종에게붙여진이름이다.1907년일본의압력에의해타의적으로붙여진이름이덕수궁이다).광해군은즉위한후인왕산아래,지금의사직단뒤편에인경궁,그리고그앞쪽지금의새문안길가에경덕궁(경희궁이란이름은영조대에바뀐이름이다)을지었다.그러나광해군은몇가지무리한정책으로인하여왕이된지15년이되는1623년인조반정으로왕위에서쫓겨나고인조가왕이된다.인조는광해군대에지었던인경궁을헐어다창덕궁과창경궁을보수하였도경덕궁은그대로두어이궁으로사용하였다.이로써창덕궁과창경궁이정궁이되고경덕궁(경희궁)이이궁이되는새로운체제가성립되어조선후기내내지속되었다.

조선후기의정궁으로쓰이던창덕궁은고종초년에경복궁이중건(1868년)되자그지위에변동이생긴다.경복궁이다시정궁의지위를회복하고창덕궁와창경궁은이궁으로쓰이며그때까지이궁으로쓰이던경희궁은빈궁궐이되었다.고종은경복궁과창덕궁으로오가면서생활하였다.고종대에왕이궁궐을옮기는이유는여러가지가있지만1894년국내에서는농민전쟁이일어나고대외적으로는이를핑계삼아청나라와일본이우리나라에서전쟁을벌이는청일전쟁이일어났다.청일전쟁에서승리한일본은고종에게압박을가하여고종은경복궁에서창덕궁으로옮겼다가두달도못되다시경복궁으로옮기는불안정한상태였다.이러한상황에서일본은이른바갑오경장(엤날식의정치제도를서양의법식을볻받아고친일)을실시하게하는등계속우리나라에압력을가하였다.고종과그비인명성왕후는러시아의힘을빌려일본을막아보려했지만오히려일본은일본공사마우라의지휘아래일본군인,자객들을동원해경복궁에서명성왕후를살해한다.이를을미사변(1896년)이라한다.이렇게압박을가하는일본은외국의힘으로막아보려고종은같은해러시아공사관으로거처를옮긴다.이를아관파천이라한다.이로써정궁인경복궁이나이궁인창덕궁은모두빈궁궐이되고만다.다시돌아오라는국민들의여망의따라고종은1년만에궁궐로돌아온다(1897년).그러나고종은경복궁도창덕궁도아닌월산대군의후손의집을확장,대대적으로보수하라는명을내리고경운궁이라고칭하고그곳으로환궁한다.고종은경복궁에서왕비가일본인들에의해참혹한최후를맞았던기억을되살리고싶지않았기때문에새로운곳을택한것이다.고종은경운궁으로돌아간뒤대한제국을선포하였다(1897년)그러나경운궁은1904년의대화재로인해거의모든전각들이소실되었다가1905년-1906년에대부분의전각들이복원되었다.
한편경희궁은광해군때지어진뒤여러왕들이태어나고즉위식을갖는등이궁으로서역할을하다가20세기초에들어오면서일제의강점으로뜯겨나가고헐리고해서그정확한때를알수없으며오직궁궐지의기록에의해서찾아볼수밖에없다.

일제강점기때수난을당한궁궐은비단경희궁뿐이아니었다.일제는경복궁흥례문자리에조선총독부를설치하였으며창경궁에는동물원과식물원을개설하여일반인에게관람하게하면서격하시켜’창경원’이라부르게하였다.

이렇듯조선의5대고궁은국가의흥망성쇠에다라그운명을같이해온우리역사의동반자이다.시대가변하여차차원래의모습으로보수,복원되어가고있지만지나온그역사는궁궐각건물의공간안에현존한다.그러기에고궁탐방은단지휴식을취하고볼것을즐기는눈요기가아니라우리선조들의숨결을함께느껴볼수있는역사현장으로의초대가되는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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