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을 돌아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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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이꽃.수원화성.

사적3호인수원화성은아버지장헌세자에대한효심으로부친의원침을

수원화산으로옮긴조선22대정조대왕이1794년1월에착공하여서

2년9개월만인1796년9월에완공한성이다.

둘레가약5.7킬로성곽높이가4-6미터로실학자인유형원과정약용이

설계를하였고석재와벽돌의병용.화살과창검.총포를방어하는근대

적인성곽구조를가졌다.

또한용재를규격화하고거중기등의신기재를이용해서과학적이고실용

적으로축조를해서건축사상독보적인건축물로평가를받고있다.

이후200여년성곽과시설물이무너지기도하고특히한국전쟁을겪으면서

시설물이무너지기도하고파손이되였다.

그러나축조상황을기록해놓은(화성성역의궤)에의거1975년부터보수,복원

을하여서1997년2월에이태리나폴리에서열리는유네스코세계유신위원회

제21차총회에서세계문화유산으로등록되였다.

수원화성은정조의효심이축성의근본이되었을뿐만아니라당쟁에의한당파정치근절과강력한왕도정치의실현을위한원대한정치적포부가담긴정치구상의중심지로지어진것이며,수도남쪽의국방요새로활용하기위한것입니다.

수원화성은규장각문신정약용이동서양의기술서를참고하여만든「성화주략(1793년)」을지침서로하여,재상을지낸영중추부사채제공의총괄아래조심태의지휘로1794년1월에착공에들어가1796년9월에완공(공사기간총33개월)하였습니다.

축성시에거중기,녹로등신기재를특수하게고안·사용하여장대한석재등을옮기며쌓는데이용하였습니다.수원화성축성과함께부속시설물로화성행궁,중포사,내포사,사직단등많은시설물을건립하였으나전란으로소멸되고현재화성행궁의일부인낙남헌만남아있습니다.

수원화성은축조이후일제강점기를지나한국전쟁을겪으면서성곽의일부가파손·손실되었으나1975~1979년까지축성직후발간된"화성성역의궤"에의거하여대부분축성당시모습대로보수·복원하여현재에이르고있습니다.

성의둘레는5,744m,면적은130ha로동쪽지형은평지를이루고서쪽은팔달산에걸쳐있는평산성의형태로성의시설물은문루4,수문2,공심돈3,장대2,노대2,포(鋪)루5,포(砲)루5,각루4,암문5,봉돈1,적대4,치성9,은구2등총48개의시설물로일곽을이루고있으나이중수해와전란으로7개시설물(수문1,공심돈1,암문1,적대2,은구2)이소멸되고41개시설물이현존하고있습니다.

수원화성은사적제3호로지정관리되고있으며소장문화재로팔달문(보물제402호),화서문(보물제403호),장안문,공심돈등이있습니다.수원화성은1997년12월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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