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이어온 진천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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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도 6월중순 을  훌쩍 넘어 가는날짜가 되여버렸다.

무더위로  비가오지않는 가뭄으로 너무 일찍이 찾아와서 한낮에는 한여름 기온으로

올라가서 더워서 벌써 한낮에는  다니지를 못하겠으니 계절은 어드덧 여름의 폭염 속 으로

 다가서는 듯하다.

어제는 고향 청주 를 자주가는편인데 중부고속도로 상행선   증평 iC를  지나서 얼마 가지 않으면은

진천 농다리가 있는 거대한 표지퍈이 나온다. 이 표지판의 아래가 농다리가 있는곳이다.

상행선을 지나면서 수 없이 지나쳣던 곳으로  진천 문백면 구곡리 601-32번지 농다리

를 큰맘먹고 다녀 왔다.

집에서 어딜가려면은 새벽에 나서는 아침형 으로 일찍이 청주와 오창을 들려서 부지런이

일을 보고 오창 선영에도 들려보고 날씨가 더워지기전에 들려본다고 하면서 농다리를

들려 보게되었는데 농다리 에서 작은고개를 넘으면은 초평지도 들려보게 되였다.

요즈음은 어느 지자체도 그지역의 명소나 유원지는 관광객들이 찾아서 즐기고 편리하게

 개발을 하여 놓았다.  농다리를  건너서 초평지를 연계해서 들려보게 해놓은 것이다.

농다리를 건너면은 시작되는 초롱길은 산쪽으로 농암정까지 가볍게 걸을수있는

트래킹코스가 이여진다.

언덕길 너머로는 초평호를 끼고 호수 수변탐발로가 이어지는 것이다.

농다리 건너편에 있는 초평호 가  주변 두타산과 삼형제봉에서 초평호를 내려다보면은

한반도의 지형과 만주벌. 제주도의 형상이 탄성을 자아내기 한다고한다.

농다리 주차장에서 농다리를 가기전에 포토존으로 설치하여놓은곳이다.

진천 문백면 농다리.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은 물살에 마치 떠내려 갈듯한 돌다리인데 이렇게 불안하게

보여지는 농다리가 어떻게 천여년을 버티고 있을까요.

이다리가 그토록 튼튼하게 조성된 다리로 유선형 교각과 작은돌 과 그리고 큰 장대석

이 조합된 다리로 자연석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돌다리 라고 합니다.

아마 많은  수천 수만명이 지나가서 밟아서일까요.

오랜세월을 지나서 이렇게 자리잡고 있으니 엣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되고 긴 돌다리로서 전체 28칸의 교각으로 지방유형문화재

제 28호로 지정되어 있다.

농다리의 거리는 약 100여미터 가 될듯한데 누구나 건너면은 신기한듯 걸어가는듯을

볼수가 있습니다.

농다리를 건너기전에 농다리 전시관이 있어서 농다리에 대한 정보를 알아볼수가

있다.

너무비가오지않는 가뭄으로 농다리 아래의 세금천의 수량도 적기만하다.

아마 홍수에 수량이 많으면은 농다리를 훌쩍 넘어서 흐르게 되는데 조상들의

지혜가 그세찬물결에도 돌무리 들이  떠내려가지않고 있다는것이다.

홍수때에 물살이 아주 강하게 흐를때에 농다리가 제역활을 하는모습을

문뜩 보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야 어서 와라.

 ​

자연석을 기둥으로 만든 교각위로 사람 키 정도 크기의 장대석이 설치되여 있는데요.

농다리를 건너면서 기우에 그냥 좌우로 한번 흔들어보게되였는데 전혀 흔들리지

않는것입니다.

농다리를 건너면은 정자가 있고 생거 진천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고 표지판을 지나서

위편으로 인공폭포가 있는데 너무 비가 오지않는 가뭄이여서 이곳 폭포도 가동을

멈춘것 같습니다.

생거 진천의 명소에는 이런 붉은 여권도장함이 설치되여 있습니다.

농다리를 들려보고 초정지와 보탑사를 들려보았는데 이곳에서도

도장함이 설치되여 있엇습니다.

[농다리에 관한 전설]
* 농다리
임장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몹시 추운 겨울 어느날 세금천 건너편에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여인에게 물으니 여인이 답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셔 친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장군은 여인의 지극한 효심과 그 모습을

 딱히 여겨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하며, 용마의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용바위(쌍바위)라고 전해지고 있다

* 임연 오누이 힘내기 설화
옛날 굴티 임씨네 집안에서 아들, 딸 남매를 두었는데 둘 다 훌륭한 장사라서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 아들(임장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로 갔다가 오기로 했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여,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고

 딸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갔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살릴 묘책을 내어 딸에게는 뜨거운 팥죽 등 먹을 것을

 해다주며 일을 늦추게 하였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온 것에 화가난 딸은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는데,

아직까지도 그 돌이 그대로 박혀있다. 약속대로 딸은 죽게 되었고, 딸이 마지막 한 칸을 놓지 못해서 나머지

한 칸은 일반인이 놓았다. 역사적으로 여장수가 놓은 다리는 그래도 있는데, 일반인이 놓은 다리는 장마가

지면 떠내려 간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농다리 위에는 황새 한마리가 외로이 먹이를 찾는것 같습니다.

낮선 이방객을 두리번거리면서 쳐다보는듯합니다.

 

농다리를 건너서면은 작은재를 올라서면은 바로 초평호를 바라볼수가 있습니다.

용고개 성황당이라는표지판이 잇는데 엣전설이 적혀 있는것을 볼수가 잇습니다.

저도 성황당 돌무덤에 작은돌을 주어서 올라놓습니다.

전국에서 낚시터로 유명하고 붕어 낚시로 잘알려진곳으로 초평호는 충북에서

가장큰 호수로 유명하다. 해방이후에 축조된 저수지로서 1985년도에 증설된

초평호는 이곳에서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데 충북 청원군 오창읍 비옥한 농경지와 증평읍.

청원군 옥산면과 충남 조치원까지 농업용수를 공급하여서 농사를 짓게 하는  매우중요한

저수지 라고 볼수가 있다.

그런데 이곳 초평호도 너무가뭄이여서 호수의 수량이 얼마 안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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