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한국전쟁 참전용사 알버트 할아버지
알버트할아버지는혼자사셨다.
아들딘가족은미국보스톤에살았다.
매년여름방학과크리스마스때면꼭방문을해서할아버지와함께지낸다고했다.
그외도여름방학이나시간이날때방문을했다.
우리가족도벌써여러차례만났다.토론토올때마다우리가게에들리셨다.
딘과에이바부부는서양사람들인데도부모공경을잘하고
참착하고효성도지극하고좋은사람들이었다.
한국에계신할아버지가많이보고싶을때는대신해서알버트할아버지를뵐수있어서너무좋았다.
딘은엘리자벳이란예쁜딸이있는데알버트할아버지는
나를볼때마다손녀엘리자벳을만난것같다고아주좋아하셨다.
엘리자벳이나와나이가같아서더욱그렇게느껴지신것같다.
딘은치과의사이고에이바는변호사인데에이바는하바드대학교에서
학생들을가르치는교수님이기도했다.
우리나라사람들은하바드대학교를최고의대학으로생각하는데우리부모님역시그러시다.
에이바를보니정말하바드에서공부하고싶다는생각이들기도했다.
내가너무도높은곳에있는거라생각한하버드대학교수님인에이바는
물론이고딘도참으로겸손하고우리아빠,엄마께많이감사해했다.
우리가할아버지를잘챙겨드리는것이너무고맙다고하셨다.
엄마는해드린것도없고오히려우리가더많이은혜를입었다면서대답하시곤했다.
엄마는알버트할아버지를정말우리할아버지뵙듯요리를하면나보고갖다드리라고도했다.
가게에물건을사시면그냥드릴때가더많았다.
할아버지가그렇게하면물건사러못온다고하도말씀하셔서엄마는정말우리가사온가격만
받고전달해드리기도했다.
할아버지께서젋은시절우리들에게해주셨던그사랑을우리가이민와서이웃에사시는
할아버지께조금이라도도움을드릴수있음이너무도감사했다.
우리아빠,엄마는알버트할아버지를친할아버지처럼존경하며잘섬겨드렸다.
왜냐하면
친할아버지를뵙는것같아서이기도하지만
우리나라6,25전쟁때목숨을내걸고위험한곳에와서우리를도와주신분이기때문이었다.
엄마는항상알버트할아버지같은분이아니었으면우리가캐나다에이렇게와서살수도없었다면서
우리들에게한국전쟁에대한이야기를자세히잘들려주셨다.
엄마는직접경험하지않은전후세대시지만
좋아하는책읽기를통해서또외할머니께피난시절이야기를많이들으면서알게되신것을
우리들에게잘말씀해주셨다.
한국전쟁이야기는
내또래들에겐아주아주먼정말너무도먼옛날이야기같았다.
그런데실제로곁에계시는알버트할아버지가겪으신일이라고생각하니
그리먼옛날이야기만은아니다싶었다.
전쟁은말만들어도너무무섭고싫었다.
그전쟁터에먼나라,잘아지도못하는사람들을위해27살의젊은청년이가서싸워주었다는것이
내게도감동이었다.
엄마를통해서나도알버트할아버지를더좋아하고존경하게되었다.
1950년,한국전쟁때27살의치과의사젊은청년알버트를생각해보고그려보았다.
그때는더욱힘찬기백과잘생긴모습이었을할아버지모습이상상이되었다.
우리나라가전쟁으로인한나라의손실도크고사람들이살기가어려워져서힘들때
누군가의도움이절실히필요했을텐데우리를도와주러온UN의많은사람들이감사하게전해왔다.
1950년6월28일UN회원국들은한국이북한의무력침공을격퇴하는데
필요한원조를제공하도록결의했다는것을엄마가주신한국역사책속에서읽었다.
UN군지원규모만194만1000명이었다고하니정말대단했다.
이름도처음들었을동양의너무도작은나라코리아의자유를지켜주기위해16개국에서
이젠다할아버지가되신그당시의젊은오빠들이와주셨다는것이
너무도가슴뭉클한감사로전해졌다.
알버트할아버지덕분에나는한국에살때도별로느끼지못하고관심도없이지냈던
한국전쟁에대한자세한이야기와관심을갖게된것이감사했다.
캐나다는미국,영국에이어3번째로가장많은인원을파견했다고한다.
캐나다는2만5687명이참전했고312명이나전쟁에서전사했다고한다.
1212명이또부상을입었다고한다.
한국에서도미처몰랐던사실을나는알버트알아버지덕분에관심을갖고알게되어감사했다.
할아버지를통해들으니놀랍게도젋은이들이모집광고를보고자신의이름을적어냈다고한다.
그때지원자는경쟁률도높았다니정말보통상식으로도믿기기어려운사실에나는감동이되었다.
어떻게전쟁터에서로나가겠다고지원한사람들이그렇게많았고
그래서경쟁률이엄청났다니놀랍기만했다.
어떻게그게가능할까?라고나는생각했다.
사랑!
정말바로그사랑이피끓는청년들에게있었던것이다.
그리고자유를찾아주고싶은뜨거운열정이그들에게있었던것같다.
나는서로한국전쟁에가겠다고이름을써낸사람들의경쟁률이높았다는말에
가슴이찡하니할말을잃었다.
나도내가비록아직은어리고힘도능력도없지만,앞으로
내안의뜨거운사랑을키워그사랑을어떻게나타내고표현하고
세계평화와자유수호를위해어떤일을어떻게해나가야될지?를생각해볼수있었다.
참으로내겐의미있었다.
그리고도전이되었다.
한국전쟁에가면별도의돈보상도없는데어떻게목숨을내놔야하는전쟁에스스로
자기이름을써낼수있었을까?
나는정말이해하기가어려웠다.
아무리생각해도내머리로는이해가안되었다.
알버트할아버지는말씀하셨다.
그당시는2차세계대전이끝난지얼마되지않았다고한다.
캐나다젊은이들사이에는자유세계를지켜야한다는의지가아주강했다고한다.
알버트할아버지역시피끓는젊은청년으로서너무도당연하게느껴졌기에
지원을했다고한다.
나는할아버지가정말저절로존경이되었다.
너무고맙고감사했다.
내가이렇게캐나다에와서공부할수있는것도다이렇게자기목숨을내걸고싸워준
수많은분들의선물이라는것이실감이되었다.
미국·영국·캐나다·네덜란드·호주·뉴질랜드·프랑스·필리핀·터키·태국·그리스·남아프리카공화국·벨기에·룩셈부르크·
콜롬비아·에티오피아로16개나라가우리들을도왔다.
참고마운나라들이다.
나는이16개국의이름을하나씩다시되내어보았다.
미국·영국·캐나다·네덜란드·호주·뉴질랜드·프랑스·필리핀·터키·태국·그리스·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룩셈부르크·콜롬비아·에티오피아.
정말생각할수록너무도고마운나라다.
내가늘기억하고나도앞으로할수있는일을힘써해주고싶은나라들이다.
1954년11월3일여단장F.A.Clift에의해공식적으로개교한학교가노곡초등학교라고한다.
경기도연천군에있는노곡초등학교는38선에서남쪽으로매우가까운곳에위치해있다고하셨다.
한국전쟁중경기도연천군백학면의캐나다보병의본부가있었던장소에서가까운곳이라고한다.
한국전쟁당시청년에서이제백발의할아버지가되어서그들이지었던학교를다시찾을때의느낌은
정말남달랐을것같다.
한국전쟁과캐나다의역사의사연이담겨진노곡초등학교를다음에한국방문하면나도꼭들러보고싶다.
노곡초아이들은빨간관악단유니폼을단정하게차려입고는미숙하지만,
그래서더사랑스러운연주로참전용사들을맞이했다고알버트할아버지가전해주셨다.
알버트할아버지는노곡초등학교가처음지어졌을때는반이단2개뿐이었다고했다.
알버트할아버지는노곡초등학교가처음지어졌을때는반이단2개뿐이었다고했다.
원래계획은5개반을만들려고했는데선생님이2분밖에없었기에어쩔수없이2개반을만들었다고했다.
내가그때그곳에있었고선생님이었다면정말더많은아이들에게좋은헤택이주어졌겠다싶어
아쉬움이남았지만학교가세워졌다는그자체가참으로감사했다.
알버트할아버지는캐나다대사관에서캐나다관련도서도노곡초등학교에선물했다고하셨다.
나도할아버지덕분에한국역사도,캐나다역사도더관심을갖고읽게되어감사했다.
청년때의알버트할아버지는유난히아이들을좋아했다고한다.
지금도여전히우리5남매를너무도사랑해주시고아껴주시는것을보면
청년때의모습또한어떠했을지그려진다.
캐나다에서주일학교선생님을하셨기때문에한국에서도아이들을모아두고성경이야기를
곧잘들려주었다고하신다.
알버트할아버지는당시치과의사로캐나다군인들의건강을돌보기위해서한국으로파견되었다고하신다.
알버트할아버지는또캐나다의마더데레사라고불리는로타히치마노바에대한이야기도들려주셨다.
로타히치마노바는캐나다에서가장국민적으로인정받는분중한분이다.
나도학교에서수업중에만난사람인데우리나라와관련된훌륭한사람이라기억하고있었다.
로타는굉장한휴머니스트였다고한다.
어려운사람들을돕기위해서는그녀스스로수단이되는걸거리끼지않았다고한다.
몸소도움이필요한사람들을돕기위해서실천을했다고한다.
로타의행동이캐나다인들의마음을움직였다고한다.
캐나다인들은그녀를본받아어려운사람들을돕기에나섰다고한다.
로타의진실한마음이캐나다인들에게감동과감화를준것이었다.
알버트할아버지가전쟁통에있는한국아이들을돌보게된것도로타의영향이었다고말씀해주셨다.
나도로타처럼행동하는죠이가되어야겠다는다짐을할아버지이야기를들으면서더욱다질수있었다.
로타는1952년에한국을방문했고1954년에또방문을했다고한다.
제대로먹지도못하고헐벗고병들어있는어린이들을보고너무도가슴이아파서그당시군대높은사람에게말해서
도와줄것을간곡히부탁했다고한다.처음방문했을때는그부탁을잘안들어주었는데2년뒤에다시왔을때는
들어주게되었다고한다.
정말나도로타와같은사랑을실천하는여성으로성장해야겠다는다짐을하게되었다.
알버트할아버지는캐나다표시가달린배지를아이들에게선물하셨다고했다.
천진난만하게손을흔들던노곡초등학교아이들이눈에선하다는알버트할아버지의이야기를들으면서
할아버지가더욱귀하고감사하게느껴졌다.
알버트할아버지는우리아빠보고항상
‘의지의한국인’이라며칭찬을하셨다.
아빠가아침7시30분에가게문여시고밤11시30분까지성실하게가게일하시는것을
대단해하셨다.
전쟁으로많은집들이부서지고다무너졌을때지을만한자재조차부족했다고한다.
한국사람들이찾아와서자재만구해주면집을지을수있다고해서캐나다군인들이그자재를찾아주었다고한다.
정말그랬더니한국사람들이집을너무도직접잘지었다고했다.
알버트할아버지는그때의그기억때문인지항상한국을말할때면
‘EnergeticKOREA’라는표현을즐겨쓰셨다.
폐허가된곳에그렇게집을잘도짓던한국사람들이오늘이렇게잘사는한국을만들어낸원동력이라셨다.
그러시면서우리아빠를늘대단한한국사람이라고칭찬해주셨다.
나는할아버지의그칭찬이너무듣기좋아서우리아빠가자랑스러웠다.
삶의터전을잃었고,무수한사람들이목숨을잃었던한국전쟁이다.
어떤것도제대로남아있지않았던한국이지금의한국으로성장하기까지는많은도움의손길이있었음을
새삼가까이서느끼며내가슴은감동과감사로눈엔눈물이핑돌았다.
지금우리나라는이렇게성장하여캐나다참전용사들을초대할수있다는사실이기쁘다.
그가운데알버트할아버지도함께시니더욱기뻤다.
우리가어려웠을당시에자발적으로낯선땅에와함께싸우고,한국을지키며,가진것을나눠주었던
캐나다에내가와서살고있음이감사했다.
이제우리가그리고내가그은혜를갚아갈때라는결단을단단히했다.
지금의우리나라대한민국이있고
그리고지금내가여기있을수있게도와주신
알버트할아버지를나는더많이사랑하게되었다.
(계속)
만년 중년 !!
2014년 11월 4일 at 1:04 오전
카나다에계시는모든대한민국에서오신분들이
님과같이하신다면
더욱빛이날것입니다
김수남
2014년 11월 5일 at 2:51 오전
캐나다오신모든대한민국분들이다참훌륭하십니다.
격려해주셔서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