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치과대학 졸업을 앞 둔 큰 아들이 “아빠,엄마께서 하루 16시간씩 가게서 일하시던 모습 보면서 성실을 배웠어요.”라며 새벽에 전화해서 말하는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낯선 이민 땅에서 잘 살려면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속히 내려 놓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들었고 저희 부부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가게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민 올 때는 가게의 ‘ㄱ’자도 생각 안했습니다.
직장 생활만 하다 왔으니 직장 찾아 직장 생활 할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이민오자마자 고3학생처럼 도시락 싸서 도서관 가서 머리 싸매고 2달 공부해서 금융계쪽 자격증을 따서 로얄뱅크 캐나다 인슈어런스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한국과 분야는 다르지만 영어를 한국서도 잘 해서인지 수월하게 직장은 잘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곳 금융계가 그리 월급을 많이 주지 않았습니다.
한국 경력이 전혀 인정되지 않기에 신입이었고 ,그 때 넷째 낳기 전이어서 아이 셋이지만 생활하기가 빠듯했습니다.
부모님께 용돈도 보내드리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마음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캐나다서 이민자로서 살아 본 덕분에 직장보다는 작아도 내 비지니스가 낫겠다는 결론을 이민 경험으로 내렸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가게를 할 작정을 했습니다.
저희는 독립이민이었기에 특별한 제약이 없어서 언제든 좋은 가게를 찾으면 할 생각으로 남편은 하던 일을 하면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이면 아이들이랑 함께 신문에 난 물건들을 소풍 다니듯이 찾아서 구경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가게를 찾았습니다.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이민와서 선물로 받은 6개월된 넷째를 등에 업고, 이민 온 지 2년 2개월만에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낯선 땅에서 경험없이 하는 일로 이만한 것이 없다 생각하며 고생이라 생각지 않고
즐겁게 감사히 일했는데 아이들은 한국에서와 너무도 다른 생활을 하시는 아빠 엄마가
많이많이 고생하신다 싶어했던가봅니다.
막내를 잘 돌봐 준 것은 물론이고 짬짬이 가게를 잘 도와 주었습니다.
여러가지 감사한 에피소드가 정말 가게 운영하면서 많이 있었습니다.
19살 이상이라야 담배를 살 수 있는데
19살도 안된 아들이 담배를 팔면서
19살 넘는지 신분증을 확인할 때의 주인으로서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 속에서
아이들이 참 고마웠습니다.미안하기도 했고요.
평일은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1시 30분
토요일은 8시부터 밤 11시 30분
주일도 문을 열어서 8시 30분에서 11시30분까지였습니다.
주일에 문닫는 비지니스를 찾고 싶은데 세탁소 밖에 없기에
수선 기술이 없는 저희 부부는 컨비니언스 스토아를 시작했습니다.
전도해야될 분을 가게에 일하게해서 미안하지만 헬퍼 분 덕분에
주일에 교회가서 믿음 생활도 잘 했습니다.
헬퍼가 갑자기 못오면 가게 문을 닫아 놓고 가게 문 앞에 예배 드리고 온다고
안내문을 붙여 놓고 예배드리러 갔습니다.동네 손님들이 너무 착하고 좋아서
저희는 가게를 너무도 즐겁게 알차게 잘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예수님을 믿으니 수요일 저녁도 새벽도 예배는 우선으로 지켰습니다.
그리고 가게를 하면서부터 한국의 양가 부모님께도 조금이지만 매 달 용돈을 보내드렸습니다.
선교사님들께도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의 정성을 드리면서 수입을 떼어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모르는 것같아도 아빠,엄마가 어떻게 사시는지?를 늘 가까이 알았던가 봅니다.
아들이
“어머니!,저가 돈 벌면 아빠,엄마 용돈 많이 드릴게요,아빠,엄마도 항상 할아버지,할머니께 그렇게 하셨으니요.”
라며 말하는데 정말 아이들은 모르는 것 같아도 아빠,엄마의 뒷모습을 다 보면서 자연스럽게 또 그런 모습을 닮으며 성장한 다는 것을 체험하며 감사합니다.
아빠,엄마 고생하시는 것을 자기들이 속히 그만 하시게 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정말 가게 운영하느라 제대로 잘 못해주고 가게 우선 챙기느라
아이들은 정말 제 때 밥을 못 준 적도 있고 미안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기들이 오히려 아빠,엄마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각오를 했다니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정말 너무도 감사합니다.
이제 큰 아들이 치대 졸업을 하면 치과의사로 미국서 일을 하게 됨이 감사하고
둘째도 형이랑 우애있게 지내며 작년에 좋은 의사가 되는 길로 들어선 의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음이 참 감사합니다.
매 년 여름 방학이면 단기 선교에 동참하더니 자기들이 장래에 어떤 일로 어떻게 살아가야될지?를 잘 정하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첫째,둘째 덕분에 셋째도 넷째도 즐거이 학교 생활하며 학교가 재미있고 공부가 즐겁다니 정말 너무도 감사합니다.
새벽 일찍 늘 깨는 모습도 ,삶을 사랑하며 성실히 임하는 자세도 그렇고 ,감사하는 마음도 그렇고….
여러부분에서 아들들이 아빠를 참 많이 닮았다 싶어 아들에게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아들의 그 입술의 고백들마다 정말 저는 가슴 울리는 가슴 메이는 감사를 가득 안게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삶을 기뻐하며 즐겁게 성실히 사는 모습이
가장 최고의 자녀 교육임을 새삼 감사하게됩니다.
결혼하고 28년이 되는 올해도 여전히 저희 부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소망안에 사랑하며 살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2002년 5월부터
2011년 6월까지 10년간 만 9년 1개월 운영한 하루 16시간의 가게 일!
그 가운데서 저희 가족들의 꿈이 영글어 왔고
그 가게 덕분에 남편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저도 하고 싶은 공부를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지금은 가게 때 만큼은 아니지만 (때론 가게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밖에서 일하는 날이 있기도하지만)
남편이 신나게 온 토론토를 누비며 좋은 분들을 만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에 감사합니다.
가게에 메여 있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퇴직이 없는 부동산 리얼터 일을 함도 감사합니다.
새벽에 전화 준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 저희 부부는 오늘도 더욱 기쁘고 감사한
‘오늘!’을 풍성하게 한아름 선물로 안았음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