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일가 친척들이 거의 다 조선일보를 구독했습니다. 이민와서 보니 캐나다는 벤쿠버에서 발간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토론토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일보를 구독합니다.
이곳 뉴스와 고국 뉴스를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금방 볼 수 있지만 종이 신문으로 받아 보는 느낌은 또 항상 새롭고 좋습니다.
지난 번 백종원씨 관련 기사를 보니 한국보다 일주일 늦게 이곳에서 받아 볼 수 있었는데
아마 이 기사 역시 한국에서는 일주일 전에 나온 것이거나 LA한국 일보에서 발행된 것을 토론토에서 발간하는 듯합니다.
저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최근에 조금씩 관심도 생겼습니다.
국제시장을 필두로 작년엔 정말 기록을 새웠습니다.캐나다에 이민와서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우리나라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맛보았으니요.
연평해전,암살 ,베테랑도 좋은 영화라고 해서 저가 보고 싶어서 찾아서 갔으니 정말 저 개인적으론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그 만드는 과정과 또 그 안에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통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땐 가보려고합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LA한국일보 편집위원이신 박흥진님이 화요일자 A6면 오피니언에 올리신 ‘이키루’란 제목이 눈에 띄어 읽었습니다.
저가 아직 전혀 몰랐던 영화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관심 있게 읽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박흥진님이 1월22일에 올리신 것이네요.같은 내용이 있어서 옮겨 왔습니다.그리고
사진까지 곁들여져서 더 소상히 된 영화 내용이 있어서 옮겨 왔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 모두에게 우리 자신들의 생의 마감 앞에서의 모습을 미리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1,26,신문을 읽다가 함께 나누고 싶은 영화 내용을 통해 저도 저의 삶을 잠시 깊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신문을 볼 때면 꼭 부음을 읽는다. 우선 내가 어느덧 나이를 먹어 죽음을 낯설어하지 말아야 할 때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나이 또래의 어느 지인이 별세했는지도 궁금해서이다. 그런데 부음을 읽다보면 씁쓸한 심정이 들곤 한다. 부음란에 난 고인들은 다 살았을 때 ‘장’자리 하나 정도는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서도 신분에 층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입맛이 써지곤 한다.
그런데 당신은 앞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는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하겠는가. 도쿄 달동네 구청의 시민과장 와타나베 간지는 모기가 들끓는 동네 시궁창을 덮고 그 위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짓는다. 와타나베는 일본의 명장 쿠로사와 아키라의 죽음을 통한 삶의 확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그린 ‘이키루’(Ikiru·1952)의 주인공이다.
인간은 미련해서 죽음을 맞아서야 삶을 추스르는데 평생을 공무원 생활을 한 와타나베도 의사로부터 위암으로 앞으로 6개월밖에 못 산다는 통고를 받고나서야 사람다운 삶을 시작한다. ‘이키루’(산다는 뜻)는 와타나베의 숨 막힐 것 같은 무기력한 삶으로부터 역동적 인간에로의 변신을 우수와 비감 속에 생명 찬가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쿠로사와의 영화이기도 하다.
홀아비로 불효자식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사는 와타나베(시무라 타카시)는 30년간을 서류더미 속에 파묻혀 산 공무원. 국화빵 찍어내듯이 서류에 도장을 찍으면서 퇴근시간 확인하느라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미라의 모습이나 진배없다.
이런 와타나베가 사망선고를 받으면서 비로소 자기가 지난 30년간을 헛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그 헛것과 함께 다가올 죽음에 대한 갚음으로 동네 아주머니들의 숙원인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건설에 집념하면서 행동의 인간이 되고 실존적 인물로 변용된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놀이터 건설에 앞서 생전 처음으로 우선 세상환락을 경험한다. 와타나베는 허름한 사케 집에서 만난 2류 작가(이토 유노스케)의 안내로 밤의 유흥가를 섭렵한다. 클럽과 바와 홍등가로 와타나베를 안내하는 작가가 마치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 같은데 와타나베가 들른 클럽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는 “인생은 짧은 것”을 듣노라면 가슴에 멍울이 생긴다. 이 와타나베의 환락가 구경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 기법으로 촬영한 눈부신 부분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던 와타나베는 자신의 젊은 부하 여직원 오다기리 토요(오다기리 미키)를 만나면서 비로소 생명력의 원천을 발견하게 된다. 와타나베는 오다기리에게 부탁해 둘이 함께 빠찡꼬장과 아이스스케이트장 그리고 요리 집과 극장엘 다니면서 여인의 젊음을 동경하고 또 희열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경직된 관료체제에 막혀 손도 채 대지 못했던 놀이터 건설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이렇게 삶의 목표를 찾은 와타나베는 그제야 평소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마저 깨닫는다. 와타나베는 어느 날 석양을 바라보면서 “아, 참 아름답구나. 난 30년간 황혼을 보지 못 했어”라고 찬탄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짧은 6개월의 삶을 충분하고 평화롭게 마감한다. 그가 죽기 얼마 전 눈 내리는 겨울밤 완공이 가까운 놀이터의 그네를 타면서(사진) “인생은 짧은 것”을 부르는 모습에서 후회 없이 만족하게 산 사람의 아름다움이 어둠 속의 촛불같이 빛난다.
‘이키루’는 2부작 형식으로 구성됐다. 전반부는 와타나베의 고리타분한 일상을 그렸고 후반부는 와타나베의 장례식. 장례식의 조문객들이 와타나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의 변신의 원인을 자기들 마음대로 추측한다. 그리고 술에 취한 구청직원들은 “앞으로 잘 해보자”고 다짐하나 이튿날 출근해서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영화는 일본의 고여 있는 관료체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기도 하다.
죽음에 맞선 삶의 긍정에 관한 이 영화는 동양철학이기도 한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이 사는 방법을 배우는 길이라는 것을 단순하고 조용하게 말하고 있다. 부정 속의 긍정이라고 하겠다.
이런 와타나베의 변신을 시무라는 감지하기 어렵도록 심오하게 표현한다. 그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야 말로 진짜 사람의 얼굴이다. 시무라는 ‘7인의 사무라이’를 비롯해 쿠로사와의 여러 편의 영화에 나온 쿠로사와의 단골배우다.
‘이키루’가 23일(하오 7시30분) 쿠로사와의 1950년도 베니스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라쇼몬’(Rashomon)과 함께 이집션극장(6712 할리웃)에서 상영된다. 한편 ‘이키루’의 블루-레이판이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출반됐다.
나는 얼마 전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나는 생의 마감 앞에서 와타나베가 될 수 있는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1952)에 대한 단상
1.
위암에 걸린 시민과장 와타나베의 x-ray 사진으로 시작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1952년작 <이키루>(生きる, 살다). 암세포가 퍼져 있는 ‘와타나베’의 위를 포착하는 시선은 분명 전쟁 기술의 산물이다. 전후 x-ray는 삶을 투시하는 광선으로 변모하게 된다. ‘적’을 찾아내서 ‘절멸’시키는 그 기술이 ‘병’을 찾아내어 ‘생(life)’을 연장하고 삶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전후 일본 영화의 대표작이자 구로사와 아키라의 명작 중 한편인 <이키루>의 표제가 가리키는 ‘산다는 것’의 의미 또한 x-ray의 변주와 겹친다. 총력전 체제 이후 전쟁이 일상 속에서 준비된다는 것(도미야마 이치로)은 상식이 되었다. 영화는 만년 시민과장 ‘와타나베’에 의해 전후, 산다는 것의 감각이 어떻게 다시 재발견되는지를 성실한 자세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재발견된 삶의 의미가 무엇을 삭제하고 은폐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냉전(cold war)과 동아시아(regional)라는 프레임을 도입할 때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가 다른 관점으로 독해된다.
2.
이 영화에는 ‘전전’이나 ‘전후’의 문맥이 삭제되어 있지만 전후, 삶의 감각이 무료함이나 제도에 내맡겨버리는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이 영화가 제작된 1952년이라는 시기를 ‘냉전의 시간표’에 대입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대일 강화조약)을 맺음으로써 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주요 안건이 표면적으로는 한반도 독립의 승인, 타이완과 펑후 제도(澎湖諸島), 지시마 열도(千島列島) 및 사할린에 대한 권리 포기, 남태평양 제도 및 오키나와와 오가사와라 제도를 미국에게 위임하는 평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마루카와 데쓰시의 지적처럼 이 조약의 중요한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 중국, 대만 측이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냉전문화론>과 <리저널리즘>을 참조). 이른바 열전의 시대를 종식하고 냉전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이 조약의 한켠에서는 한국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본이 비교적 빠른 시간에 전후 복구 체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가 열전에 휩싸여 있을 때 이를 관망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 동아시아의 열전을 관망하는 독특한 위치에 자리함으로써 전후 복구 체제를 구축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이키루>는 이러한 동아시아 냉전의 시간표를 통해 다시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다.
3.
아내의 이른 죽음(전전 혹은 전중)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시민과장’의 삶. 삶의 감각이 가족의 문제로 축소되어 있는 듯하지만 이는 전전과 전후의 삶의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전후, ‘위암’ 판정을 받은 후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설정 속에 당시의 일본이 ‘열전’ 상태에 돌입했던 남한과 북한, 중국과 대만과 거리를 두고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전후 복구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시기라는 것과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암’이라는 ‘위기’에 의해 ‘전전’의 ‘삶의 감각’을 다시 복귀 한다는 것,아니 보다 정확하게 ‘위기’(동아시아의 열전)를 통해 비로소 ‘삶의 감각’을 체득한다는 것은 ‘이키루’(살다)라는 것이 바로 동아시아의 열전을 관망하고 있는 ‘자리’를 통해 구축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30년간의 공무원생활동안 무엇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와타나베의 토로 속에서 우리는 ‘전전’의 기억을 ‘전후’에 삭제하는 한 방식과 대면하게 된다. 와타나베가 우연히 만난 소설가를 따라 나선 ‘삶의 현장’은 일본에 침투한 미국문화의 현장과 다르지 않다. 재즈와 스윙이 넘치는 거리, 빠칭고와 bar. 전후 미국문화가 깊숙히 들어온 밤문화의 거리가 바로 ‘삶의 현장’인 것이다. “이 순간부터 살아났어”라는 소설가의 말이 가리키는 지점은 삶에 대해 다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와타나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이 사람은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야”) 발디딜틈 없이 홀을 가득 매운 사람들의 물결에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와타나베의 헌신적인 노동에 의해 구성된 시민공원 또한 동아시아의 냉전 시간표를 보조선으로 도입할 때(‘보조선의 도입’은 마루카와 데쓰시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다른 의미를 내장한 공간이 된다. 죽기 전 살아 있음의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 열을 쏟았던 헌신적인 노동은 곧장 전후 재건의 논리과 겹친다. 영화는 부시장을 위시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작태를 비판함으로써 시민공원의 공적을 와타나베의 헌신적인 노동으로 돌려주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만 이때의 시민공원을 구축한 것은 와타나베가 아니라 열전(hot war) 상태에 놓여 있던 대만과 중국, 남한과 북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가 의미부여를 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와타나베의 헌신적인 노동이 은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냉전을 보는 것이며 냉전의 관점으로 동아시아를 보는 것이다.
4.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와타나베는 반복해서 ‘시간이 없어’를 되뇌며 한시도 쉬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고 시민 공원 조성을 위해 애쓴다.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은 흡사 자살특공대 카미카제(かみかぜ)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전전의 카미가제는 전후 소환되어서도 호명되어서도 안 되는 이름일 것이다. 이 영화의 그 어디에서도 카미카제와 같은 맹목적인 자살 특공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지만 쉼없는 노동을 수행하는 병든 육체를 남김없이 소진하여 시민공원을 조성하는 와타나베의 육신, 시간이 없어를 되뇌며 한시도 쉬지 않는, 착륙장치가 없는 그 육체가 전전의 카미카제가 전후에 소환되는 모습이 아닐까? 살신성인, 혹은 희생양은 전전과 전후에 형식을 달리하여 등장하는 셈이다.
와타나베의 영전 앞에서 그의 헌신에 대해 격렬하게 증언한 공무원들은 이후부턴 와타나베의 뒤를 이어 살 것을 맹세한다. 이때 이 영화의 제목인 <이키루>의 본래적 용법이 드러난다. 한 명의 헌신적인 노동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통해 애도를 완수하고 그의 뒤를 잇겠다는 논리 속에 일본의 전후 재건이 열전의 동아시아에 빚지고 있음에도 그 문제를 망각하고 개인의 헌신에 대한 애도로 완벽하게 대체되어버린 형국이 되는 것이다. 와타나베에 대한 애도가 동아시아의 열전을 삭제해버린다. 전후 일본 사회에서의 ‘산다는 것’의 감각은 바로 동아시아의 열전을 은폐하고 삭제함으로써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