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혼의 단꿈 시작되자마자 징용으로 끌려 간 용규!

16살 새색시와 22살 새신랑의 신혼은 달콤했다.그 당시의 22살 총각은 노총각이라 할 만한 시대였다.수줍음이 많고 맵씨도 말씨도 예쁘고 솜씨까지 좋은 새색시를 만난 기쁨이 매일 더해 갔다. 용규는 22살까지 장가 안 간 것은 참 잘했다 싶었다.한분을 만난 것이 인생의 큰 복이라는 감사가 생겼다.한분은 시부모와 함께 살아서 조심스러운 것이 많았지만 풋풋한 첫사랑을 결혼하고 함께 나눠가는 두 사람은  모두 참으로 행복했다.두  형도 누나도 다 살림을 나가서 막내인 용규는 부모와 함께 살다보니 한분은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부모와 함께 사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막내며느리를 끔직이도 아껴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다른 보통의 새댁들이 겪는 시집살이는 따로 없었다.용규는 한학을 공부해서 한문도 많이 알고 아는 것도 많았다.한분은 오빠같은 신랑한테 새로운 것들을 많이 들으며 배웠다.언니는 있었지만 오빠가 없었던 한분은 남편이 오빠처럼 다정하게 느껴져왔다.

 

생전 처음 본 사람들끼리 결혼을 했는데도 어찌 이리 좋고 좋은지 밖은 추운 겨울이지만 두 사람은 첫 겨울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녹이며 서로를 하나씩 알아갔다.알아 갈 수록 새롭고 알아 갈 수 록 더 좋아졌다.

농사를 짓는 농부 집안이라 남편을 도우며 첫 봄을 행복하게 맞았다.같은 면내에 있는 이웃 동네여서 시댁의 풍습이나 음식이나 모든 것이 친정의 것이나 별다른 것이 없어서 쉽게 잘 적응을 했다.단지 어린 새댁이 시어른들 봉양하는 것이 보통 마음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용규는 막내라서 물려 받은 전답도 없었다,가진 재산은 살고 있는 초가집 한 채 외엔 거의 없는 가난한 선비집이었다.한분은 친정에서 큰 호강은 아니어도 불편하지 않게 살았는데 시집와 보니 생활이 참 어려운 형편이었다.그래도 신랑이 성실해서 이 일 저 일 부지런히 찾아 잘 해서 밥을 굶는 어려움은 없었다.

한분은 신랑이 성실히 일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바느질거리들을 모아와서 집에서 또 즐거이 일을 했다.솜씨 좋은 것을 그냥 놀릴 수는 없었다.

가을을 맞아서 개간한 밭에서 얻는 소출도 넉넉해서 둘이 마음만 맞으면 뭐든 거칠 것이 없고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용규가 끔직이도 한분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니 생활이 어려운 것은 힘들지 않았다.배 굶지 않았고 점점 살림도 나아져감을 결혼 1년 사이에 벌써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으로 신뢰도 깊이 쌓이고 장래에 대한 계획과 소망도 많아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그런 행복한 시기에 두 사람에게 큰 위기가 닥쳤다.용규의 징용 통보 때문이었다.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전쟁 체제의 인력 확보를 위해 많은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전쟁 수행에 필요한 노동력의 부족을 보충하려고 강제 동원을 마을 단위까지 총동원연맹을 만들어 행했다.

일본놈들한테 안 잡혀 가려고 16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온 것인데 신랑이  잡혀 가게 된다니  정신이 나가 버렸다.결혼하고 행복하게 1년을 잘 살고 있는데 남편이 일본에 징용 간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안되었다.용납하고 안하고가 한분의 소관이 아님이 너무도 슬펐다.용규도 이 아픈 시대에 태어 난 것을 원망하면서 분명히 살아서 돌아 올 거니까 부모님 잘 모시고 건강히 잘 지내라면서 어린 아내를 다독였다.

용규는 나라 잃은 슬픔을 온 몸으로 아파하며 나라를 반드시 찾을거란는 각오를 하면서 일본으로 갔다.한분의 태중에는 생명이 자라나고 있었다.용규는 자기의 사랑의 씨앗이 싹터 자라고 있음도 전혀 모르고 눈물을 가득 안은 슬픈 아내의 얼굴을 뒤로 하고 아내의 따스한 사랑을 안고 일본으로  떠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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