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 16주년! 좋은 열매들 감사!

 

3월 1일은 우리 나라에도,우리 가정에도 참으로 특별한 날이다.

독립 만세 운동이 울려 퍼진 나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귓가에 전해온다.

온 몸 바쳐, 부르짖으며 ,온 맘과 몸으로 행했던 그 울림으로 우리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했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숭고한 삶을 사셨던 선조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우리나라서도 만족하며  행복하게 잘 살다가

2000년 3월 1일에 새론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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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후반전을 좀 더 의미있게 살고 싶고 그래서 토요일마다 1년간 받은 평신도 전문인 선교 훈련의 연장으로

많은 민족이 모여 사는 캐나다에 자비량 선교사의 마음으로 올 수 있었다.

남편이 삼성에서 한창 잘 나갈 때였기에 내려 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때인데

남편은 예수님 믿는 믿음이 돈독한 신실한 사람이었기에 아는 사람 전혀 없는 캐나다지만

오직 믿는 든든한 한 분이 계시기에,두려움 없이  개척자의 정신으로 올 수 있었고

한국에서의 편한 모든 것을  과감히 내려 놓았다.

“현재는 편하고 좋지만 ,10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 내려 놓음이 필요해”라던 남편의 말이 참 든든하고 좋았다.

나는 항상 남편의 말을 잘 듣는다.그이의 말을 들으면 항상 결과도 좋았기 때문이다.이민 이야기는 이웃집 엄마가 말해 준 덕분에 내가 호기심 있게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아이들 아빠의 신속한 결단 덕분에 이민 말 나오고 1년도 채 안되어서 캐나다 영주권을 받았다.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었다.해외 생활은  주재원 정도 생각은 해 보았지만 이민의  ‘이’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말이 나오자마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남편은 연구실에서 하는 일을 마무리할 책임이 있어서 입국 날짜를 미루고 또 미루었다.이제 들어 오지 않으면 영주권이 없어지는 날을 몇일 앞두고 우리 가족은 2000년 3월 1일에 드디어 캐나다 땅에 발을 내 딛었다.참으로 설레이고 기쁘고 감사했다.어떤 환경이 기다릴 줄도 모르고 마냥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우리를 두근거리게 했다.

엥커리지에 잠시 경유할 때 아이들은 아빠,엄마의 영어에 경이로와했다.그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빠,엄마 발음이 이상하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하게 한바탕 웃었다.아이들은 금방  잘 적응을 했다.6개월만에 정규 수업에 합류를 했다.학교에서 특별히 붙여 주시던 ESL선생님을 더 이상 필요로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영어 향상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아이들이 정규반에 들어가서부터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들보다 성적에 더 두각을 나타내었다.모든 과목을 골고루 좋아했고 특히 수학과 과학을 아주 좋아했다. 아빠,엄마의 영어 발음이 이상하다며 교정해 줄 때는 이젠 우리 부부가 아이들이 경이로와졌다.

남편은 우리를 데려다 두고 10일 정도 있으면서 필요한 일들을 준비해 주고 다시 회사 일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 갔다.아이들은 한국서 윤선생 영어 몇 개월 배운 것이 다여서 이민 올 때는 영어를 거의 잘 못했는데도 첫 날부터 학교를 너무도 신나하며 즐겁게 다녔다.그래서 크게 안심이 되었다.남편과는 매일 E-Mail과  전화로 만났다.어느정도 본인이 할 일을 잘 마무리하고 , 그해 8월에 여름 휴가를  받아 잠시 왔다,나랑 아이들 모두 너무도 신났다,미국과 일본으로 출장은 자주 갔지만 한달을 넘기지 않았기에 5개월을  처음으로 떨어져 있어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서로 더 잘 깨닫는 귀한 시절이었다.

3월에 왔을 때 남편이 차를 사 주려고 했는데 캐나다서 벌지도 않고 돈만 쓰기가 마음 쓰여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서 캐나다를 배우겠다고했다.감사하게도 부목사님도 집사님도 같은 아파트여서 교회 갈 때 도움을 받았다.미안해서 종종 교회까지 걸어 가기도 했다.차로는 5분 거리지만 아이들과  걸으면 30분은 족히 잡아야되었다.아이 셋 데리고 소풍 가는 마음으로 즐겁게 교회를 갈 때면 종종 4살된 딸은 힘들어했다.그러면 엄마랑 오빠들이 번갈아 업어도 주면서 예배드리러 가던 그 길이 참으로 즐거웠다.힘들만도 한데 아이들 모두 장로님의 커피숍인 팀호튼을 지나면서 걸어가는 것도 참 좋아했다.아이들과 함께 카트를 끌고 시장 갈 때의 추억도 정말 너무 아름답고 감사하다.차를 바로 샀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엄마와 3명의 자녀들과의 친밀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차를 살 때까지 이민 오고 첫 5개월에 가득 담겨 있음도 감사하다.

차를 태워주신 김집사님 가정이 항상 감사하다.우리 교회를 떠나서 지금 어디 계신지 알 수 없음이 안타깝다.그래도 그 때 그 고마웠던 기억을 가지고 늘 기도해 주고 또 수소문해서 연락을 알아 보려고 마음 쓸 수 있음도 감사하다.우리가 차를 살 수 있지만 잠시 미루어 두었고 남편이 완전히 들어오면 살 마음이었는데 교회 갈 때마다 김집사님 가정에 미안한 마음이 많아서 8월에 남편이 잠시와서 사주려고 할 때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그 때를 생각하면서 우리 부부도 새로 이민 오셨거나, 유학온 성도님들 중에 차가 없는 분들을 기쁘게 잘 모셔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남편은  사표 처리도 안된 상태인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성탄절 이브에 캐나다로 아주 들어 왔다.남아 있는 동료들이 사직 처리랑 서류들을 잘 챙겨 준 덕분에 다시 나가지 않아도 되었고,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감사하게도 사표처리도 잘 되었다.사람들이 아쉬워하고 붙잡는 시기에 떠나 올 수 있음도 참 아름다웠다.

남편은 한국서 가져온 돈 쓰지 않고 현지에서 벌어서 쓰겠다는 강한 각오가 있었기에 오자마자 서류  배달하는 일도 했다.다운타운은 일방통행 길이 많고 복잡아서 서류를 전하고 오는 잠시 주차한 것으로 딱지 받은 것이 많아 받는 돈보다 많다 싶을정도였지만 그 덕분에 토론토 지리를 미리 잘 익히고 이민자의 삶을 속히 또 잘 이해할 수가 있었기에 남편한테 늘 감사하다.그 일을 하면서도 도서관가서  2달정도 머리 싸매고 공부해서 이곳 회사에 취직을 바로했다.한국서도 영어는 잘 한 편이기에 직장은 수월하게 잘 구했다.그래도 한국 경력이 인정 안되기에 겨우 생활비 버는 정도였다.이민자로서 이민 땅에 살아 본 경험이 가게의 ㄱ자도 생각지 않았던 우리에게 ‘작아도 내 비지니스가 낫겠다’는 결론을 내게 했다.

그래서 정말 우리도 기도하면서 가게를 찾게되었고, 교회서 30분 이내 거리에 좋은 가게 찾길 기도했다.그 덕분에 정말  원하는 좋은 위치의 버라이어티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한국의 편의점 같은 것인데 별의별 것을 다 파는 가게라서 좋게 말하면 백화점 또 달리 말하면 잡화점같은 것이었다.맘에 드는 가게여서 우리가 관심 있어하니 주인 마음이 다시 바뀌어서 팔지 않으려고하고 값만 많이 올려버렸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여리고성 돌기를 했다.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그 가게 건물을 여리고 성이라고 생각하고 주인의 마음이 우리에게 파는 쪽으로 무너져 내리길  기도하기로 작정했다.간절한 마음으로 그 가게를 사서 할 수 있길 바라며 막내 산바라지 하러 오셨던 시부모님과 함께 갓 태어난 아가까지 8명 식구는 일 주일간 함께 작정 새벽 예배를 드리고 그 건물 주위를 기도하면서 차로 빙 돌았다.여호수아가 행했던 믿음의 행함을 기억하며 우리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우리 가게가 될거라는 믿음으로 주인이 우리에게 가게를 다시 팔겠다는 마음으로 움직이길 기도했다.

일주일 중 6일은 매일 한번씩 돌고 마지막 7일째는 일곱바퀴를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믿음으로 돌았다.꼭 그 가게를 하고 싶어한 남편의 간절함이 우리들도 가게 돌기를 해 보자는 마음으로 표현이 되었다.간절히 기도하면서 정말 이민 땅에서 우리가족이 안정적으로 잘 정착하고 부모님 용돈도 보내드리고 아이들 공부도 잘 시키고 , 선교사님들도 많이 후원하고 그 외 좋은 일에 사용할 수 있는 넉넉한 수입이 있는 일을 할 수 있길 기도했다.우리가 이민 온 목적을 잘 이뤄 갈 수 있게 비지니스를 시작할 수 있길 정말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다.그런 마음으로 일주일 가게 돌기를 하고 다시 찾아 갔더니 정말 우리가 기도한대로 그 주인의 마음이 우리에게 파는 쪽으로 정해져있었다.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했던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늘  그 날이 그대로 기억이 난다.

그 분이 시세보다 우리나라 돈으로 1억정도 더 달라고 했다.그래도 맘에 드는 가게여서 남편은 여기저기 다시 찾는 것보다 속히 가게 일을 시작하는 것이 버는 것이라면서 그렇게 하겠다고하고 가게를 샀다.2층에 방 3개가 딸린 예쁜 가게 건물인데  이민자들의 사정을 잘 알고 한국의 경력과 신용을 인정해 주고 우리가 하게될 가게의 평가까지 제대로 잘 해준  토론토지점 외환은행 융자 덕분에 우리가 가게 건물 주인이 될 수가 있었다.정말 생각만 해도 기적같은 일이었다.좋은 가게여서 팔 이유가 없다하시면서도 그 분들은  본인들이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있어서 가게를 팔 마음도 있었던터였고 가게는 봐도 건물채 살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마침 우리가 마음에 들어하니 망설이다가 팔게 된 것이었다.외환은행이 항상 감사하다.우리가 가게를 살 수 있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 것이 살아 갈 수록 참 감사하다.우리나라 이민자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알아주는 우리나라 은행이 토론토에 와 있었는 것이 그리 감사 할 수가 없었다.남편이 외환은행 대부를 받기 위해  정말 수고도 많이하고 노력을 한 덕분이기도하다.우리 가게의 평가와 주변 상황등을 일일이 조사해서 파워포인트로 준비를 해 가서 우리가 충분히 매 달 갚을 능력이 된다는 프리젠테이션을 담당자한테 했다.대부 담당자는 많은 분들을 대했지만 남편처럼 이렇게 준비를 해 와서 프리젠테이션을 해 주신 분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기꺼이 융자를 해 주겠다고 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가 있었고 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임을 마음 깊이에서 고백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도를 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여리고성 돌기에 응답해 주신 것으로 믿고 너무도 감사를 드렸다.2002년 5월 15일 ,우리가 이민 온 지 2년 2개월만에 태어난 지 6개월된 넷째인 막내를 등에 업고 가게를 시작했다.마치 한국에서 이용하던  슈퍼마켙같았다.그것보다 더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했다.여러종류의 신문은 매일 기본으로 회사마다 배달되어 왔기에 하루 일 시작은 신문을 종류별로 챙기는 것부터였다. 우유,빵,치즈,버터,햄,쵸코렛,칩스,껌종류는 물론이고 한국의 철물점에서나 파는 하드웨어제품,문방구에서 파는 문구류,악세사리 가게서 파는 목걸이,시계,반지,헤어핀,약국에서 파는 기본 상비약,그리고 티셔츠,모자,……정말 좋게 말하면 백화점 그 자체였다.만물상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항상 백화점을 경영하는 마음으로 정말 감사하게 작은 가게를 어루만지며 너무도 정성껏 돌보고 감사해했다.그런 중에도 담배를 파는 것이 마음 쓰였고 나중엔 복권도  팔게되어 마음 쓰였지만 가게 운영하는 이상 또 제대로 많이 잘 팔아야했기에 다른 업종으로 바꿀 수 있길 기도하면서 신나게 일을 했다.야한 잡지를 전의 주인이 팔고 있었기에  과감히 그런 것들은 팔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잡지회사에서 그런 것 안팔면 다른 잡지도 배달 못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안되겠던지 야한 성인 잡지만 빼고 나머지는 배달을 해 주었다.아이 넷 낳은 아줌마인 나도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도 못했던 희한한 그림들이 앞표지에 있는 성인 잡지들을 돈이 된다고 해도 우리는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길 참 잘했다 싶었다.

가게 카운터가 선교 센터라는 마음으로 오시는 손님 한 분 한 분을 정말 귀하게 여기고 우리 가게를 찾아 와 준 것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했다.그 분들도 우리 마음을 금방 잘 알아 주어서 단골 손님들이 되어 주었다.맞은편에 24시간 하는 우리보다 더 큰 가게가 있는데도 우리 손님들은 그 가게를 지나 길을 건너와서 우리 가게를 먼저 찾아 주곤했다.우리 가게 물건이 없을 때 다시 길을 건너가는 수고를 기꺼이 해 주시던 단골 고객들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그 덕분에 정말 우리 가족들은 너무도 즐겁고 신나게 가게 일을 해 나갔고 매일

믿음,소망,사랑으로 구별된 항아리에 저녁에 가게 마무리하고 오면 돈을 나눠 넣었다.믿음의 항아리엔 십일조를,소망의 항아리엔 선교헌금을,사랑의 항아리엔  양가 부모님 용돈과 우리가 따로 챙겨야될 사람들을 위해 매일 조금씩 구분해서 넣었다.이 역시도 아이들에게 말없이 보여준 좋은 본보기가 되었음을 나중에 아이들 통해 들으면서 참으로 감사했다.지금도 종종 아이들이 3개의 항아리에 대해서 말을 하곤한다.친정 어머니께서 내가 시집 올 때 이바지 음식을 담아 주셨던 산수화가 그려진 뚜껑이 있는 예쁘고 작은 항아리인데 그 항아리에 담았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 아이들 마음에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담겨 자라나게 된 것이 감사하다.

가게 운영하면서 정직하게 법에 맞게 경영하는 것을 늘 우선으로 마음을 썼다.작은 가게지만 우리 부부는 경영하는 마음으로 정말 즐겁게 감사하며 일했다.아이들을 키우는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정직하게 가게 운영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실천하였던 것이 아이들이 믿음 안에서 바르게 잘 자란 이유가 된 것 같아 이 또한 정말로 감사하다.법을 어기면서도 돈 벌 수 있는 일들이 있지만 당장 덜 버는 것 같아도 제대로 법에 따라 정직하게 운영한 것이 아이들이 잘 자라게된 밑걸음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남편한테 늘 고맙고 존경스럽고 감사하게된다.

가게 하면서 시간 내기 어렵고 바쁜 중에도 남편은 거의 매년 보름정도 우리 교회 단기 선교에 동참했다.아빠가 선교 가시면 위의 두 아들들이 아빠 몫을 거뜬히 또 잘도 해 내었다.육체적으론 분명 힘드는 일이지만 이 일들을 통해서 삶의 기쁨과 보람도 더 체험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돈 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또 어떻게 벌고 어떻게 써야되는지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삶의 현장이었기에 감사하다.

한국서 태어나서 11살,10살 4살에 온 위의  세 아이들은 정말 서로 도우며 챙겨주며 사랑하며,스스로들 잘 커 준 것이 너무 감사했다.아이들 모두 학교 생활을 성실히 즐겁게 잘 해서 공부도 잘 했다. 특히 위의 두 아들들은 틈틈이 가게 일도 잘 돌보았고 더구나 어린 동생들까지 챙겨가면서 잘도 적응을 해 주었다.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잘 못해줘서 미안한 것 투성이인데도 아이들은 아빠,엄마가 고생한다면서 자기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속히 아빠,엄마를 가게에서 해방시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니 가슴 뭉클 감동이 되어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정말 우리 부부는 ‘낯선 땅에서 경험없이 하는 일로 이만한게 없다 ‘ 며 늘 즐겁게 한 가게 일인데도 아이들 보기엔 한국과 너무도 다른 생활을 하는 부모가 많이도 고생하신다 싶어했던 것 같다.열심히 매일 성실하게 부지런히 살아 온 우리 부부의 모습이 아이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이 감사하고 그것을 또 자신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여기며 도전하며 자신들의 삶을 성실히  최선을 다하며 잘 살아 가는 아이들이 너무도 고맙고도 고맙다.’정말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라는 말 외엔 나는 달리 표현 할 말이 없다.

한국서도 캐나다서도 의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데 큰아들,둘째아들 모두 메디컬 분야에서 자신들이 하고픈 공부를 하고 있음도 감사하고 어려운 공부인데도 즐겁게 좋아하며 공부하는 아들들이 참으로 기특하고 고맙고 자랑스럽다. 선교사님들 후원하고 선교비 보낸다고 자기들한테 충분히 쓸 수 있는 돈이어도 옷도 잘 안사주고 교회 바자회에서나 중고품 파는 벨류 빌리지 같은데서 사 입혀서 참 미안했는데도 주님 주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안에서 잘 자라 준 것이 너무도 고맙다.없어서가 아니라 금방 크는 아이들이라서 헌 옷을 입혔지만 그것조차도 지나고 보니 아이들한테 많이많이 미안하다.이젠 장성해서 품이 더 작아지지 않기에 새 옷을 입을 수 있으니 감사하다.자기들 스스로 맘에 드는 옷을 골라 살 수 있음도 감사하다.

 

우리 식구만 생각했으면 항상 더 좋은 것 다 사 줄 수가 물론 있었다.하지만 항상 눈에 보이고 맘이 쓰이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에,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잘 챙겨 입히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는데 아이들이 밝게 건강하게 잘 커 준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풍요의 심리가 있는 엄마여서 ‘내가 명품이다!’ 싶은 자존감으로 명품에 관심없고 내가 사용하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만족감이 있는  엄마를 두어서 아이들이 자랄 때 또래 친구들이 폼내는 것들에 함께 폼을 내지 못했던 것이 많이 미안하다.정말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 아이들 마음도 풍성하게 넉넉하게 자라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내가 쓸 것 다 쓰고 내가 할 것 다 하고도 물론 남을 돕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쓸 것 줄이고 살 것 안사면서 남을 섬기는 경우도 많다.나도 이제 점점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해 나가면서 남을 돌아 볼 수 있어져 감이 감사하다.아이들이 많이 잘 자란 덕분에 그런 마음의 여유도 점점 더 커져 감이 감사하다.올 5월에 첫째가 졸업을 하면서 또 수입을 얻을 수 있어져 갈 것이 또 그런 감사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둘째가 자기들  어릴 때 교회 바자회나 이민와서는 중고품 가게인 벨류 빌리지 같은 곳에서 엄마가 옷사와서 정말 우리가 가난 한 줄 알았다고 해서 너무도 미안했다.엄마는 풍요의 심리로 내가 살 수 있지만 안사는 것이었는데 아이들 생각은 또 그렇지 못했음이 참 미안했다.아들도 엄마의 마음을 또 속히 잘 알고 이해했음이 감사했다.지금도 막내는 여전히 성장 중에 있기에 물려 입는 옷이 대부분이다.막내는 형들에게 그리고 교회 형들에게 물려 받아 입는 옷을 참 좋아한다.나는 이런 성품 좋은 아이들 주신 은혜가 감사하고 그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고 감사하고 참 좋다.

가게 운영하는 동안은 매일 16시간씩 부지런히 즐겁게 일을 했다.평일은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1시 30분,토요일은 8시부터 밤 11시 30분이다.그런데 문 앞에 시간은 8시에 연다고 해 두고도 토요일은 늘 9시가 다 되어서 문을 열었다.왜냐하면 이민와서 지금까지 항상 토요일은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우리 부부도 새벽 예배 드린 후 교회 청소를 하고 오기 때문이었다.그런데도 신기하게 1시간 늦게 열어도 매상은 항상 그 이상으로 채워 주셨고 손님들이 시간을 달리 변경해 붙여 두지 않아도 우리가 교회서 9시쯤 오는 줄 아는지 문 열자마자 몰려 오곤 했다.가게 운영하면서 늘 고백되어 진 일인데 하나님 일에 시간을 쓰면 하나님은 항상 다 알아서 챙겨 주셨다는 것이다.이 고백이 우리의 매일 삶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과 함께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 나옴이 감사하다.주일은 8시 30분부터 밤 11시였다.주일엔 과감히 우리의 믿음으로 문을 닫고 싶어도 늘 그 날 찾는 손님들이 있고 그동안 늘 열었던 가게여서 손님들을 위해선 열어야했고 헬퍼들이 봐 주는 덕분에 우리는 교회도 갈 수가 있었다.

우리 가게를 잘 챙기고 잘 관리해 오던 덕분에 캐나다의 전반에 대해 이해하고 잘 알게된 남편은 이 경험으로  2008년부터  한국의 부동산 중계사와 같은 부동산 리얼터  일을 3차에 걸친 자격증 시험을 치루고 시작했다.캐나다에선 우리나라보다 이미지도 좋고 더 전문직이어서 감사하다. 남편은 성실하고 또 이 일을 좋아하고 고객 분들 만나길 즐거워하기에 가게에 메여 있을 때보다 여러모로 잘되었다 싶어서 새론 일을 도전하고 시작한 남편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감사했다.새론 일도 하나님 도우심 아래  많이 익숙해진 덕분에 ,   2011년 6월에 가게를 잘 마무리 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비지니스만 팔았기에 여전히 가게는  우리와 끈이 연결되어 있음도 감사하다.낯선 땅에서도 여전히 늘 함께 하시며 도와 주시고 잘 이끌어 주신 하나님 은혜로 10년 수고하고 즐거이 일한 덕분에 우리가 지금 몸이 빠져 나와도 좋은 열매가 매 달 수확되어짐이 너무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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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우리 부부에게 있었기에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그 16년 동안 정말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로 우리 가족들이 든든히 서 왔음이 감사하다.

뿌리를 잘 내리게 하셨고 이젠 주렁주렁 좋은 열매도 달아 주시고 또 잘 영글어 가게 인도해 주심이 감사하다.

고생한다고 많이 걱정하시던 부모님께서도 우리들이 잘 정착한 것을 보시면서

‘너희들 이민 잘 갔다.’하셨던 것과 아이들이 “아빠,엄마! 캐나다 데려와 줘서 감사해요”라는  말을 할 때 더욱 감사하다.

오늘은 2016년 3월 1일,우리 가족 캐나다 이민 16주년 되는 날 !

참으로 더욱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가득 인다.

아침에 E-Mail을 여니 학교서 편지가 와 있었다.

All classes have been cancelled for Tuesday, March 1st due to the inclement weather.

눈폭풍이 온다는 일기 예보 때문에 학교의 모든 수업이 오늘 캔슬 되었다.

지금 밖에는 아침부터 소담스럽게 눈이 내린다.캐나다 겨울다운 3월 1일이다.

지난 주에도 스톰이 잘 지났듯이 오늘 예상된 눈폭풍도 사람들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잘 지나가게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서재에 조금전에  커튼을 새롭게 달았다.한결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이 서재에서  내가 기도하며 ,준비하고 읽고 쓰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주께 영광이 되는 일이 되며

주변 분들도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모두 세워 갈 수 있게 도와주며 함께 성장하고 아름답게 변화되어가는

일로 연결 되어지길 기도하며 행동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16년의 시간 속에 좋은 열매들을 맺혀 주시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드리며

매일 매일 즐거이 성실히 내딪어 온 그 날들이 모여 오늘이 되었기에

오늘!

지금!

여기서!

바로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

나의 모든 것을 여전히 예쁘게 봐 주고 위해 기도해 주고 항상 인정해주며 마음 써 주는  남편이 너무도 고맙다.

내년 봄 논문이 잘 통과되어 2017년 6월에 박사 학위를 받고 잘 졸업하고 행복한 가정을 위한 가정 사역 쪽으로 준비하는  일들을 위해  오늘 즐거이 하고 싶은 공부와 또 모을 자료와 연구할 부분들이 있음이 감사하다.

집 안 일 다해가면서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그런 중에도 즐거이 양로원 봉사가는 날도 상처 받은 자매를 위로하며 상담해 줄 수 있음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아이들이 많이 커서 아이들한테 가던 손이 줄어 들었고,

엄마를  오히려 도와 주는 아이들이 되었음도 진짜로 감사하다.

50대 중반이 되어서 뼈가 약해질 수 있을 엄마를 위해 비타민 D와 캴슘 잘 챙겨 드셔야한다는 아들이

“엄마 비타민 잘 챙겨 드셨어요?”라고 하고

작년에 어떤 아가씨가 뒤에서 박아서 여전히 목과 어깨가 아프다는 엄마를 챙기며

“엄마!,오늘 어깨는 좀 괜찮으셨나요?”라는 것과

아침에 싸준 도시락 부엌에 갖다 주면서

“엄마! 도시락 너무 맛있었어요,감사해요”라는 말과

시험 있다는 엄마 말을 아침에 듣고 학교 다녀 온 후

“엄마 시험 잘 보셨어요?”

“엄마 오늘 수업 어떠셨어요?”등등……

아이들이 엄마한테 건내는 한마디,한마디마다 정말 새 힘이 솟아나고 감사가 피어 오른다.

엄마가  가게한다고 바빠서 잘 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은데…

그런 것은 생각도 없고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잘 커서 이젠 오히려 엄마를 챙겨주고 엄마 공부도 마음써 주고 엄마가 했던 대로

자기들이 이젠 엄마한테 또 그대로 말을 해 줌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는 또 다시 말할 수 밖에 없다.

“정말,이 모든 것이 다~~~~하나님 은혜!”라는 것을.

8 Comments

  1. 조은희

    2016년 3월 2일 at 9:19 오전

    감동 감동이예요~. 너무 잘 읽었어요~^^*

    • 김 수남

      2016년 3월 3일 at 12:54 오전

      집사님! 감사해요.즐겁고 행복한 매일되세요.

    • 권나길

      2016년 3월 3일 at 1:18 오전

      언니 저 나길이예요
      기억나실런지?ㅡㅋ 언니글읽고 넘감동이라 ㅋ
      애들도 넘 잘 자란것같고 저 애기낳았을때도 관심가져주셨는데ㅡ따로 인사 한번 못하고 바쁘게지냈네요
      순두통해서도 언니 좋은모습 많이들었었는데ㅡ
      막상 언니 사는모습 글로 몇번읽고나니 생각나서 안부전해봅니당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좋은 글 또 기다릴께요

      • 김 수남

        2016년 3월 3일 at 10:45 오후

        응,나길아!,그래,너무 반갑고 고마워.더 자세한 이야기는 메일로 보낼게,예쁘게 가정을 잘 세워가며
        아이들 잘 키우는 모습 자랑스럽고 예쁘다.사랑해.

  2. 김정하

    2016년 3월 3일 at 12:59 오후

    서울사는 효림엄마입니다 늘 환희웃으시던 모습이 어제처럼 떠오릅니다 아이의 유학시절 권사님을 만나 저는 너무나 감사했고 지금도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 김 수남

      2016년 3월 3일 at 10:40 오후

      할렐루야! 집사님 너무 반갑고 감사합니다.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주님 은혜 안에 기도 안에서
      만날 수 있음이 감사해요.서울은 봄 향기가 곧 가까이 느껴지겠어요.매일 주님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범사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여호와 살롬!

  3. 이윤경

    2017년 5월 13일 at 9:32 오전

    안녕하세요.글을 읽는동안 믿음 안에서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심이 느껴지네요! 혹시 홈스테이도 하시나요? 딸 아이 어학연수땜에 믿음의 홈스테이 가정을 원한답니다! 지역은 벤쿠버어학원 추천 받았어요!

    • 김 수남

      2017년 5월 15일 at 12:04 오후

      네,감사합니다.그러시군요.반갑습니다.저는 홈스테이는 하지 않습니다.혹시 토론토에 오시게된다면 다른 분을 소개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언제쯤 오실지 오시게 되시면 연락 다시 주셔요.따님의 어학 연수 준비가 잘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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