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도 사랑한데이,사랑하고 말고!”여전히 들리는 그리운 음성!친정어머니의 1주기

7남매 카톡 방에서 지금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나누는 형제들의 대화가 한창이다.

음력 2월 12일 어머니께서 소천하신 날이다.내일 주일이 그 날인데  오늘  형제들이 다 모인다.

나도 어머니랑 함께 찍었던 사진을 올리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감사한 마음을 오빠들,언니들,막내동생한테 전했다.

정말 저절로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 오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다.

용인 큰오빠 댁으로 오늘 다 모이는 형제들인데 우리만 캐나다에 이민와서 살기에 참석을 못함도 아쉽고 미안하다.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시대가 좋아서 이렇게 형제들 조카들까지 한자리에 모인 7남매 가족 카톡방에서 실시간으로 함께 만날 수 있음도 감사하다.

큰언니는 부산에서 올라 오고 있고 작은 언니는 부천에서 가고 분당사는 둘째 오빠랑 서울 사는 셋째오빠랑 막내네도 곧 도착 할 예정이라고 한다.토요일이라서 모두 함께 다 모이기도 좋은 날 친정어머니 1주기 임도 감사하다.

어머니랑 함께 언니들이랑 시골집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과 2년 전 89세실 때 우리 막내랑 방문해서 함께 안동댐 앞에서 어머니 모시고 찍은 사진을 올렸더니 다들 어머니를 곁에 뵙는 듯 생생하다고 했다.

90세까지 노인성 병하나 없으셨고 시골 집 앞 텃밭까지 손수 다 챙기시며 건강히 계셨는데 병원 가시고 하루 사이 홀연히 떠나 버리신 친정어머니가 많이도 그립다.

겨우내 오빠네랑 언니네 올라 와 계시다가 봄을 맞아서 곧 시골 내려 오실 채비를 하셨는데 그렇게 떠나셔서 멀리사는 막내 딸인 나는 더욱 그리워진다.

지금 자정이 다 된 이 시간 무렵 나는 잠자리 들기 전에 늘 친정어머니랑 통화를 했다.

나는 가족들과의 통화 할 때면 수화기 내려 놓기 전에 항상 “사랑해요”라고 한다.

어머니께도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면 엄마는 항상

“오냐,난도 사랑한데이,우리 수남이 사랑하고 말고!”라고 하셨다.이제 자정이 정말 다 된 시간이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더욱 엄마의 그 음성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오냐,난도 사랑한데이,우리 수남이! 사랑하고 말고” 하시던 그 음성을 직접 못들은지가 벌써 1년이 되었다.

그래도 내 마음 속에서 늘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음이 감사하고 이 땅에서 못뵙는 아쉬움과 슬픔이 생겨도

저 천국에서 편안히 안식함을 알기에 언젠가 또 뵐 수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되고  감사할 수가 있다.

막내가 어머니를 그리며 한마디 올렸다.

“눈물이 넘쳐 나는 것을 주체 할 수 없네요~

마음 속 깊이 어머님께 대한 감사가 올라 옵니다.아버님 어머님의 막내로 살아감에 감사드립니다~~”

막내가 올린 글을 보면서 형들과 누나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막내를 만난다.3살 어린  남동생인데 항상 오빠처럼 든든한 동생이었다.막내여도 막내같지 않고 늘 듬직하고 스스로 모든 일을 잘 해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터 고교 3학년까지 한해도 안거르고 매년 반장을 했다.대학가서도 역시 정도를  걸으며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왔는데 지금 그 수고의 열매들을 거두며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리더로 영향력있는 삶을 살아감이 자랑스럽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자랑스런 동생이다.동생은 아버지 46세 어머니 40세 때, 어머니께서 고된 농사 일로 힘드신 중이셔서 그랬던지 달이 덜 차고 태어났기에 더욱 애틋한 사랑을 가지고 키우셨다.달이 덜 차서 태어나선 금방 울지도 못해서 사람 구실 못하겠다싶어 태도 못자르고 마음 아파하는 중에 힘차게도 못울고 울음을 드디어 터트렸기에 기뻐하며 태를 잘랐다고 하신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막내에 대한 우리 형제들의 사랑도 남다르다.그 막내가 고뿔하나 없이 튼튼하게 건강하게 잘 자라서 부모님이 늘 기뻐하셨는데 막내 역시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우리 7남매 중에서도 특별하기에 막내의 말 속에 너무도 공감이 되어 나도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어머니의 삶이 아름다우셨기에 우리 7남매 모두 아름다운 가정을 잘 세우고 이 땅 가운데서 또 있는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세워가고 있음이 감사하다.

형제들이 우애있게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다 부모님의 사랑 안에 함께 어려운 시절 서로 도우며 잘 지내올 수 있게 잘 키워주신 어머니 덕분임을 감사드린다.

어머니가 오늘은 특히나 더욱 그리워진다.

“어머니! 사랑합니다,그리고 언제나 늘 감사드립니다….”

2016,3,19일,토요일이 된 이른 새 날에,친정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감사하며 사랑하며 형제들 모이는 자리에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

 

작년 이 맘때 블로그에 올렸던  어머니에 관한 글을 이곳에 옮겨 놓아봅니다.

2015,3,31,’어머니의 천국 여행 시작;

어머니께서 한국 시간 31일 화요일, 16시 36분에 천국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저가 도착할 때까지 살아 계시길 많이 고대했는데 너무도 아쉽고 마음이 아픕니다.
어제 오후 3시 30분 무렵,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국 시간 화요일 새벽 4시 30분 경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한국 갈 채비를 했는데 비행편을 가장 빠른 것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저가 가는 동안은 살아 계시길 간절히 기도하면서요.
그런데 저가 도착하기 전에 떠나셔서 너무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지난 여름 방학에 가서 함께 지내다 왔고
거의 매일 통화를 했고
엊저녁에 자기 전에도 엄마 음성을 들을 수 있었기에
슬픔 중에도 큰 위로가 됩니다.
어머니랑 늘 대화가 되었는데
엊저녁은 저의 소리에 “응”이라고 대답만 하심이 마음 아팠습니다.
90세이신데 건강게 계시다가 천국 가신 어머니시니 감사합니다.
9988234라는 말이 있는데
99세까지 팔팔하게 사시다가 2-3일정도 앓으시다가 돌아가시는 뜻이라고합니다.
90세셨지만 정말 어머니께선 9988234의 복을 누리셨으니 감사합니다.
2-3일이 아닌 하루 만이라 너무도 마음이 아쉽고 더욱 그립습니다.
저가 갈 동안 기다려 주실 줄 알았는데요
엊저녁 그 목소리가 어머니 음성을 듣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라 너무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저께 주일은 즉 이틀 전에는
안동 시골 집이 궁금하다셔서 언니가 모시고 다녀오셨다고합니다.
마당에 심어 둔 마늘도 궁금하시고
겨우내 비워둔 시골 집이 궁금해 하셨다고합니다.
다녀 오시는 길에 박달재 구경도 언니랑 잘 하시고
월요일 저녁 진지도 굴비랑해서 맛있게 잘 드셨다고합니다.
그런데 월요일 한 밤 중에 배가 아프셔서 병원 가셨다가
이렇게 너무도 갑자기 천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신 기쁨과 감사가 너무도 큽니다.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셔서 함께 또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실 어머니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의 수고를 다 내려 놓으시고
더욱 좋은
편안한 천국에 거하실거니 감사합니다.
저도 곧 가서 뵐텐데 천국에 가셨다는 감사가 저를 또 이렇게 평안하게 하니
예수님 믿는 복이 너무도 크고 감사합니다.
저희 7남매 모두 이렇게 잘 키워 놓으시고
아름다운 가정 이루신 것 보시고
손자 18명에
증손자들까지 벌써  12명을 두시고 건강하게
우리 모든 자손들에게 늘 기쁨을 안겨 주시고
복되게 떠나신 어머니를 그리면서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고난 주간에 저가 맞는 정말 큰 고난일 수 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부활의 소망으로
저 천국에 가신 부활 영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감사가 더욱 생깁니다.
오늘도 살아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살아 있는동안 더욱
주님 사랑과 은혜를 더욱 잘 전하고 나누며
우리 모두 또 살아 있는 자다운 사명감으로
오늘을 아름답게 살아가게 되길 기도합니다.
함께 해 주시는 블로그 가족 분들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큰 복임을 또 아시며
더 자주자주 연락하고 뵙게 되시길 권해드리며
떠나가신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도 클 것 같습니다.
그런 중에도 위로를 얻을 수 있음은
어머니 가신 곳이 너무도 좋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3,31,화요일 아침에,천국 떠나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감사하며 저 천국의 소망을 갖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음을 감사합니다.할렐루야!

2015,4,3,’어머니의 천국 환송,여호와 이레’

 

어머니께서 평안히 천국으로 잘 떠나셨습니다.

환송 해 드리는 모든 절차 가운데 여호와 이레의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렸습니다.

 

날씨까지 어찌나 합당하게 아름답게 전개되었던지요.

일을 다 마치고 서울에 다 도착할 무렵에 비가 내렸습니다.

큰 일을 치루고 비가 오면 큰 부자가 된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는데

어머니 자손들이 다 여러부문에 부자가 되겠다면서 저희끼리 어머니 이야기 나누며

즐겁게 올라 왔습니다.

물질부자,건강부자,자손부자,지혜부자……

저희가 부자될 부분들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정말 너무도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이 여호와 이레의 주님의 돌보심임을 고백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드렸습니다.

 

7남매 중 오빠 3명과 큰 언니는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고

둘째 언니와 저와 막내 남동생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장례식도 형제들이 절충해서 함께 조화롭게 잘 할 수 있었기에 감사합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또 배려하고 받아 주면서요.

 

어머니께서 90세가 되실 동안 노인성 병하나 없었던 것도 너무도 감사합니다.

단 하루도 채 되시기 전에 응급실 가신 후 천국으로 가신 것도 시간과 날짜까지 정말 은혜로왔습니다.

슬픔과 아쉬움이 큰 가운데서도 저희 7남매는

저희들을 위해 그렇게 정말 너무도 아름답게 시간까지 맞춰 주셨다는 감사를 나누었습니다.

 

막내아들네 둘째손자가 4월 6일 군입대를 앞두었기에 군대가기 전에 ,

둘째아들네 셋째가 군에서 휴가를 나와 있는 시간에

그리고 장례식을 다 마치고 주말을 맞으면서 자녀들이 편히 쉴 수 있게 정말 모든 것에

골고루 저희들을 생각하셔서 떠나신 것이라며 형제들과 어머니를 그리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모든 것이 정말 감사제목이었습니다.

 

3일장으로 하다보니 저가 제일 빠른 비행편을 탔는데도

한국시간 수요일 오후 4시 30분이 되어서야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언니댁에 와서 겨우내 머무셨기에 언니네 집 가까운 병원에서 편히 가신 것도 감사했습니다.

2달여전에 장이 약간 꼬인 증상으로 입원을 한달여 하시면서

멀리 사는 저는 못와 뵈었지만 나머지 아들들 딸들의 관심과 사랑을 마음껏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퇴원하셔서 언니네 잘 계시다가 이제 봄이 되면 시골에 다시 내려가실 시간을 고대하셨습니다.

 

연세가 드시면 떠나실 시간을 아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3월 29일 주일에 형부랑 언니와 함께 안동 시골 집에 다녀 오셨습니다.

겨우내 비워둔 시골 집을 궁금해해서 형부랑 언니가 모시고 내려갔다고합니다.

마당에 심어두신 마늘도 궁금해 하셨고요.

그래서 시골 가서 두루 돌아보시고 올라 오시는 길에 박달재에 들러 구경도 잘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월요일 저녁은 좋아하시는 굴비랑  저녁 진지도 맛있게 잘 드셨다고합니다.

그런데 그 밤에 11시가 좀 넘어서 배가 아프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응급실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응급실 가신 후 하루도 지나지 않으셔서 천국 여행을 시작하셨습니다.

 

장에 천공이 생겨서 3일 밖에 여유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바로 제일 빠른 비행편을 예약했습니다.

그래도 저가 도착하실 때까지는 살아 계실 줄 알았는데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천국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월요일 밤에 저가 밤들기 전에 어머니랑 통화를 했습니다.

평소처럼 어머니가 따로 말씀을 해 주시진 못하셨지만

저가 하는 말에

“으응,으응”이라며 대답은 잘 하셨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계셨고 기운이 달리셨는지 평소처럼 힘찬 음성은 아니었지만 또렷이

엄마 음성을 들었는데 그 목소리가 저에겐 마지막 들은 어머니 음성이었습니다.

막내도 할머니 바꾸어서 통화를 했는데…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 후 3시간 40여 분 뒤에 어머니께서 천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저가 아침에 일어나니 카톡 메세지에 어머니께서 천국 가셨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시고 천국 가셨기에 저는 슬픔 중에도 마음의 평화를 속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 와서 어머니를 뵈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하루도 채 안되기 전에 통화를 했던 어머니께서 말없이 누워 계신 모습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우리 인생이 이렇게 떠나게 되는 것임을 새삼 인식하며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복이 얼마나 큰지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이 땅에서 다시 못 뵙는 그 슬픔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애써 참으려해도 나오는 울음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7남매가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고 어머니를 아름답게 환송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7남매가 보니 와 주신 조문객 분들 수도 1,026분이셨습니다.

화환도 38개,조기도 8개,다 갚아야 되는 것이긴 하지만 조의금도 많이 들어 와서 감사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해 주신 사랑과 관심과 은혜들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시골에 가보니 마당에 마늘이 가득 예쁘게 싹이 올라 와 있었습니다.

서울 오시기 전에 심어 두신 그 마늘이 봄을 맞아서 이렇게 어머니가 안계신 동안에도

시골 집을 지키며 무럭무럭 잘 자라며 예쁘게 마당 가득 올라 온 것을 보면서

어머니의 사랑과 어머니의 숨결을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조문 객 중에 저의 시댁 식구들은 물론이고 ,

친구들,선생님들,한국서 섬기던 교회 성도님들이 와 주신 것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정말 일일이 다 말씀 드리지 못하고 일일이 찾아가서 인사드리지는 못하지만

어머니 천국 환송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큰 감사를 드립니다.

 

아부지,어머니 두 분 아래에

저의 7남매를 비롯해서 손자들,증손자들까지 다 해서 헤어려보니

50명이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무엇보다 저희 7남매 가족 모두가 슬픔 중에도

서로 사랑하며 우애있게 어머니의 장례 절차를 아름답게 잘 마무리 하며

슬픔이 큰 장례식이었지만

즐거운 잔치처럼 함께 행복할 수 있었기에 감사합니다.

 

어머니께서 평소에 아름답게 살아 오신 그 증거가

저의 7남매의 각 가정의 삶 속에서와

찾아 와 주신 많은 조문객 분들 속에서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기에 감사합니다.

 

7남매 모두 서로들을 격려하며 칭찬하며

함께 서로 자랑스러워 할 수 있었기에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아래 열매 맺혀진 50명 중

너무 갑자기 당한 일로 저 혼자 바삐 오느라 함께 못 온

저의 남편과 아이들,그리고 아가를 낳아 3칠밖에 안되어 못 온 질녀와

막 첫 아가를 갖어서 입덧이 심해 못 온 질녀가 있어 아쉬웠지만

그 외 모두가 함께 한 어머니의 천국 환송식은 정말 잔치와 같은 날이었음이 감사합니다.

 

저의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시고

또 위해 기도해 주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는

모든 블로그 가족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내일 어머니 뵈러 모든 형제들이 함께 안동 선산에 다시 내려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 점심 대접도 해 드리고 올 예정입니다.

아버지 곁에 나란히 함께 누우신 어머니의 모습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시골 동네에서도 10년만에 처음으로 꽃상여를 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화장을 많이 하시는 분위기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언제든 뵙고 싶을 때 들릴 수 있는 고향 선산과 또 아버지 어머니 산소가 있음도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으로 인해

저희 7남매가 모두 아름답게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고 더 발전해가고 있음이 너무도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드립니다.

  • 2015,4,3일(한국시간),오후 1시 42분에,어머니의 천국 환송식을 7남매가 우애있게 잘 마무리하게 됨을 감사하며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버지곁에서 함께 나란히 편히 쉬시며 주님 품에 안기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2015,4,9’그리운 음성,”난도 사랑한데이!”

어제 토론토 집에 안전하게 잘 도착해서 감사합니다.

어머니께서 편안하게 천국으로 가셨고 저희 7남매들도 사랑으로 아름답게 어머니 장례의 모든 일정을
잘 마쳐서 감사합니다.
너무 갑자기 급히 가느라 또 속히 돌아 왔습니다.
다음 주면 이번 학기를 마치는데 오늘 또 강의가 있기에 놓치지 않으려고 서둘렀습니다.
모처럼 간 길에 더 있다가 오라고 가족들이 말해도 속히 올 이유들이 있었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올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12시간 12분 직항노선으로 오는 동안 기류 이상인지 몇차례 흔들렸습니다.

기내 방송은 스튜어디스들도 제자리에 앉아 안전 벨트를 메라고 했습니다.
한 서너차례 그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런 중에도 저는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이 평안했으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별 이상이 없을 줄 알아서 이기도했고
또 혹시라도 어떤 이상이 있으면 또 어머니가 가 계신 천국에 간다는 평안함이 있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해소되었기 때문입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안전하게 도착한 후에 곁에 앉아 오신 분과 서로 안전하게 토론토 다시 온 것을 축하하며 감사했습니다.
어머니랑 매일 통화하던 그 날들이 감사합니다.
이제 저의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곳에 가 계신 것이 많이 아쉽고 슬픕니다.
그래도 마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저의 감정을 그대로 다 아시고 받아 주시는 저의 상담자 되시는 하나님께 아뢰면서
엄마가 그리울 때면 더욱 저의 마음을 털어 놓으려고합니다.
저는 어머니랑 통화하고 마지막엔 꼭 “엄마!,사랑해요”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면 저희 어머니께선
“오냐,난도 사랑한데이”라고 안동 말로 말씀 하셨습니다.
때로는 어머니께서 먼저
“수남아! 사랑한데이”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다정한 그  음성을 들으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요.
처음엔 “엄마! 이만 전화 끊어요”라든지 “엄마! 이제 들어 가세요”같은 인사 말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턴 늘 저가 “엄마! 사랑해요”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매일 통화 할 때 그 말을 꼬옥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말씀이 저와 어머니의 통화를 마치는 인사처럼 늘 나누었습니다.
저희 막내가 곁에서 외할머니의 대답을 늘 흉내내곤 했습니다.
“난도 사랑한데이!”라면서요.
다들 어머니께서 복이 많으신 복노인이라셨습니다.
시골 동네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이 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시골 갈 때마다 감사해서 조금 대접해 드리는 것도 그냥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며 고마워하시고
이번에 어머니 천국 가신 후 2차례 시골 갈 때마다 어르신들 뵙고 조금 대접해 드린 것으로 또 고마워하십니다.
친구 어머니는 서울사는 딸한테 저희 형제들 이야기를 많이 하시며 칭찬하셨다고 친구가 카톡 메세지로 보내 주었습니다.어머니 산소를 한 번 더 둘러 보려고 3일만에 시골 가서는 점심 대접을 해 드렸는데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분도 계시고 또 한참 모습을 뵌 후에야 알아 본 어르신들도 계셨습니다.
지금도 건강하게 계셔서 시골 마을회관에 함께 모이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선 떠나셨지만 남아 계신 분들이 저희 어머니 몫까지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도했습니다.
저가 잠들기 전에 항상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도 전화 드리기 좋은 시간이고 어머니도 받기 좋은 낮시간이셨습니다.
지금 저도 모르게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011-82-10-2054-****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 주십시오”라는 메세지가 나왔습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떠나신 것이 실감이 잘 나지 않는데 이 전화 메세지를 들으면서
이 땅에 어머니께서 안계신 것을  새삼 실감을 합니다.
이번 월요일에 언니가 어머니 전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어머니 80회 생신 때 둘째 언니가 선물로 해 드렸고 지금까지 10년동안 매 달 어머니 전화비용을
언니가 다 내어 드렸습니다.
언니는 엄마가 천국에서 보내는 그런 마음으로 어머니의 심정을 담아서
저를 제외한 3명의 오빠와 큰 언니와 막내동생과 그리고 언니 자신에게도 메세지를 띄웠습니다.
저는 어머니 핸드폰으로 메세지 보낼 수가 없기에 언니가 보내는 것을 곁에서 직접 보면서
어머니의 메세지를 직접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언니가 보낸 것을 알지만 어머니 전화기로 받는 마지막 메세지를 받으며
어머니를 더 많이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큰 아들 우진아! 너희 내외의 효도로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참으로 행복했다……..”로 시작한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몇 줄의 메세지를 언니가 일일이 형제 모두에게 이름만 바꾸어서 같은 내용으로 보냈습니다.
물론 언니 자신의 전화기에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핸드폰을 캔슬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이 핸드폰으로 거의 매일 저와 통화를 하셨기에 엄마의 유품으로 저가 가져오고 싶었는데
어머니께 또 특별한 사랑이 있는  둘째 오빠가  가지고 싶어해서 오빠를 드리고 왔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끼시던 반지를 하나 언니가 챙겨 줘서 오른손에 끼고 왔습니다.
막내가 대학 졸업할 때 어머니께 선물로 해 드린 반지인데
특별한 기념이 있는 반지라서 저가 가지고 오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잠자리 들기 전 이 시간이면 늘 듣던 어머니의 목소리
“오냐,난도 사랑한데이,우리 수남이 사랑하고 말고”라시며 늘 따뜻하게 사랑담아 말씀해 주시던 어머니가
많이도 그립습니다.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그 말씀을 저도 저희 아이들에게 더 많이 더 따뜻하게 들려 주려고합니다.
어머니께서 90세 되실 때까지 건강하셔서 노인성 병 하나 없이 힘차게 사시다가
자녀들에게 어려움 주시지 않으시고 아쉽게도 너무도 갑자기 홀연히 떠나버리신 것이 슬프고 가슴 아프지만
저 역시도 그렇게 어머니처럼 건강한 중에 한 이틀 병원에 있다가 천국가는 모습까지 닮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하루도 채 안되어 가셔서 너무 아쉬웠는데
저는 최소 한 이틀은 그래도 병원에 있다가 가고 싶습니다.
혹 멀리 떨어 져 지내는  자녀들이 있다면  그래도 천국 떠나기 전에 살아 생전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게요.
어머니께선 저가 도착하기 전에 소천하셨지만 천국 가시기 한 3시간 30분 전쯤에 저랑 통화를 하시고
음성을 들려 주셨기에 감사합니다.
달리 말씀은 못하셨지만 저의 말에 “으응,으응”이라고 대답을 해 주셨기에요.
저가 잠들기 전에 통화하면서 들은 그 음성을 아침에 깨어서는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기에요.
어머니의 음성이 여전히 들려 오는 듯 합니다.
“난도 ,사랑한데이…!”
이 땅에서 더 이상 듣지 못하는 어머니의 음성을 마음 속 깊이 고이 간직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주님 품에서 20년 만에 만나신 아버지와 편안히 쉬시며, 늘 저희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또한 감사합니다.
엄마! 사랑해요”
2015,4,8,잠자리 들기 전 늘 듣던 어머니의 음성이 귓전에 들리는 듯 해서 어머니를 그려보며,
천국에서 평안히 계시는 어머니를 그려보며  감사드립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