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우리 고양이 리나가 집에 오자마자 며칠 뒤 큰 상을 내렸다.리나의 공로를 높이 치하하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했기 때문이다.그래서 표창을 한다며 둘이서 들어 올려야되는 4층짜리 아름다운 놀이터를 사 주었다.
리나는 자기 사명을 너무도 잘 감당했기 때문이다.오래된 집이어서 쥐가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부엌 수리를 하려고 보니 쥐똥이 보였다.너무도 깜짝 놀란 우리 부부는 평소에 싫어했던 고양이지만 필요를 알게 되었다.
이웃들이 다 고양이를 키우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았으니 고양이들이 우리 집을 놀이터 삼아 놀다 가곤 했던 것 같다.감사하게도 친구네가 미국으로 이사를 가면서 갓 태어난 어린 고양이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 키울 사람을 마침 찾는 중이었다.전에 같았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을 나는 선뜩 우리가 키우겠다며 받아 왔다.2달 된 어린 고양이 리나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예뻤다.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기에 고양이까지 키울 마음까진 없었는데 고양이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게되고 보니 고양이가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리나가 오자마자 연거푸 쥐를 3마리를 잡았다.우리나라서 보던 아주 어린 새앙쥐같은 쥐였다.쥐는 너무도 징그럽지만 리나가 그것을 잡아서 우리 앞에 자랑삼아 가져오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캐나다에서는 우리나라서 보던 커다란 검은 쥐는 본 적이 없다,항상 어린 새앙쥐 같은 쥐였다.캐나다는 나라는 커도 쥐는 이렇게 작은 종류가 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남편은 너무도 기뻐했다.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던 남편이 너무도 예뻐하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큰 상까지 사서 차에 넣어 왔다.내릴 땐 우리 둘이서도 낑낑거릴 정도의 4층짜리 놀이터였다.고양이들은 계단처럼 생긴 높은 곳 오르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렇게 고안된 놀이터인데 층마다 편하게 누워 잘 수도 있게 널직한 자리가 고안된 푹신한 카펫같은 천으로 된 디자인이었다.발톱이 잘 자라기에 기둥에 발톱을 맘껏 긁을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거실 한 곳을 차지하지만 마치 장식물처럼 사랑스런 리나의 놀이터가 되었다.
리나에게 표창을 내린다며 고마워하고 선물까지 사 온 남편을 보면서 목화 벌레에게도 감사했던 미국 알라바마주의 엔터프라이즈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이 났었다.위기가 기회가 된 이야기를 우리는 종종 가까이서 듣게 되고 또 그런 것을 직접 경험하기도한다.그 좋은 예가 바로 이 사람들이다.미국 알라바마주의 소도시 엔터프라이즈 마을 앞에는 목화 벌레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는 기념비가 있다.이 기념비에 “우리는 목화를 갉아 먹은 벌레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 벌레가 우리에게 번영의 계기를 주었으며 ‘하면 된다’는 신념을 주었다.”라고 적혀있다고한다.
목화 벌레들이 야속하고 미웠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 벌레 덕분에 다른 품종을 연구하고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어야했고 변화를 가져 오게 했기에 그들의 삶의 방식이 크게 바뀌게 된 것이다. 1895년에 목화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그곳에 목화 벌레들이 나타나서 신나게 목화를 먹이삼아 밭을 초토화시켜 버렸다.그 벌레들이 얼마나 많이 먹어 치웠던지 그 피해는 평년작의 3분의 1도 채 되지 못했다.그래서 실직자들이 생겼고, 불경기까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일을 찾아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되었다.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하는 어려움도 있었고 병이 있어도 병원도 못가는 일자리를 잃어 삶이 어려운 실직자들도 가득했다.
이 때가 마침 화학제품의 옷감 산업이 활성화 될 때라서 목화 산업은 사양산업일 때였기에 오히려 절호의 좋은 기회를 그 벌레들이 선물한 것임은 나중에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이다.주정부와 농민들의 끈기와 포기하지 않는 노력으로 목화 대신 새 종목인 땅콩을 심게 되었기 때문이다.감사하게도 알라바마주는 목화 벌레 덕분에 미리 대체 농작물을 땅콩으로 바꾸어 농사 짓기 시작했기에 그 이후의 불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세계적인 땅콩 산지로 바뀌었고 큰 성과를 얻게 되었다.목화 벌레의 똥이 땅콩 생산을 더 잘 되게한 거름이 되었다는 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알라바마주의 사람들에게 그 목화 벌레의 기승은 오히려 감사해 할 수 있는 새 역사 창조가 된 것을 보면서 우리도 종종 뜻하지 않게 당하는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해결점을 찾아 내야되는가?의 중요성을 배울 수가 있다.
고난 주간이다.성금요일 새벽 예배 드리면서 이미 나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목화 벌레에게 감사한 알라바마 사람들의 예화를 목사님께서 오늘 새벽에 말씀 가운데 전해 주시니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목사님의 말씀의 요지는 목화 산업은 끝났지만 또 다른 성공을 이룬 감사를 말씀한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 뒤의 영화를 말씀해 주시려고 들려 주신 것 같다
골고다 언덕 길을 십자가를 지시고 올라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내 삶에 알게 모르게 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십자가들이 참으로 가볍게 느껴져왔다.예수님의 지셨던 그 무게에 비할 것이 못된다 싶었다. 내 삶을 더욱 감사하며 사랑해야될 이유를 발견해서 감사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을 생각해 본다.그는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사람이었다.예수님을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믿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십자가를 대신 질 계획이 되어 있던 사람도 아니었다.그런데 그가 예수님이 지고 가시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으로 인해 성경 말씀이 있는 곳 어디서나 그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게 한다.’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져 준 사람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억지로 지게 된 십자가이고 그에겐 황당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지만 이 일이 그와 그의 가족을 구원으로 이끌었고 축복의 통로가 되게 했다.
요셉이나 욥처럼 최선의 삶을 살았지만 억울함을 당할 수 있고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우리 역시도 이 땅을 살아 가면서 이런 경우의 일을 경험하기도한다. 그러나 묵묵히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시고 사명을 감당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을 기억해야겠다.능력의 십자가! 그 능력으로 그 십자가를 내려 올 수도 있었지만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기억한다.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어 주시고 다시 부활하신 그 능력의 주님을 기억하며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을 감사한다.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리도 억지로 할 수 없이 져야되는 십자가들이 있다.그러나 묵묵히 끝까지 내게 맡겨진 것이라면 기쁘게 지고 가겠다는 각오가 된다면 분명 그 뒤에 오는 영광을 맛보게 될 것이다.성경 말씀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져 준 사람’으로 기억되는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홀로 되신 시아버님을 5년이나 함께 모시고 살면서 사랑으로 잘 섬겼던 사랑하는 동서에게도 ,치매걸린 시어머님과 연로하신 시아버님을 섬기며 주님을 기억하며 그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가는 사랑하는 친구에게도,그 외 남모르는 여러가지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억지로라도 져야되는 그 십자가 넘어 준비된 분명한 밝은 빛의 선물이 있음을 말하고 싶다.
골고다 언덕 길을 십자가 지고 올라가신 예수님!
마태복음 27장 32절에서 34절 말씀으로 새벽 예배 중에 은혜를 받으면서 내게도 억지로라도 져야될 십자가는 무엇이고 또 그것을 지금 내가 어떻게 지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보았다.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해 보니 내가 진 십자가는 정말 업고 날아 갈 수도 있는 가볍고 작은 것임을 재확인해 보게 되어 감사하다.구레네 사람 시몬을 기억해 보면서 주님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상해 보는 시간됨이 감사하다.오늘도 생명이 연장되어 있음이 기적임을 고백한다.살아 있는 동안 정말 내 영이 주를 찬양하는 고백을 늘 할 수 있길 기도하며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힘이고 능력이고 보배로운 것인지를 매일 고백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우리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다.그 마음을 잘 꺼내 쓰는 사람도 있고 묻어 두고 잘 사용 못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그러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감사한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작은 미물이나 말 못하는 동물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웠던 것들을 표현하는 사람들이기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대신 그 죄 값을 치뤄주신 구주 되시는 주님의 일을 정말 잘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각자 방법은 다르지만 정말 그 마음의 감사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 해 나갈 수 있길 원한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리고 자랑하고 싶고 또 전하고 싶어한다.그것이 바로 진심으로 좋아하는 표현인 것이다.좋은 책을 읽었을 때 권해 주거나 좋은 영화를 보았을 때 좋은 곳을 여행하고 왔을 때 등등….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권해 주고 싶어한다.그래서 나는 내가 만난 참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를 만나도 하고 싶어하게 된다.말하고 싶어진다.전하고 싶어진다.나는 알기 때문이다.
핍박 받으면서도 신앙을 지켰고 믿음을 지켰던 선조들을 기억한다.이렇게 좋은 시대에 자유롭게 믿음 생활 할 수 있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또한 감사드린다.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생각하며 나도 예수님의 사역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지길 감사함으로 기도한다.
길을 알았다.그 길을 정말 알게 된 것이 감사하다.천국에도 가는 길이 있다.이 땅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분명 영생이 있음을 믿기에 나는 예수님만이 그 구원의 길을 가게 하는 분임을 확실히 믿는다.그래서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아이들에게도 말할 수 있었다.어떤 일이 갑자기 생기더라도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그 믿음이 더욱더 내게 감사하게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쥐가 있으면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맞는 것이다.고양이가 싫어 못키우면 그냥 쥐랑 살아야된다.쥐를 없앨 방법이 분명 있는데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믿겨지지 않아 키울 수 없다는 사람이 정말 있을 수도 있다.키워보면 아는데 그 행동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도 고양이를 키우면 쥐가 없다는 것을 안다.그래서 정말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고 그래서 쥐가 얼씬도 못하는 평안함을 누린다.
천국 역시도 그렇다.분명히 성경에 그렇게 쓰여져 있다.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이 간단한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정말 믿으면 좋겠다.믿겨지지 않더라도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따라 믿어도 좋겠다 싶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구레네 사람 시몬!
그를 생각해 보니 더욱 성금요일의 하루가 내게 감사하게 전해져온다.
2016,3,25,성금요일, 말씀 가운데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주님의 사역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성도되길 소망하며 고난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나의 구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주신 것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