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의 일입니다.2005년 1월 15일에 쓴 이민 일기를 다시 보니 웃음이 납니다.그 때 만 3살이던 막내가 벌써
10학년의 고등학생이 9월이면 됩니다.네명의 자녀를 키우다보니 육신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었음이 다시금 감사합니다.이젠 막내까지 많이 자라서 아빠,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오히려 해 나가니 너무도 감사합니다.
2005년 1월 초에 큰 쓰나미가 와서 세상이 함께 아파했던 날이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모습이 담겨 있기에 옮겨 봅니다.쓰나미의 아픔을 잘 이겨내신 분들이 이젠
더욱 힘차게 또 잘 살아 가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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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쮸쮸,마이 쮸쮸!’
남편과 만 3살 된 넷째가 사랑스럽게 다툰다.
두 부자의 대화가 너무도 재미 있다.
나는 가만히 두 사람의 모습을 미소 띤 얼굴로 쳐다 보았다.
이번 주일에 교회서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보낼 헌금과 함께
의류도 모으기에 나줘 줄 옷들을 챙겼더니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났다.
막내도 같이 우리 셋은 맛있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경이는 우동이 매운지 우유를 연신 마셨다.
목덜미 쪽으로해서 오른 손을 가슴에 쑥 집어 넣었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엄마 젖을 찾는다.
늘 쮸쮸를 만지고 싶을때 하는 소리인
” 쮸쮸 손~”
이라고 하면서 늘 그러했듯이 자연스럽게 손을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경아!,아빠 쮸쮸야!”라며 재미 있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의 그 소리에 막내는
“아니에요,마이 쮸쮸에요”라며 맞받아쳤다.
-아빠:” 아니야,아빠 쮸쮸야!”
-경:” 노오우, 마이 쮸쮸”
-아빠:”마이 쮸쮸”
-경:”마이 쮸쮸”
라면서 몇차례나 똑 같은 말로 부자가 싸움(?)을 했다.
나는 모른척 하면서
긴 우동 가락을 순식간에 쏙 입으로 집어 넣었다.
속으로 들으면서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한참 그러던 남편이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아빠:”그래 맞다. 우리 경이 쮸쮸 맞다.그럼 낮에는 경이 쮸쮸,밤에는 아빠 쮸쮸한다.”라는 말에
어린 아들은 공평하다고 생각이 들었던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무슨 그리 재미 있는 이야기가 많은지……
‘슈렉’이랑 ‘인어 공주’ 이야기를 어린 아들이 아빠에게 들려 주고 있었다.
아빠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 솜씨가 3살 아이로 보기에는 나도 놀라웠다.
이젠 정말 저렇게 자기 생각 주머니에 있는 것들을 조리있게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정도로 컸구나!싶은 감사가 컸다.
두 돌이 될때까지 엄마 젖을 먹은 막내여서 그런지
지금 세 돌이 한 달 전에 지났는데도
엄마 가슴팍이 그리도 좋은가보다.
엄마 곁에 오면 자연스레
“쮸쮸 손~”하면서 귀엽고 자그마한 손을 쑥 집어 넣는
어린 막내가 있어서 참 좋다.
이제 조금 더 자라면 자기 생각 주머니에 있는
지식과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지혜들로 인해
엄마 가슴에 손을 넣고 싶은 마음도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어지고
더 관심을 쏟을 좋은 것들이 많아져서
엄마 가슴에 손을 넣고 싶은 마음도 해결될 것을 알기에
막내의 지금 행동과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마음을 지켜 줄 수가 있다.
아빠랑 막내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잠시 컴퓨터에 들어 왔더니
어느사이 막내가 엄마 손을 잡아 당긴다.
캐나다 적십자사에서 만든 스티커와 포스터를 보내와서모금함에 붙였다.
온 세계가 한 마음이 되어 이 일에 동참함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진다.
딸도 학교에서 있는 모금운동에
책을 사려고 모아 두었던 저금통을 다 털어서 가지고 갔다.
사랑은 나눌 수록 커진다는 것을
요즘 온 세계 사람들을 통해서 느낄수가 있다.
‘마이 쮸쮸,마이 쮸쮸’라면서
오가는 어린 아들과의 대화 속에서
이른 아침부터 가게에서 쌓인 피로를 쏵 푸는 남편을 보면서도
따뜻한 사랑과 행복을 찾을 수가 있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