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팥죽을 끓였다. 사용하다 조금 남은 팥이 있었다.친정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팥 죽을 끓이고 싶어졌다.
어릴적엔 12월 22일 동짓날을 연중 행사처럼 기다리며 맞았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서 새알을 빚던 날이 떠오른다.
안방과 부엌사이 난 문으로 나와 동생은 팥 죽 쑤는 어머니를 내다 보았다. 입 맛을 다셨다.아궁이에 불을 지피시면서 커다란 무쇠 솥에 긴 나무 주걱으로
엄마는 팥죽을 힘차게 져으셨다.
입맛 다시는 우리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라셨다.새 알이 가득 든 무쇠 솥의 온도가 높아져서 폭폭 끓는 소리가 들린다.
소근소근 팥죽들이 옴싹달싹하며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 살 씩 나이를 더 먹는다는 즐거움이 피어났다.
나이드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팥 죽 세알을 나이 수만큼 먹는다고했다.그리고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나이를 더 먹게 된다고 했다.
나는 팥으로 만든 것은 뭐든 다 좋아한다.그래서 팥죽도 좋아하고 잘 먹는다.
어제 저녁에 씻어 담궈둔 팥을 막내가 등교한 뒤 푹 삶았다.그리고 찹쌀 가루를 익반죽해서 새알도 만들었다.
어머니께서 팥죽을 쑤실 때는 잘 채에 걸려서 껍질은 따로 빼 내셨다.
나는 간편하게 통 팥 그래도 잘 삶은 곳에 새알을 넣었다.껍질이 영양분도 많고 씹히는 맛도 있기에
그대로 했다.간편하게 해서 먹으려니 채에 걸르고 하는 절차를 줄였다.
팥죽을 쑤면 큰집,작은집,아지메네랑 이웃 몇 집에 꼭 돌리셨다.그 집들도 다 팥죽을 쑤시는데 엄마는 꼭 전해 드렸다.
그러면 큰집에서도 작은집에서도 또 본인들이 만든 팥죽을 가지고 오셨다.
서로 오가는 정이 피어나는 시골 어릴적 추억이 있어서 나도 음식을 하면 여전히 잘 나눠 먹길 좋아한다.
영통에 살 때 이웃집 집사님이 자기는 내게 처음으로 음식 나눠 먹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 전에는 옆 집이랑 말도 안하고 살았다고 했다.
정다운 이웃이 되는데는 팥 죽 한 그릇처럼 간단하지만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 한접시도 정말 큰 몫을 한다.
동짓날 만든 팥죽은 양이 많아서 며칠 더 먹을 수 있게 항아리에 담아 두셨다. 다시 데워주시면 그 맛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이 금방 따뜻해져 왔다.
둘째가 점심 때 집에 잠시 들리겠다고 해서 아들 오는 시간에 잘 맞춰서 만들었다.
아쉽게도 아들은 불고기 조금이랑 된장찌개로 간단히 먹고 팥죽은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바로 한 따뜻한 팥죽을 먹이고 싶었는데 식사 하자마자 다시 나가야 될 스케줄이었다.
그래도 집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기에 엄마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친정 어머니가 많이 그리워진다.요즘 나는 바쁜 중에도 엄마가 해 주시던 메뉴들을 하나씩 해 보는 즐거움도 크다.
12월 22일 동지에만 먹던 팥죽이었는데 아무 때나 간편하게 늘 만들 수가 있다.
팥죽을 만들면서 나는 고향집 부엌에서 팥죽을 쑤시던 어머니를 어린 딸이되어 만난다.
엄마는 옛날 이야기도 참으로 많이 들려 주셨다.
그중에 ‘팥죽 할마이 ‘이야기도 있다.
팥죽을 팔러 갔다 오는 할마이가 고갯 길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팥 죽 한 그릇 주면 안잡아 먹~~지”라면서 시작되는 옛날 이야기였다.
팥죽 끓이던 숯을 꺼내서 화로에 담아서 그 밤에 방 윗목에 놓았다.
어머니 무릎에 누우면,우리들 양말 뒷꿈치 기우시면서 화롯가에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오늘은 문득문득 옛날의 기억들이 많이많이 피어 올랐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다.
추석이 가까와오니 나도 정말 고향이 많이 그리운가보다.
나는 고아다.
나이가 50이 넘었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니 나도 고아가 맞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고아이지만
아이들이 넷이나 있는 어머니이어도 나는 여전히 아버지 어머니가 몹시 그리운 날이 있다.
오늘처럼 어릴 때 먹던 음식을 내가 직접 만들어 볼 때면
더욱 어머니 생각이 가슴 가득 전해와서 눈물이 난다.
오늘의 내가 있기 위해
사랑으로 키워 주시고 농사지으시면서 그 많은 고생을 하시고 희생하셨던 아버지 어머니를 기억하니 그렇다.
참으로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사무친다.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다.
16살처녀와 22살 총각이 결혼 하는 날 생전 처음 만나서 오래도록 회로하신
아름다운 행복한 부부 아래서 7남매의 6째로 사랑받으면서 자라 왔기 때문이다.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더욱 피어난 날이었다.
내가 끓인 팥죽인데 이리 맛있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 맛은 아니어도 그 맛을 음미하면서 먹으니 너무 좋다.
남편 고교 동문회 골프 대회가 있는 날이어서 저녁은 밖에서 먹었다.
우리 부부는 골프 치는 낮시간엔 참여하지 않고 저녁 식사 시간만 참여했다.노스욕에서도 1시간 더 올라간 칼레돈이란 곳이었다.
남편의 휘문고교 71회 동창이 하는 아담한 일식집이 있었다.그곳에서 동문들이 모여서 식사를 했다.
참 정다운 분들이시다.
이민와서는 학교 선후배님들이 가족같다.
나도 막내가 커서 이제 저녁 시간에 남편과 함께 나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우리 부부가 어린 막둥이를 두었다 싶었는데 남편 동기네는 더 어린 막둥이가 있었다.
이제 6살 막내가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1학년이라한다.정말 그 이야기가 새롭고 너무 반가웠다.
휘문고교 60회 선배님부터 97회 후배까지 모인 자리에서 마침 오늘이 생신인 선배님이 계셔서 함께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센스있게 일식집 사장님이신 남편 동기동창 부부가 신속하게 아름다운 생일 케잌을 준비해서 나와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번 주 월요일 노동절 공휴일에 오렌지 빌에 하이킹을 왔는데 그 근처라고 한다.그 땐 409를 탔는데 410번 도로를 다음엔 탈 생각이다.
그러면 이 식당을 오기가 쉽다. 오렌지빌에 하이킹을 다시 가게 되면 꼭 이 식당에 들려 볼 생각을 갖었다.아담하고 참 좋은 일식당이었다.
남편 동기가 운영하는 곳이기에 지인들께 안내도 잘 해 드릴 생각이다.무엇보다 믿음 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이어서 참 반가웠다.
남편도 같은 고교 동기동창이어도 이민 땅에서는 오늘 처음 만난 것이어서 너무 반가워했다.3학년 때 몇 반이었던 것과 담임 선생님이 누구셨던 것을
나누는 대화를 곁에서 들으니 반가워하는 그 모습 속에서 정말 고교생들이 다시 된 듯했다.
집에 오니 팥죽이 그대로 있다.팥죽은 차게 해서도 먹기 좋기에 떠 두고 갔는데 막내가 조금만 먹었다.팥빙수는 좋아해도 팥죽은 엄마만큼 즐기지를 않는다.
친정어머니께서 전에 하시던 양에 비하면 한끼 우리 식구 먹을 양 정도로 조금이다.
팥죽이 그냥 팥죽이 아니다.나는 어머니를 만나며 고향을 가득 안는 것 같아서 그 속에 담긴 새알을 씹어 먹으며 부모님과 형제들의 사랑을 느낀다.
동짓날이 아니어도 아무 때나 조금씩 편리하게 요리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것이 감사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면서 팥죽을 져어가시면서 또 우리와 이야기도 해 가시면서 행복하게 일하시던 어머니를 그려본다.
지금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골 부엌이었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그런 곳에서 우리 7남매를 잘도 잘 키워내셨나? 싶어서 감동과 감격이된다.
나는 정말 감사할 것밖에 없다.당연히 그러해야된다.어머니가 살아 오셨던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정말 모든 것 다 그저 감사할 것 뿐이다.
그 불편했던 일상 속에서도 엄마는 행복해하셨다.지금 이렇게 편안한 삶을 좋은 시대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사는 나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가야될지?
어머니는 말없이 행동으로 내게 다 가르쳐 주시고 계신다.비록 천국에 가 계셔 가까이 곁에 안계셔도 나는 그 음성을 다 들을 수가 있다.
어머니의 그 모습을 기억하며 나도 내 삶 속에서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다음엔 팥죽 끓일 목적으로 팥을 많이 사와서 우리 어머니처럼 이웃들에게도 퍼 나눠 줄 정도의 넉넉한 양을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
올해 동지에는 나도 어머니처럼 정말 동지 팥죽다운 팥죽을 꼭 쒀보아야겠다.
오늘 맛배기로 시도해 본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부엌에서 일하는 시간이 더 감사해진다.
2016,9,9 금요일 ,팥죽을 쓰면서 친정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또 감사를 드리며 어머니처럼 삶을 더욱 사랑하며 자녀들에게도 본이 되는 어머니 닮은 내 아이들의 어머니가 될 것을 다짐해보며 감사드린다.
데레사
2016년 9월 10일 at 4:20 오후
저도 팥죽은 자주 끓이는 편입니다.
조금 쑬때는 그냥 쇠소쿠리에다 껍질을 걸러내지요.
아직 껍질채는 한번도 안 해봤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냥
믹서에다 껍질채 드르륵 갈아서 끓이더라구요.
그래도 맛있던데요.
팥죽, 겨울에 장독에다 큰 항아리에 담아서 내다두면 살얼음이
끼었지요. 그럼 그걸 떠다가 뜨뜻한 방에서 먹던 생각도 나고
크리스마스 때 새벽송 오면 대접하던 생각도 납니다.
고향생각, 부모님 생각, 추석이 되니 한결 더 하실거에요.
김 수남
2016년 9월 11일 at 1:36 오전
네.맞아요.추석이 다가오니 더욱 고향생각,부모님 생각,형제들 친구들 많이 그립습니다.
팥죽에 대한 추억이 비슷하네요.저희도 동짓날 한 팥죽을 며칠간 맛있게 떠다 먹었습니다.
언니도 건강하게 행복한 추석 잘 맞으시길 기도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