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은 견해 차이(thoughtful disagreement)’

같은 사물과 상황을 보더라도 사람들의 생각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자신의 경험과 살아 온 환경에 따라 그리고 현재 처한 본인 심리적 상태에 따라서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인 분모가 있고 공통적인 공감대는 갖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공통적인 공감대도 전혀 다른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드셨고  또 합당한 목적이 있음을 믿기에

견해가 다른 분들도 틀린 것이 아니고  다름을 이해할 수 있으니 감사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 안에 있는 속마음을 그리고 또 보이는 것 외의 내면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어야된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라서 겉에 보이는대로 눈에 비춰지는 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그 안에 무엇을 내포하고 있고 어떤 이유로 지금의 일을 진행하는지도 좀 더 깊이 볼 수 있는 시야도 필요하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길 원하며

내 삶의 방식 또한 그리고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소소한 일상과 또 우리 주변의 이웃들과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일들을 통해서

역시 하나님의 영광이 되길 소망하며 말하고 행동한다.

견해 차이도 분명  있을 수 있음을 또한 인정한다.

같은 시각으로 은혜를 나누시는 분들도

또 다른 시각으로 비판을 하시는 분들도 다 진심으로 감사한 분들이다.

 

나는 모든 성경 말씀을 믿는다.

성경은 구약 39권,신약 27권으로 총 66권이다.

총장수는 구약 929장,신약 260장으로 총장수는 1,189장이다.

그리고

구약 절수는 23,214절,신약 절수는 7,959절로 성경의 총 절수는 31,173절이다.

이 중에서 특별히 내 마음에 더 깊은 감동과 은혜가 되는 구절들도 많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창세기 1장 1절 말씀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아멘!

이 말씀이 믿어지니 다른 모든 말씀도 그대로 믿어진다.

그래서 나는 정말 놀라운 복을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임을 고백할 수 있고

그래서 내 삶 속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고

범사 감사! 할 수가 있다.

아무나 믿겨 지는 것이 아닐진대 나는 이 모든 말씀이 믿어지니 놀랍고도 놀랍고 감사하다.

이 감사를 다 표현할 수 없어서 나는 소소한 내 일상 속에서라도 조금씩 나타냄을 감사드린다.

 

이 생활이 매일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임을 또한 고백한다.

그래서 내 안에서 평안이 있고 감사가 있고 그래서 행복할 수가 있다.

내 행복 자랑이 아닌

내 가족 자랑이 아닌

정말

내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 은혜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다.

 

 

범사 감사하는 은혜를 나눌 수 있음은 정말 내게 주신 특별한 기회이고 그래서 위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음도 감사하다.

작년 12월에 개인 블로그가 조선일보 사정으로 문을 닫게되어  아쉬움이 컸는데  그 중 일부지만

기자 블로그에 초대 받아 다시 블로깅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전에처럼 내 소견을 마음대로 표현 못하는 제한이 있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예수님 믿는 내가 예수님 이야기를 전에만큼 마음대로 못하는 점과 같은)

내 블로그 이름이’아이 넷인 엄마의 캐나다 일기’이기에 나누는 이야기가 또한 나와 내 주변과 이웃들의 이야기가 된다.

캐나다 이민자로서 새론 땅에서의 삶을

나누며 그 안에 함께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은혜를 나눌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또 다양한 시각이 있음도 배우며 경험한다.

사려 깊은 견해 차이(thoughtful disagreement)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날이었다.

생각의 차이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 또한 깊이 새겨 보았다.

 

내가 블로깅을 하면서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들어나길 기도한다.

우리 가운데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게 되고

그 은혜를 고백하고 감사하게 되니  가족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같은 글이어도 어떤 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공감하며 기뻐하며 축하하며 주님을 함께 찬양하게 되기도하고

또 어떤 분은 자랑질이라고 비판하면서 기분 나빠하며 볼 수도 있는 견해임을 또한 배우며 깨달으며 깊이 인식하며 명심한다.

 

 

내 삶의 인도자가 되시고 내게 삶의 기쁨을 더해 주시며

구원의 확신을 안겨 주시는 구원의 주님을 만난 사람으로서의

기쁨과 감사가 내겐 크게 있다.

이 구원의 기쁨과 감사를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이 내가 만난 사랑의 주님을

진심으로 만나시면 좋겠다는 소망과

주님을 만나시고 믿는 분들 중에도  더 깊이 더 진하게

주님의 은혜를 함께 체험해 나기길 소원하는 것이

이곳 공개된 공간에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고 이유이다.

 

이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견해로 다가 오는 독자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내 글을 읽었다는 것이고 그 글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What Would Jesus Do?)”라고 생각해 보면

정말 모든 문제의 답이 쉽다.

예수님도 비판을 받으셨고,비난을 받으시고 모욕을 당하셨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항상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전혀 견해가 다른 사람이 있음을 인정해야된다.

이런 분들이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자신의 성장과 다양한 시각을 갖는 훈련을 하게 되기에

하나님이 보내 주신 감사한 분들이라는 고백이 나온다.

 

나도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 더욱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늘 염두에 두면서 해야 될 것을 배운다.

갈라디아서 2장20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블로깅을 하는 이유가 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쓰는 글 속에 예수님은 진정 발견하지 못하고 나의 자랑으로 보는 분들이 있음이 미안하고 또 안타깝다.

그 분들을 위해서 더 간절히 기도하게된다.

 

나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한다.

예수님이 들어 나지 않고 내가 들어 나게 본 사람들이 있다면 순전히 나의 잘못이다.

내 글 솜씨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글을 다 읽지 않고 충분히 내포된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 독자일 수도 있다.

나도 예수님을 더 깊이 생각하며 나아가야겠다.그래야 내가 자랑하고 싶은 예수님이 두드러지게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생각도 하고 육적인 생각도 사람들은 할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은 다투는 것이고 스스로 높이는 것이다.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것이다.

참된 영광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도 분명

하나님을 높이는 것에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부분을 도구로 삼아 주신 것임을 감사드린다.

 

나는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청지기와 같은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성실히 해 나가고 싶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시간에 나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며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 설 것을 다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훈련을 더 잘 해야됨도 배운다.

 

나도 이제 더 깊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풀어 갔을까?를 매 순간마다 잘  의식해야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답게 능동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임할 수 있길 기도한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늘 명심한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심도 또한 감사드린다.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많은 사람들이 두 얼굴, 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익명으로는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하다.

자신의 이름을 또한 떳떳히 나타내고 말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분들이 필요한 시대이다.

 

비방하는 사람에게까지 한결같은 모습을 보인 사도 바울의 한결같은 모습을 생각한다.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도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의 언어는 표시가 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언어 사용을 하는 모습 속에서 그 안에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하는지 아닌지도 우리는 쉽게 알 수가 있다.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은 아무 말이나 함부로 쏟아 낼 수가 없다.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은 바울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상대를 비판이 아닌 기도로 마음을 담게 된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본다.

참 모순이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더욱 깨어서 더 많이 기도해 줘야될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는 성령님이 내제하는 사람들이기에 샘물과 같은 단물과 같은 긍정의 언어를 잘 사용해야된다.

예수님과 같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분명 닮아 갈 수는 있다.

우리 부부는 욕을 거의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우리 아이들 입에서 욕을 하는 것을 또한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은 자신의 영적인 부분과 자녀들과 이웃들의 생활에까지 큰 영향을 끼침을 알아야된다.

 

나는 자랑하는 것이 맞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한다.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한다.

내가 누리는 삶의 만족함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자랑한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이 평화와 행복과 감사는

모두 다  하나님 덕분임을 자랑한다.

 

바울은 헤아릴 수 없는 원망과 불평의 조건이 있었다.

바울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도 결백을 위해 항변하지 않았다.

결백과 진실은 항상 들어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겸손과 낮아짐,자기를 비우시고 늘 섬기며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신

목자이셨던 주님을 깊이 묵상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이 땅에 만들어 놓으신 주님의 뜻을 깊이 헤아려본다

 

매일매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늘 의식하며 깊이 생각해야겠다.

사려 깊은 견해 차이(thoughtful disagreement)들을 감사하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What Would Jesus Do?)”라는 것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God is love)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 주시는 사랑으로 넉넉히 이기길 소원한다.

하나님 주시는 이 사랑으로 우리 모두 함께 또한

넉넉히 세상을 이겨 가길 기도한다.

나도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이웃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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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금요일,다양한 사람들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새기며 견해 차이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더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은혜 주심을 감사드린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12월 3일 at 9:56 오전

    서로의 견해가 달라서 입니다.
    조블 때는 내게도 안티성 댓글이 수도없이
    달렸지요.
    그럴 때 마다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감사해 했습니다.

    어느새 주말이네요.
    잘 보내세요.

    • 김 수남

      2016년 12월 9일 at 1:52 오전

      네,언니! 다양한 사람이니 다양한 견해도 당연합니다.그 분들의 의견 역시 참 감사합니다.저가 미처 배려하지 못했던
      분들을 더 깊이 생각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요.어떤 분은 이래서 감사하고 또 어떤 분은 저래서 감사하고요.
      모든 분들이 저의 성장과 성숙에 도움을 주시니 감사드릴 뿐입니다.언니도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해 하셨으니 또 이렇게 성장하시는 것이고요.
      눈이 조금씩 내립니다.기온차가 많이 나는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겨울로 잘 지내시길 기도합니다.언니가 계셔서 더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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