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선 ‘진봉이!’란 이름을 잘 사용한다.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친정 아버지께서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 주실 때 고르라는 이름 중에
‘ 진봉’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한자를 잘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획순과 의미를 따지시는 분이셨다.
진봉이라는 이름도 참 좋다고 하셨다.
이제 5째를 낳으면 이름을 진봉이라고 지을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었다.50이 훌쩍 넘어 버렸다.
흔히 우리들 표현으로 정말 공장 문이 닫혀졌다.
생리가 끊기기 전까진 출산에 대한 기대를 항상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51살까지였다.
진봉이를 맞이할 기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생산의 문을 닫아 주셨으니 이 또한 감사드린다.
우리 가정에 4명의 자녀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또 감사하며 만족하게 하셨다.
내가 예수님 믿고 늘 감사하는 중에 진실로 고백하고 간증할 거리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녀를 낳을 때마다 , 자녀들을 키울 수 있는 능력도 더해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 계산법은 사람의 계산법과 다름을 나는 체험했다.
순수했던 것이기도하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이기도 했는지
나는 결혼하면서 신혼 때부터 자녀를 5명은 낳겠다고 했다.
하나님 주시면 5명까지는 언제든 기쁘게 받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순수했던 나의 믿음이었던 것같다.
태의 문은 분명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자녀를 갖고 싶다고 해서 갖는 것도 아니고 ,
안갖겠다고해서 안갖어 지는 것도 아닌
정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믿었다.
그렇기에 자녀를 주시면 그 때가 가장 좋은 때이고
우리 가정에 꼭 필요한 자녀이고 ,꼭 필요한 때라는 것을 순수하게 믿었다.
그리고 또 낳으면 하나님께서 키우게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실거라고 믿었다.
그러했기에 주실 때마다 더 성실하게 감사하며 삶을 살 수 있었고
그 안에서 하나님은 또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선하게 잘 인도해 주셨기에
정말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임을 나는 매일 고백하며 감사드린다.
양가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시작한 신혼이었다.
남편 회사에서 받은 전세금 대출을 갚아 나가면서 시작한 알뜰 살림이었다.
인간적인 계산으론 아가 갖을 형편이 사실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하나님 주실 때가 가장 알맞은 때라는 마음이 같았다.
허니문 베이비로 첫째를 낳았고
연년생으로 둘째를 낳았다.
쌍둥이처럼 서로 사랑스럽게 잘 자라는 아들 둘을 보면서
힘이 늘 넘쳐 났다.
사람들은 아들 둘 키우느라 얼마나 힘드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들 둘 키우니 힘이 넘친다고했다.
솔직한 고백이었다.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하다.
하나님 주시는 힘이 분명 있었고 넘쳤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었기에 피곤하지 않았고
마음의 기쁨이 있었기에 정말 몸도 고단한 줄 몰랐다.
아이 둘 낳고도 한동안 차도 없었다.
차를 살 수도 있었지만 대부 받은 빚을 우선으로 갚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런 중에도 항상 더 우선으로 잘 했던 것이 바로 하나님 것을 잘 구별해 드리는
십일조 생활을 감사함으로 실천했다.
주일 예배드리러 갈 때는 남편이랑 한 명씩 안고 가고 낮에 혼자 외출을 할 때면
갓 돌이 지나면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큰 아들을 걸리고 둘째를 앞 띠를 해서 안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같다.
건강도 주셨고 은혜도 주셨기에 정말 고단하지 않았다.
기쁨으로 충만했으니 모든 것을 이겨 내었던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고 감사이다.
우리 부부는 첫째를 낳은 후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기간인 10달 반만에 둘째를 감사히 다시 안았다.
아마 이런 집은 거의 드물 것 같다.
첫째 돌 잔치에 둘째가 벌써 1달 반이 된 아가로 함께 예배에 참석해서 형아 첫 돌을 축하하느라 벙긋벙긋 웃었으니 말이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이고 감사이다.
그 때 내 나이가 28살이었다.어린 나이였는데 벌써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이 그리 기쁘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왜 벌써 이리 빨리 둘째를 주셨나요?’싶은 마음은 단 한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우와~~~주님! 벌써 또 둘째를 주셨네요,너무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왔다.
내가 5명까지는 항상 기쁘게 받을 거라는 마음의 준비가 있었기에 자녀를 주실 때마다 기쁘고 감사했다.
10달 뱃속에 있을 동안도 정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감사가 있었기에 평안하고 즐거운 날들이었다.
엄마의 그 마음이 아이들에게 잘 전해졌던지 정말 아이 넷 모두 온유하고 착한 성품으로 영육 건강하게 태어났고 또 영육 건강하게 잘 자라감이 늘 감사하다.
두 아들들이 여동생을 낳아 달라고 졸랐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자고 했고 기도 제목이되었다.
큰아들과는 7살 차이
둘째아들과는 6살차이로 셋째를 낳았다.
정말 기다리던 공주였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우리 가족의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또 한명을 주셨다.
기쁨과 감사가 넘쳐서 시댁과 친정에 다 기도 부탁을 하며 자랑을 했다.
그런데 그 때가 바로 이민을 오려고 집 정리도하고 한국의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싯점이었다.
10주가 되었을 때 자연 유산이 되었다.
많이 슬프고 아팠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를 돌이켜 보았다.
낯선 땅에 가서 살 우리 가족과 그 때의 상황과 형편이 넷째를 키울 나의 몸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유산의 아픔을 겪은 어머니들의 마음을 그대로 잘 헤아리며 위로할 수 있는 경험을 갖게 하신 것을 감사드렸다.
그리고 2000년 3월에 이민을 왔다.캐나다 땅에 조금 적응을 했다 싶으셨던지
2001년 12월에 넷째를 안겨 주셨다.임신 순번째로는 5번째였다.
감사하게도 넷째는 건강하게 잘 태어 났고 우리 가족이 낯선 캐나다에서 잘 적응할 수 있게 기쁨의 선물로 안겨 주신 것이어서 너무도 감사했다.
큰 아들과 띠동갑으로 12살 차이가 나는 막내를 위의 세명의 아이들은 너무도 기뻐하고 사랑하며 잘도 챙겨 주었다.넷째는 정말 위의 형들과 누나가 키웠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우애있게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힘이 나고 감사가 넘쳤다.그 안에서 생기는 에너지가 우리 부부에게 삶의 기쁨을 더하게 했고 즐겁게 일 할 수 있게 했다.
막내아들이 6개월 때 우리 가족은 한국의 편의점과 거의 비슷한 버라이어티 가게를 시작했다.
막내를 등에 업고 가게서 몇시간을 일해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기쁨과 감사가 있기에 육신이 피곤한 것은 또 금방 쉬면 풀렸다.
마음이 평안하니 남들이 힘들다 하는 것들도 나는 힘들다 생각지도 않았고 그래서 정말 힘들지 않았다.
감사제목이고 또 감사제목이다.
넷째가 2살일 때 하나님은 내게 6번째의 임신을 하게 하셨다.
정말 너무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5명까지는 늘 기쁘게 받을 마음이 있었기에 주신 그 자체가 감사했다.
그런데 막내가 2살로 어리고 가게 하느라 바쁘고 집 안 일도 혼자 다 했기에 몸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피곤하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몸이 힘들었던지 임신 10주만에 지난번처럼 또 자연 유산이 되었다.
그 때는 처음에 유산 할 때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마음이 아팠다.
진봉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 아가였는데 그 당시도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니 주시긴 하셔도
내가 아이 5명을 키울 컨디션이 아니다 싶어하신 것 같다.
그래서 주신 것도 감사했고 또 10주만에 데려 가신 것도 감사했다.
그 이후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
생리가 끝날 때까지 나는 언제 임신을 할 지몰라서 항상 더 좋은 생각과 좋은 마음으로 그리고
먹는 것도 더 깨끗하고 몸에 좋은 것으로 잘 골라서 먹었다.
자녀 넷을 키우면서 늘 감사하고 있다.
요즘은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시대여서 우리 가정의 4명을 보고도 많이 낳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이는 아니지만 정말 넷 주신 것을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내가 3년 전까지도 자녀를 또 주실 지 모를 기대를 가지고
마음과 몸을 주님 은혜안에서 잘 챙겨 왔기에 그런지
지금도 처녀 때 몸무게와 처녀 때 허리 둘레임도 감사하다.
몸이 가벼워서
하루 종일 날아 다니면서 이 일 저 일을 해도 여전히 지치지 않음이 감사하다.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와
매일 새 날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드리다보니
정말 놀라운 힘이 공급됨을 아직까지는 매일 체험을 한다.
육신은 연약하니 이제 조금씩 더 몸을 살펴가면서 쉼도 더 잘 챙겨 할 수 있길
가족들이 많이 권면하기에 잠도 1시간이라도 더 자려고 마음을 먹는다.
진봉이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정말 우리들 이야기가 길어진다.
남편이 배가 조금 나왔다.
우리 아이들 특히 셋째와 넷째는 아빠 배에 진봉이가 들었다고 한다.
“진봉아!,진봉아!”라면서 아이들은 아빠 배를 어루만진다.
그 모습에 밥상에 앉은 우리 가족은 한바탕 웃음 바다를 만난다.
정말 감사하다.
우리 가족들에게 친근하고 사랑이 담긴 이름이다.
기대하고 기다리며 부르려던 이름이다.
우리 가족들은 ‘진봉이!’이 하면 정말 특별한 사랑을 느낀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자 이름을 걸고 해야된다면
정말
‘진봉이!’라고 내 걸어 보고 싶다.
“진봉아!,진봉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지금까지 잘 인도해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큰 감사를 올려 드린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글을 쓰면서 쉬는 참 좋은 취미를 주신 것도 감사드린다.
그저께 주일 저녁 식사 마친 식탁에서 아이들이 아빠 배를 어루만지면서 진봉이가 들었다고 또 말했다.
“아빠,이 배 안에 진봉이가 들었나 봐요”라면서 아빠 뱃살을 어루만지며 막내가 말했다.
그리곤
“진봉아!,진봉아!”라면서 아빠 배에 가까이 가서 나직하게 말하는 막내의 모습에 식구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그 웃음 소리에 우리가족은 저녁 먹은 소화가 술술 잘도 되는 소리까지 들으며 행복했다.
우리 아이들 이름이 다 ‘진’자 돌림이다.
‘진봉이!’
‘봉’이란 글자 때문에 웃음이 나기도하는 이름인데 친정 아버지께서 좋은 이름으로 지어 주신 이름이기에 우리 가족이 좋아한다.
진봉이 동생 맞을 기대가 컸던 아이들이라서 지금도 그 이름을 늘 좋아하며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담긴
이름을 기억하며 사랑하고 있다.
나도 이 이름이 참 좋다
‘진봉이!’
2017,3,28,화요일,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고 쉬는 시간에 글을 쓸 수 있음이 감사하다.그리고 주님 은혜안에서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김 수남
2017년 3월 29일 at 1:16 오전
저가 쓴 글인데 다시 읽어보면서 눈물이 나네요.아마 ‘진봉!’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저희 가정의 특별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가 봅니다.
저의 블로그를 방문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항상 사랑으로 기도로 함께 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랑하며 축복합니다.여호와 살롬!
ss8000
2017년 3월 29일 at 2:50 오전
어제 귀국을 했습니다.
캐나다는 세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큰딸아이가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1년여 했습니다.
그 때 지금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큰외손녀 은비라는 아이를
제가 직접 궈뒀습니다. 이를테면 베이비시터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 아이 네 살 되던 해 여름방학을(제 어미)이용해 면회라는 핑계로
그 아이를 데리고 밴쿠버에서 보름 에드먼튼 친구 집에서 보름을 보냈습니다
두번째 캐나다 동부 5박6일 여행 그리고 이번…
그래서 그런지 캐나다는 생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느낀 걸 오늘 수남님께서 적나라히
글로 올리셨습니다.
‘진봉’이가 이 세상에 꼭 태어 났어야 하는데….
좀 아쉽습니다.
제가 이번 캐나다에서 느낀 두 가지 사회적 문제는,
첫째, 중국인과 인도인 때문에 캐나다 백인 사회가 점점 도심에서
빠져나가 외곽으로 이주하는 양상이 짙다는 것,
둘째, 캐나다는 아이 열 아니라 축구팀 보다 더 많은 럭비팀을 구성할만큼
낳아도 국가에서 책임을 져 주다시피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충분하다는 점.
우리는 아이만 낳으라고 했지 그런 사회보장이 전무하다는 겁니다.
우선 제 자식들마저도 하나만 낳고(다행히 둘째딸은 쌍둥이지만..)
더 이상은 낳지 않겠다고 하니 제 자식 놈 밑으론 대가 끊어 질 위기에
있습니다.(몽땅 손녀)
그러나 무엇 보다 수남님은 그런 것들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종교의 힘 기도의 힘으로 자녀 분들을 훌륭히 낳고 기르셨습니다.
참으로 보람 된 인간의 도리를 다 하신 수남님께
찬사와 함께 박수를 바다 건너에서 힘차게 보냅니다.^^
김 수남
2017년 3월 29일 at 8:59 오전
네,선생님! 벌써 그사이 귀국을 하셨네요.안전히 잘 도착하셔서 답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캐나다는 18살까지 챠일드 베네핏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 이민자들은 우유값이라고도 불러요.처음 이민와서 저희도 아이들 앞으로 우유값을 받았습니다.그 이후 가게를 시작해서 매년 정직하게 수입 보고를 했습니다.부모 수입에 따라 다르게 나오기에 지금 15살인 막내는 우유값이 점점 줄어 들다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나오지 않지만 감사합니다.
세금 내는 부분은 많아지고 혜택은 없어졌지만 저희가 세금을 잘 내는 것으로 또 처음 이민오셨거나 아직 채 일을 못하시는 가정에
도움을 드릴 수 있음이 보람이고 감사입니다.
챠일드 베네핏이 처음 이민자들에겐 큰 도움이 됩니다.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그 돈 생각하지 않고 수입을 올리며 최선을 다해 삽니다.
간혹 정부에서 주는 그런 혜택은 최대한 이용하고 일은 제대로 하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젊은 분이 그러는 경우는 많이 안타깝습니다.수입을 일부러 적게 보고하는 경우도 있고요.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정직하게 나라의 법을 잘 따르는 것이 또한 마땅하고 자녀 교육에 본보기가 될 수가 있습니다.캐나다는 정말 좋은 나라입니다.질서가 있고 정직한 사람들이 많음을 살아가면서 볼 수 있기에요.
두 따님과 사랑스런 은비랑 수아, 주아 모두 항상 건강하며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앞으로의 삶에 큰 도움이 되어지길 기도합니다.
선생님도 늘 건강하시며 여독 잘 푸시고 행복한 봄 맞으시길 기도합니다.감사합니다.
데레사
2017년 3월 29일 at 3:33 오전
진봉이, 순수하고 따뜻한 이름이네요.
앞으로 그 이름으로 불리는 자손을 갖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혹시 네명의 자녀가 진봉이를 낳아줄지도
모르니까요.
늘 감사속에서 사시는 수남님!
김 수남
2017년 3월 29일 at 8:44 오전
네,언니! 감사합니다.늘 가까이서 함께 하시니 거리 먼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하겠어요.
건강하시고 행복한 매일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