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들아! 저 언니 쮸쮸 진짜 크제?”
연아가 말을 했다.초등학교 1학년인 동네 친구들 5명이 함께 였다.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여름 날 동네 맑은 웅덩이에 멱 감으러 간 날이다.
많이 더운 날은 하루에도 두 세차례 물가로 나갔다.
안동 일직 귀미 우리 동네 제일 가까운 산 언덕 아래의 웅덩이였다.
우리는 여름이면 멱 감으로 가는 몇 곳이 있었다.
동네 아랫쪽의 큰 강으론 골벵이 주으러로 갈 때 주로 갔다.어릴 땐 강에서 잡아 온 골벵이가 우리의 좋은 간식거리였다.
물놀이하면서 골벵이 잡는 즐거움도 컸다.삶아서 그냥 먹기도 하고 또 엄마가 살을 빼서 골뱅이 국도 끓여 주셨다.종종
된장에 넣어 엄마가 된장국을 끓여 주시면 또 그리 맛있을 수가 없었다.골벵이 엉덩이를 이로 깨물어 버리고 쪽쪽 빨면
골벵이 살이 짭잘한 된장과 함께 쏙 나온다.밥과 함께 먹으면 우리의 입맛을 돋구는 맛난 밥반찬이 되었다.
강이 넓어서 물놀이 하긴 최고다.그래도 우리끼리 가기엔 조금 먼 동네 끝이라서 우리보다 큰 언니들이 함께 갈 때 주로 가는 곳이었다.
우리끼리 갈 때는 동네 앞쪽의 생담 정자 밑 웅덩이나, 동네 윗쪽의 머릿골에 주로 갔다.
하루에도 몇번씩 오가려니 동네 바로 곁을 선호했다.
우리끼리 가도 들에 오고 가시는 동네 어른들이 우리를 볼 수 있는 안전한 장소였다.
그 날은 동네 윗쪽에 있는 산 아래의 머릿골 웅덩이에 갔다.
물 앞에 자갈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우리가 놀기도 좋았다.
물 속에서 놀다가 추우면 달려 나왔다.
햇볕에 뜨겁게 데워진 자갈은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수건을 등에 얹고 배를 자갈에 대고 누우면 금방 몸이 다시 데워졌다.
그리고 다시 물에 들어 가고 또 나와서 놀다가 또 다시 물에 들어 가고 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놀다보면 우리는 덜덜 떨면서 입술이 파래졌다.손가락은 너무 물 속에 오래 있어서 쪼글쪼글 해졌다.
그래도 또 뜨겁게 데워진 자갈 위에 누워 재잘거리며 이야기 하고 놀다가 더 물놀이 하다가 집에 오곤했다.
비가 많이 오면 흘러 내리는 강이되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강 줄기는 말라도 산 밑의 웅덩이엔 여름 내내 우리가 멱감기 충분한 물이 담겨 있었다.
이 물은 동네 도랑으로 연결되어 흘러 가기에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서 늘 맑았다.
몹시 더운 어느 여름 날이었다.
그 날은 우리 동네서는 좀 부자인 집의 친척으로 그 댁 일을 거들며 그 댁에 와서 사는 분희언니도 자리가 조금 떨어져서 옷을 벗고 있었다.
곁에 있는 또 한 친구가 말을 했다.
“야들아! 저 분희언니 좀 보레이,억수로 젖방티이가 크데이”라고 했다.
그 언니는 우리들보다 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가슴이 전혀 없는 어린 소녀들에 비해
풍만한 가슴이 있었으니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내 생각에 나이에 비해선 약간은 정신 연령이 좀 낮았던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이 멱감는 곳에 대낮에 큰 가슴을 내 놓고 목욕하러 나온 것이 그것이다.
얼굴은 둥실하고 몸집에 살도 많았다.
말도 좀 씩씩거리면서 콧바람을 내면서 말하는 스타일이었다.피부는 하얗고 예뻤다.그런데 얼굴에 여드름 같이 것이 나 있었고 코는 유난히 큰 편이었다.
몸 전체에 비해 입술은 정말 앵두입술처럼 귀엽고 예뻤다.
또 한 친구가 분희언니를 힐긋 보면서 가슴이 진짜 크다고 또 말을 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따로 말은 안했지만 놀랍다 싶은 표정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컸겠냐? 싶지만 어린 우리 눈에 그리고 전혀 가슴도 없는 초등학교 1학년들 아이 눈에는 엄청 크게 보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조심스럽게 소곤거리며 팬티만 남기고 이제 옷을 다 벗었다.물에 들어 가기 직전에 몸을 풀고 있었다.
그 때는 주로 운동회 때 입는 검정 팬티를 우리는 다 입고 멱을 감았다.
수영할 때 입으면 수영복이 되고 체육 시간에 입으면 체육복이 되는 겸용이었다.
검정 팬티 양 옆으론 마치 체육복처럼 2개의 선이 박혀있었다.우리 친구들은 단체복을 입은 것처럼 똑 같은 멱감는 팬디입고 즐겁게 물장구치며 신나는 놀이 시간이었다.
그 당시 검정 팬티는 면이 아니었기에 물을 탁탁 털면 또 금방 잘 마르는 천이었다.
몸을 어느 정도 풀어서 이제 물로 들어 가기 직전이었다.
분희언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5명의 어린 소녀가 소곤거리며 조심스럽게 한 그 말이 그 언니 귀에도 다 들렸던가 보다.
내가 마침 분희 언니랑 제일 가까운 쪽이었다.
다가오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삼킬듯이 몇 발작 다가와서 겁이 났다.피할 겨를도 없는 나를 탁 낚아챘다.
우리는 언니가 못듣게 작게 말했다 생각했다.그런데 그 표정으론 우리가 자기 이야기 한 걸 다 알아버린 표정이었다.
눈을 부릎뜨고 기분이 사나와져 있는 눈빛이 고개만 끄덕인 한 소녀의 눈과 마주쳤다.
제일 자기와 가까이에 앉았던 한 소녀를 덥석 안아서 자기 오른 무릎 위에 턱 걸쳐지게 안았다.
그리곤 성큼성큼 다짜고짜 물속으로 들어 갔다.5명 중에 걸린 그 한 소녀가 바로 나였다.
그 언니는 물 제일 한 가운데다 싶었던지 나를 빠뜨리고 나와 버렸다.
나는 아직 헤엄을 잘 치지 못할 때였다.
엉겹결에 당한 일에 놀라서 헤우적 대었다.
폭이 좁은 웅엉이이긴 하지만 헤엄을 못치는 나는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싶었다.
친구들이랑 멱감으러 가도 그 안에 깊은 곳까지 아직 가 본적이 없었다.
수영을 배운 적도 없고 헤엄을 잘 치진 못하지만 시골서 자란 아이답게 물속에서 놀 때의 경험이 있었다.
평소에도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면 앞으로 전진을 한 것을 알았다.
물속에서 힘껏 발로 물장구를 치면서 앞으로 나오려 안간힘을 썼다.
다 나왔다 싶어 서 보면 발이 땅에 닿지도 않는 깊은 곳이었다.
또 힘껏 물속 헤엄을 치면서 안간힘을 다 해서 나와서 서보니 역시 발이 닿지 않았다.
숨을 한 번 위에서 쉬고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서 온 힘을 다해 움직여 강가로 나오려 애썼다.
여전히 발이 푹 내려가고 땅이 짚혀지지 않았다.
정말 힘이 다 빠져가고 있었다.
더 힘을 써서 물속에서 평소 멱감으로 와서 친구들이랑 놀 때처럼 물속으로 힘차게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물장구치며 나아왔다.
다시 두 손을 높이 들고 발을 짚어 보았다.
드디어 발이 땅에 닿았다.
친구들은 내가 물에 빠져 죽는 줄 알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가 살아 나오니 박수를 치면서 좋아라했다.
분이 언니도 나를 빠뜨리고 보니 헤엄도 못치는 아이였음이 놀랐을텐데 여전히 분을 못 삭혔는지 식식거리고 있었다.
가슴 크다고 한 것이 그리 분희언니를 화나게 하는 일인 줄 우리는 정말 미처 몰랐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 들어 버릴 줄도 모르고 우리끼리 소곤대고 했으니 정말 어린 소녀들이긴했다싶다.
큰 가슴을 가진 사람이 멱을 감으러 왔으니 신기하기도해서 한 말이었다.
나는 직접 입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역시 동조자였기에 5명을 한꺼번에 다 빠뜨리지 않고 나 한사람만이었던 것만도 감사해야했다.
동네서 조금 떨어진 웅덩이였기에 누가 도움을 당장 와서 줄 수도 없는 곳이었다.
정말 내가 조금만 더 폭이 넓은 곳이었으면 정말 그 때 물에 빠져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살아 오면서 죽을 뻔한 고비가 몇 번 있었다.
교통 사고가 또 그 하나이다.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이 새삼 감사이고 기적이 따로 없다 싶어 더욱 감사하다.
20살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라는고백이 되어 감사하다.
예수님 믿지 않을 땐 잘 된 것은 내가 잘 해서 잘 되었고
잘 못된 것은 또 그 이유를 다른 사람이 잘 못해서 라는 식으로 해석하기가 일쑤였다.
정말 그 때는 내가 운이 좋아서 그래도 늘 멱감던 익숙한 동네여서
차가 그래도 속력을 많이 내지 않아서 등등…
죽지 않은 이유를 내가 잘 한 부분에서 찾고서 다행이다 싶어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나니 다행이란 표현은 거의 안쓰게 된다.
그저 감사인 것이다.
다행이 아니라 그렇게 섭리해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다행이란 말 대신에 감사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지!
정말 모든 것이 감사이고 또 감사이다.
그 분희언니는 지금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하다.
언니를 지금 정말 만나게 되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 때 얼마나 그 말이 속상하고 상처가 되었으면 어린 아이를 그렇게 물에 풍덩 빠뜨려버릴 정도로 화나 났을까? 싶어진다.
어느 곳에서 사시던지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지금도 어릴 때 본 그 언니의 그 얼굴이 그대로 기억이 난다.
내가 분희언니 제일 가까이서 멱 감으로 들어가려던 위치였던 것도 감사하다.
내가 또래 5명 중에 제일 몸무게가 가벼웠던 아이였던 것도 감사하다.
분희언니 눈에 내가 제일 물에 데리고 가기 쉬운 아이처럼 보였을 것도 감사하다.
내가 물 속 개헤엄이지만 늘 단련되었던 것이 감사하다.
강 폭이 좁아서 힘 빠지기 전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다.
그 이후 다른 사람들의 신체에 대해서는 말하면 안됨도 확실히 배울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
같은 동네 친구들과 카톡 방이 연결되어 서로의 어릴적 이야기를 여전히 나누며 오늘의 삶을 감사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그 때 그래도 개헤엄이지만 물장구 잘 치며 물속에서 잘 움직이던 내가 분희언니한테 잡혀서 살아 나왔음이 감사하다.
혹시라도 다른 친구가 잡혔으면 그 날 또 어떤 일로 이어졌을지 어릴적 일이지만 아찔하기도하고 또 그 일을 내가 당했던 것이 감사하다.
분이 언니가 아마 지금은 60대 초 중반이 되었을 것 같다.
그 때는 정말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우리 5명은 멱도 못감고 바로 옷 갈아 입고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종종 멱 감으러 가서 분희언니를 볼 때도 있었지만
우리 모두 절대 가슴 이야기는 안하게 된 것만도 감사하다.
그 때 언니가 혼을 내지 않았으면 아마 우리는 분희언니 가슴 큰 것을 또 장난삼아 말하곤 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언니는 성숙했고 풍만한 가슴이 참 아름다운 시기였는데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 되어
엄마 젖가슴이 더 가까운 어린 소녀들에게 자기들과 다른 모습으로 멱감으로 온 분이 언니가 정말 신기하기도했기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저 언니 쮸쮸 좀 보레이,진짜 크데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정말 철부지가 따로 없다.
내가 바로 그런 철부지 시기를 가졌던 아이였다.
우리끼리 정말 무슨 신기한 것을 본 듯이 말했으니 분이 언니가 화도 날만했다 싶다.
정말 살아 오면서 어릴 때 그 철없어 몰라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된 것도 있지만
여전히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속상하게 했고 힘들게 했던 것을 모르고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과 행동으로 그 때 분이언니처럼 화나고 속상한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모르고 지내고 있으니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찾아가셔서 나를 이해 할 수 있게 하시고 또 용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엊저녁에 친정 언니가 지난 주말에 형제들이 모여서 시골에서 어릴적 자랄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었다는 말에
나도 내가 어릴 적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아침에 새벽 예배드리고 오면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 가운데 제일 생각나는 어릴 적 이야기가 내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바로 이 이야기였다.
정말 그 때 안 죽게 살려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를 드린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매일이 보너스이고 특별한 선물임이 감사하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예수님 믿고 나니
정말 더욱 깊이 감사의 제목들로 다가오는 모든 것이 정말 은혜라는 고백이 된다.
내 삶에 온통 새로운 생각의 전환점,가치관의 전환점이 되어 만나 주신
구주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도 새 날을 주시고 생명 있는 자로서 또 허락해 주신 자리에서
기쁘게 감사하게 삶을 성실하게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다행”이란 말 대신 “감사!”란 표현으로 말을 바꾸는 훈련도 참으로 유익하고 좋다.
“그 때 물에 빠져 죽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야”
대신에
“그 때 물에 빠져 죽지 않은 것이 정말 감사야!”라는 식이다.
내가 예수님 믿고 나의 언어 표현도 여러 부분에서 많이 바뀌었다.
그 가운데 다행이란 말을 거의 잘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다행이라고 표현되는 부분에 감사로 바꾸어 사용해왔다.
참으로 내게 더 큰 기쁨과 감사가 된다.
내가 그 표현하는 속에 감사가 정말 더욱 풍성하게 커져서 오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표현 속에서 행복은 더욱 더 커져옴을 감사드린다.
2017,6,6,현충일 아침에,우리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많은 분들을 생각하며 고개 숙여 감사하며 어릴적 추억 속의 잘못을 통해 새롭게 삶의 교훈을 얻으며 여전히 성장하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ss8000
2017년 6월 7일 at 6:26 오전
암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어린 소녀를 물 속에….
그래서 그 말이 꼭 맞는가 봅니다.
갱상도 말로…’까스나 몬 땐 거 젖티만 크다.’이카는 거.ㅎㅎㅎ…
아무튼 그 분의 가호로 오늘을 영위 하십니다.
할렐루야!
김 수남
2017년 6월 7일 at 11:11 오전
아멘! 네,선생님! 감사합니다,정말 그 분의 가회이세요.선생님이 올려 주신 갱상도 말 보면서
지금 한 밤 중에 혼자 크게 막 웃었습니다.밭의 고추가 그렇게 타 들어 간 소식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사모님의 온유하신 성품도 뵙는 것 같습니다.영농의 기쁨과 즐거움이 날로 더해 가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