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선교 갈 때 수지침이 좋은 역할을 한다.열악한 선교지 일 수록 수지침의 효과도 크다.카작스탄과 캄보디아 선교에서 이장로님의 수지침 사역은 닥터Lee로 불릴 만큼 능력 있는 의술이었다.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일이니 아픈 사람들이 낫는 신기한 경험도 선교팀들은 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감사와 영광을 또 올려 드리기도한다.수지침은 작은 도구여도 받아 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낫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더 효력이 나는 것 같다.믿음이 이김을 본다.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라면 더 큰 기적도 물론 맛보게 될 것이다.
친정 어머니께선 손을 잘 따셨다.100가구 정도 있는 시골 동네에서 엄마는 의원같았다. 음식 먹다가 체한 것을 안동 말로는 언챘다(얹히다의 사투리)고했다.”서현댁요 우리 아 좀 봐 주이소,뭐 언챘는지 영 속이 안좋타 카네요”라면서 이웃집 아지메들이 아이들을 곧잘 데리고 왔다.그리고 어른들도 자주 왔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예쁜 천에 잘 감싸 챙겨 싸 둔 바느질 바늘을 머리에 몇차례 문지르시고 손을 따 주셨다.
손 따는 바늘을 따로 늘 잘 챙겨 두셨다.
가운데 손가락 가운데 마디를 주로 따셨다.
어떨 땐 엄지 손톱과 살 부분 사이를 따기도 하셨고 손가락 끝을 따기도 하셨다.
그리고 손을 잘 만져주며 맛사지해 주는 모습이 기억난다.
사람들이 말하는 증상에 따라 하신 것을 보면 엄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혈자리를 아신 것 같다.
엄마의 경험으로 익히신 것 같다.신체의 일부가 손에 다 있음을 또한 아셨던 것 같다.
머리에 몇차례 바늘을 빗으로 머리 빗듯이 하신 것은 소독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요즘 관념으로 생각하면 비위생적이다 할 수도 있지만 엄마한테 손따고 가면 정말 모두 속이 시원해지고 체증이 가라 앉고 낫는다고 했으니 효혐있는 의술이었다싶다.
입 소문이 나서 이웃 동네 사람들이 오기도 했다.그러니 증상이 있을 때마다 또 즐겨 찾으셨던 것 같다.농사 짓고 7남매 키우면서 바쁘셔도 찾아 오는 동네 분들께 늘 친절하게 잘 손을 따 주셨다.순전히 정말 기쁨으로 섬기는 봉사였다.나도 몇 번 손을 따 보았다.어떨 땐 신기하게도 피가 안나고 끈적한 하얀 물이 나왔다 .내가 열이 나고 몸 상태가 안좋을 때 그랬다.나도 엄마가 손을 따 주시면 금방 낫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는지 정말 엄마가 손 따주시고 따뜻한 꿀차 태워 마시게 챙겨 주신 것 먹고 한 잠 자고 나면 금방 감쪽같이 몸이 개운해지고 다시 평상의 좋은 컨디션이 되었다.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엄마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셨지만 참으로 지혜로우셨다. 우리 말도 잘 읽고 글도 잘 쓰셨다.시대를 잘 타고 났으면 훌륭한 의사선생님도 되셨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어머니는 1925년생이시기에 일제시대에 아가씨 공출에 당하지 않게 하려고 외할아버지께서 같은 직장에 있는 성실하고 착한 청년에게 16살에 시집을 일찍 보내셨다. 22살 노총각(1919년생인 아버지는 그 당시 노총각이셨다한다)한테 얼굴 한 번 안보고 시집을 오셨다.결혼식날 처음 신랑 얼굴을 보았다고하니 정말 옛날 옛적 이야기가 맞다 싶다.결혼식날 엄마는 방문을 빼꼼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고한다.마당에 와 있는 신랑을 얼핏 봐도 절름발이,곰보가 아닌 것만도 안심했다신다. 키도 크고 훤칠하니 잘 생겨서 너무 좋았다셨다.어머니 이야기에 같이 웃으며 부모님의 살아 오신 이야기 듣는 즐거움이 늘 컸다.
결혼식날 처음 만나고서도 오랫동안 회로하시면서 잘 살아 오신 것이 정말 놀랍고 존경스럽다.9남매를 낳으시고 둘은 일찍 잃으시고 7남매를 농사 지으시면서 고생하시면서도 모두 인성이 좋은 건강한 사회인들로 잘 키우셨다.참으로 감사하다.우리 7남매 가정이 모두 행복하게 우애있게 잘 살 수 있는 것은 다 부모님의 사랑과 본을 보이신 삶의 모습을 보며 배워 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90세에 병원 가시고 하루 만에 갑자기 떠나셨다.노인성 병 하나 없으셨기에 100세는 거뜬히 넘기실 분으로 알았다.그 때까지도 늘 손따기는 전문가셨다.그런데 저녁도 맛있게 잘 드시고 새벽에 복통이 있어 병원 가셨는데 하루만에 그렇게도 우리에겐 아쉽게 천국으로 가셨다.모든 동네 사람들이 복노인이라셨다.그리 평안히 잘 떠나셨다고 부러워하셨다.하지만 자식된 우리들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너무도 아쉽고 늘 그립고 그리 금방 떠나버리셨나 싶은 아쉬움이 크다.겨울 지나고 봄이 되어 시골에 다시 내려 오실 차비를 하려고
봄이 오는 길목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셨다. 겨우내 먼지 쌓인 집도 언니랑 형부랑 잘 청소하고 마당에 싹이 터 올라오는 마늘도 챙겨 보시고 정리해 두고 다시 올라 오셨다.겨울 동안은 늘 서울과 분당과 성남에 있는 자녀들 곁에 머무시다가 봄이면 다시 시골로 내려 오시곤했다.서울에 조금 더 지내시다가 날이 더 풀리면 내려 오실 참이셨다.서울에 와 계시는 동안 자식들 곁에서 평안히 떠나신 것은 너무도 감사하다.조문을 오시는 분들도 시골까지 내려 가시지 않고 병원 장례식장에서 바로 뵐 수 있었음도 감사하다.사람들이 이래저래 복노인이라시며 오히려 부러워 하셨다.동네 어르신들이 서현댁이처럼 그렇게 본인들도 떠나고 싶다셨다.
우리는 서운하지만 어머니는 우리 7남매를 사랑하셔서 선물로 그렇게 조용하게지만 아름답게 떠나셨다 생각하며 감사를 얻는다.나는 어머니보다 조금은 더 오래 살고 싶다.요즘 100세 시대이니 최소 어머니 연세인 90세보다 조금은 더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어머니처럼 나도 노인성 병 하나 없이 100세까지 그리고 더 건강하면 조금 더
건강하게 지내다가 어머니처럼 하루 병원에 있다가 자녀들과 일일이 다 찬송하며 인사 나누고
천국에 갈 수 있어지길 기도한다.남편과도 함께 건강하게 오래 장수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천국 떠나시기 전에 나랑 통화까지 한 어머니 음성을 늘 기억한다.
“오냐 난도 사랑한데이 우리 수남이 사랑하고 말고!”어머니는 내가 사랑한다는 말에 늘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며 천국 갈 수 있어지길 기도한다.
나도 수지침이 배우고 싶어졌다.
엄마가 문득 그리워질 때면 손을 따 주시던 모습이 그려진다.
이장로님께서 전문가로 선교 때마다 수지침을 담당하셨고 남편은 곁에서 보조 역할을 했다
나는 어린이 성경학교 선생님으로 섬기고 잠깐씩 도와도 뜸 뜨는 것 정도 도와 주는 것이었다.
수지침 맞은 사람에게 뜸을 놔 주고 마무리해 주는 역할도 물론 중요하다
그런 일을 도우면서 나도 직접 수지침도 놓을 수 있게 잘 배워서 더 효과있게 도움 주어야겠다 싶다.
바느질 바늘로 엄마가 정성과 사랑으로 동네 사람들 손을 따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더 좋은 시대에 더 좋은 위생적인 도구들이 있으니 잘 배워서 활용해 봐야겠다 싶다.
5월 말까지는 스케줄이 가득 짜여 있다.
6월부터는 수지침도 배우고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수채화도 좀 배우고 싶다.
여전히 배우고 싶고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생김이 감사하다.
내가 공부하고 일하고 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손, 발에 몸 전체 부분이 다 담겨 있어서 손 발 맛사지의 효과가 큼을 알기에
나도 짬짬이 내 손과 발 맛사지를 잘 한다.
남편 발 맛사지도 매일 신경써서 해 주고 싶은데 매일은 하질 못했다.
더 잘 신경써서 남편 하루 피로를 잘 풀어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보다 보니 발맛사지 기계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몸 전체와 연관된 손과 발의 위치를 익혀 두면 맛사지 할 때도 더 효과가 있다.
손,발이 전체 몸과 연관된 부분을 살펴보면 정말 신기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또 보이는 만큼 잘 활용할 수 있다
손,발마사지의 효과가 크니까 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가족과 친구들과 이웃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해야겠다싶다.
데레사
2019년 3월 8일 at 8:55 오전
바늘을 머리에 문지르는게 과학적으로도 소독이
되는것이 맞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어요.
그때의 어르신들이 아주 지혜로우셨죠.
수지침 꼭 배우시기 바랍니다.
김 수남
2019년 3월 8일 at 11:16 오전
아,네,언니 그렇군요 .바늘을 머리에 문지르는게 과학적으로도 소독이 된다니 놀랍네요.
옛 어르신들 정말 지혜로우셨네요. 저희 어머니도 외할머니 하시던 것 보시고 따라 하신 것이겠기에요
글벗으로 가까이 항상 함께 계시는 언니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