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시민이 된 날

캐나다 시민이 된 날

2005년 4월 27일 수요일 ,아이들 학교 보내고 막내가 아직 자는 아침에.

많이도 바쁘게 지내지만 온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지난 월요일은 우리 가족에게 참 의미 있는 날이었다.

2005년 4월 25일 11시-1시까지 장장 두 시간의 기념식이 있었다.

캐나다 시민권 선서식에 참여했고

드디어

‘케네디언’이 되었다.

감사한 것이 많은 일면에 뭔가 모르는 섭섭함이 함께 일기도 했다.

아이가 셋인 동네 친구 실비아는 이태리 밀라노 에서 6년 전에 온 이민자인데

이태리는 캐나다 국적을 가져도 자기 국적이 상실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캐네디언이 된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해야 된다는 것이 참 아쉽고 가슴이 아렸다.

이곳에 살아도 한국사람임에 틀림이 없고 내가 우리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똑 같은데

하나를 얻으니 다른 하나를 잃어야 되는 아픔도 겪어야 됨을 실감했다.

내가 캐나다에 뿌리를 내릴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깊이 생각하고 선택한 일이기에 감사하게 잘 감당할 수가 있다.

한 50여명이 함께 선서식에 참여 했다.

우리와 같은 날 시험 본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가 않았고 처음 만난  한국인 두 가정이 함께 참여해서 반가웠다.

우리 가족은 기념식이라는 생각에 모두 정장을 차려 입고 갔다.

—-막내가 깨서 마무리는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

—–

 

 

지금은 오후 1시 40분이다.

남편은 막내를 데리고 도매상에 갔고 나는 가게를 돌보면서 짬짬이 선서식 날 표정을 몇 자 더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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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편한 평상복을 많이 하고 왔다.

등교한 아이들을 10시 경에 각각 픽업해서 가는 차 안에서 옷을 갈아 입히려고 딸 드레스와

아들들 양복을 챙겨 넣었다.아들들은 많이 커서 아빠 양복을 입어도 맞아서 남편 옷 두 벌을 챙겨와서 입혔다.훨씬 멋있고 의젓해 보였다.

 

선서식 초대장으로 온 그린 레터를 대조하면서 본인 확인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국 분 두 가정이 보여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축하를 나누었다.

우리처럼 가족 단위로 온 사람이들이 반이고 반 정도는 개인이 따로 시민권을 받는 경우였다.

 

남 녀 두 사람의 안내원이 자세한 안내를 해 주었고 이윽고  검사복 같은 옷을 입은

할아버지 비슷한 은발의 담당관이 나와서

선서식이 시작되었다.

 

축사를 하는 중에 캐나다 날씨에 대해 많이 언급했고 우리는 여러차례 함께

따라 웃기도 했다.

서로 날씨 속에서 통하는 것들이 많다는 증거이리라.

워낙 토론토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보니

4계절이 분명히 있는데도 2계절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어떤이는 6월 중순까지 겨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면서.

사실 나 역시 지금 4월 말인데도 겨울 스웨터를 입고 가게 카운터에 서 있다.

밖에 햇살은 너무도 눈부시지만 차가운 기운이 있어서

스웨터위에 조끼까지 오늘은 더 입었다.

한국은 온 산천에 봄 꽃이 만발해 있을 것을 생각하니 다른 나라라는 실감이

또한 들기도했다.

이민 온지 5년만에 많이 익숙해진 날씨기에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 감사하다.

 

두 아들들은 식이 길어지자 마음이 쓰이는지 엉덩이를 들썩였다.

1시까지는 학교에 다시 돌아 갈 수 있을줄로 알았었기에 말이다.

속히 끝내도 될텐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느낌을 나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축사를 하시는 분 입장에서야 더 많은 축하의 인사와 당부를 하시고 싶으셨겠다싶다.잘 참던 막내도 지루했던지 물이 먹고 싶다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칭얼 대기 시작했다.

마침 들고 온 물도 없기도했지만 그것보다는 나가고 싶다는 신호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만 기다리자고 말하곤 비상대책으로 엄마 쮸쮸를 만지라고 했다.

막내가 손을 넣자마자 드디어 축사가 끝이 났다.

잘 기다려준 막내가 기특했다.조금만 더 길었으면 밖에 데리고 나갈 상황이었는데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축사가 끝나고 시민권을 일일이 악수하면서 앞에 나가서 받았다.

우리 가족 역시 축하 속에 시민권을 건내 받았다.참 감사한 순간이었다.

 

식이 끝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아들들 학교로 급히 달렸다.

아들들이 학교 돌아갈 시간이 급할 것 같아

준비해 간 점심을 차 안에서 간단히 먹였다.

딸도 오빠들 먼저 학교 간 뒤 동생이랑 맥도날드에 들러

해피밀을 시켜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 갔다.

 

오늘 같은 날 하루 쉬고 싶다고 할 수도 있을텐데

빨리 다시 수업하러 가고 싶어 안달인 아들들을 보면서

학교 생활을 너무도 좋아하는

이 아이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큰 일들을 이루어

가시길 기도드렸다.

이 일들을 보니 나도 힘이 솟고

꿈이 생겼다.

 

남편이 선교에 큰 비전이 있어서 낯선 땅 캐나다에 이민도 올 수 있었다.

캐나다는 모든 민족이 모여사는 정말 복음의 황금 어장이다.

우리 부부가 1995년 1년간 토요일마다 전문인 선교사 훈련 기관인 GPTI에서

전문인 선교사 훈련을 받았기에 타문화권에 오는 길을 하나님이 열어 주셨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웃의 엄마를 통해 캐나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듣게 했고

이민의 ‘이’자도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들에게 이민 올 마음을 허락해 주셨다.

돌이켜 보니 정말 모든 발걸음이 하나님 은혜이고 선하신 인도하심이셨음을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지경을 넒혀 갈 선한 목적이 있어서

우리 가족들은 하나님의 꿈을 이뤄갈 비전을 품고

캐나다에 뿌리 내릴 각오로 캐나다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국적은 잃었지만 더 크고 넓은 하나님의 시민권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 많이 만들어 가는 일에 힘쓸 선한 사명을 가지고

캐나다에서 뿌리를 더 굳게 내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신 귀한 날을 감사하며

기억할 수 있게 기록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도 감사!

이제 앞으로 하나님께서 또 해 나가실 모든 일들도 기대하며 감사합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보다 더 응답하시고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이뤄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고 찬양하며 영광 올려 드리며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전능하신 살아 계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

저희 가정과 자녀들 통해서 하나님 꿈을 이뤄가시며

저희들 기름부어 사용하시고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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