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명의 장병과 함께 한 실로암!감동과 감사!

유튜브 체널 가운데 ‘실로암!’이란 단어가 반가워 클릭을 했다.나도 복음송가인 실로암을 많이 불러왔지만 수천명의 장병들이 한꺼번에 부르는 것은 처음 보았다.장병들의 함성이 얼마나 가슴 찡한 감동이고 감격이었는지 몇 차례 더 보았다.

올 3월 17일부터 락다운이 되어 12번의 온라인 예배 그리고 다시 좀 완화되어 24번의 성전 예배에 이어 11월 29일 주일부터 다시 락다운이 되어  5번째 온라인 예배로 올해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린 오후에 이 영상을 보게 되었다.

우리 7남매 중 3명의 오빠와 남동생까지  4형제 모두 군복무를 잘 감당한  것이 감사하다,특히 동생은  논산 훈련소에 대한 특별한 추억과 관심과 사랑이  있기에 나도 남다르게 영상을 볼 수 있었다.친정 7남매 카톡방에 장병들의 함성과 함께 울려 퍼진 실로암 영상을 올렸다.막내 동생이 논산 훈련소 영상 올려줘서 누님 감사합니다라며 댓글을 달았다.코로나 19 이전에는 예배시에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신앙적 회심을 하는 병사들이 많았다고 한다.물론 신앙 없이 그냥 신나서 따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교회에 함께 온 그 자체가 장하고 고맙고 자랑스러웠다.청년 때에 나라를 위해 귀한 헌신을 하면서 온 몸과 마음으로 충성하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예배당은 2018년 12월에 준공되었는데 5천석 규모라고 한다.한국 교회와 군인교회의 후원으로 지어졌다니 후원한 모든 분들의 귀한 섬김이 너무너무 감사하다.둘째 언니도 실로암에 관련된 이야기를 동생 댓글 아래 달았다.
언니는 군장병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이 많고 늘 기도하는 권사님이다.형부가 군인이었고 30년 이상 복무했고  전역한지 올해 꼭  10년이 되었다.나도  언니 집에서 대학 다닐 때 형부가 남한산성 밑 특전사 3여단인 비호부대에 근무했다.그래서 언니 가족이 사는 서울 거여동 부대 곁의   군인 아파트에 살았고  군부대 안에 있는  교회인 비호교회에 몇 년 다니며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다.이 때 찬양을 인도하는 병사들이 ‘실로암!’을 정말 은혜롭게 잘 불렀고 자주 불렀다.나도 실로암 찬양을 정말 좋아하고 함께 잘 따라 불렀다.
그 때 막 20대에 들어선 꽃다운 처녀 선생님 3명이 있었다.나랑 다른 두 자매들이다.나중에 들었지만 장병들이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는 3명의 처녀 선생님들이 착하고 이쁘다고 보러 오려고 교회 따라온  장병들도 있었다니 미소가 피어 올랐다.정말 우리 셋은 고향은 달랐지만 다들 시골에서 올라온 시골 소녀들이었고 순진했고 순수했고 신앙적으로도 신실했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정말 사랑하며 진심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잘 챙기며 교사의 역할을 즐거이 잘 감당했다.두 자매들은 오빠 집에 나는 언니 집에 얹혀 살고 있는 청년들이었다.

나는 그 때만해도 정말 이성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모든 장병들을 군인아저씨들로만 보았기에 진심으로 그들이 군복무 기간동안 건강하게 신앙으로 잘 이겨내고  잘 제대할 수 있길 기도했고 개인적으로 따로 관심을 갖은 사람도 없었다.그런데 우리가 한창 때여서 그런지 정말 몇 몇 장병이  관심을 가지고 제대 후에 특별한 관심으로 다가오기도 했다.우리가 청춘 때이니 당연해 가능한 일이지만 교회서 예배 드리고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것 이외의 관심을 전혀 갖지를 않았다. 지금도 특별히 기억나는 두 청년이 있다. LEE SH,LEE IY이라는 청년인데 훌륭한 신앙인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잘 세워가며 하나님 나라 일에 아름답게 쓰임 받으리라 확신한다.참 신실한 좋은 청년들이었는데 그 때만해도 나는 정말 누구랑 데이트한다든지 개인적으로 만나는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농사 지으시며 연로하시기도하셔서  여력이 없으신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없이 내 스스로 힘으로 장학금 받으며 공부해야했기에 매일 짜여진 학교 스케줄만으로도 바빴다.많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내가 조금만 관심을 내비치면 정말 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아예 관심을 낼 수가 없었다.나는 시골에서 순수하게 잘 자랐고 더구나 서울와서 세상 때가 채 뭍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를 입었음이 감사하다(정말 스스로 자화자찬같지만 이 말을 나는 참 잘 표현하는 편이다)  시골 중학교가 기독교 재단이어서 성경 과목 수업도 있었고 매 주 월요일 첫 시간 전교생이 운동장에 자기 의자 들고 나와서 모여 예배 드리는 경건회 시간도 있어서 성경의 이론적인 지식은 있었지만 나의 주님으로 받아 들이진 못한 상태였다.감사하게도   언니의 전도와 동생들에 대한 언니의 헌신된 삶의 모습에 감동해서 언니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진정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그래서 “언니를 만나 주신 하나님 저도 만나 주세요”라며 간절히 만나 주시길 철야 예배 때 간구했고 내 마음의 간절함을 아시고 나를 찾아와 주신 구원의 하나님을 정말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는 놀라운 성령 체험을 했음이 감사하다. 예수님을 바로 인격적으로 만나는 복을 얻었다.그 덕분에  삶의 방향을 주님 우선으로 잘 정할 수 있었다.
정말 좀 특별하다 싶을 정도로 내 나이 또래에 비해 순진해서인지   누구랑 사귀다가 혹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있다해도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 할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 정말 아무나하고 쉽게 개인적인 교제를 시작하는 것이 많이 조심스러웠다.그래서 누가 만나자고 찾아 오고 편지하고 해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그 청년들이 싫어서라기보다 나는 그 당시엔 학업이 더 우선이었기에 이성을 만나는 관심이 서지 않았던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
내게도 장병들은 정말 모두가 참으로 고맙고 귀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기도하는 신앙인이었기에 진심으로 나라와 민족과 또 내가 섬기는 교회가 속한 부대원들을 위해 기도를 끊이지 않고 했다.내가 잘 난 사람도 아닌데 만나 주질 않아서 혹시라도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싶은 미안한 마음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때가 될 때 내 마음이 움직여서 관심을 갖을 사람도 앞으로 만나게 하실거라는 생각으로 미안하지만 관심을 낼 수 없었다.그 이후 정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마음 문이 열려서 직장 다니는 중에 선배님의 소개로 선배님의 교회 친구인 신실한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임을 감사드린다.
첫 아이 낳았을 때는 형부가 전곡에서 근무할 때였다.첫 아이 산바라지도 언니가 다 해 주었다.그래서 한 달 동안 전곡 언니네 집에 가서 몸조리를 했는데 그 때  장병들이 훈련하고 오갈 때 발 맞춰 걸으면서 불렀던 노래도 ‘살로암’이었던 것이 놀랍고 새롭고 감사하다.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가서 씻고 눈을 뜬 성경 이야기 속의 장소인 ‘실로암’이 복음송가 제목인데 장병들이 군가처럼 힘차게 즐겨 부르는 것은 언제 들어도  정말 감격이고 감사고 또 가슴 뭉클하다.
 

논산훈련소에서 5000여명이 함께 부르는 ‘실로암!’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함께 즐겁고 신이나서 나도 장병들 따라서 손을 움직여 머리도 집고 앞으로 뻗치기도하면서온몸으로 따라하며  즐거워했다.장병들의 실로암 찬양하는 모습이 계속 떠오르면서  가슴 가득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가 저절로 되었다.이 찬양 영상을 보면서 장하고 자랑스런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멋진 장병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게되었다.

이민와서는 ‘실로암’을 자주 부르질 않았다.교회서 찬양 인도하는 분들이 별로 안 불러서이기도하고 나는 복음송보다는 찬송가에 있는 찬양을 더 즐겨 부르는 편이었다.그런데 유튜브에서  많은 장병들이 함께 부르는 ‘실로암’을 통해 이제 다시 이 찬양을 장병들 위해 기도하며자주 불러야겠다.

막내도 아마 금방 다 외울 것 같다.엄마가 실로암을 종일 힘차게 부르니 아들도 흥얼거리면서 벌써 따라 부르고 있다.거의 40년이 다 되어 가는 청년 시절 함께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봉사했던 동생들과(셋 중에서 내가 언니였다)지금도 여전히 연락하며 셋이 믿음안에서 친하게 잘 지냄도 너무너무 감사하다.한 명은 그 때 비호부대교회 군종병이었던 분과 교제하다가 결혼해서 세 자녀를 키우며 지금 미국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의 사모님이고 한 동생은 지금 제주도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신실한 권사님이다. 나는 캐나다에 이민와서 아이 넷을 키우는 권사로  또 섬기고 있음이 감사하다.우리 셋모두 정말 순진했고 순수했고 또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충성하며 우리의 청년 시기를 헌신했다.남들처럼 놀러도 다니지 않았고 주일이면 늘 교회서 봉사하고 또 방학이나 휴가 때는 항상 여름 성경학교 봉사를 하고 강원도 맹방이라는 시골 교회에 가서 우리교회서 한 여름 성경학교를 그대로 또 하면서 섬겼다.우리 셋은 마음도 정말 잘 통하고 내게 늘 언니라고 부르는 착한 동생들이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청년 때의 순수한 섬김과  수고를 귀하게 여겨 주신 것 같다. 정말 삶 가운데 우리 셋 모두에게 아름답게 갚아 주시고 복으로 채워주시고 계심을 느끼며 감사드린다.

우리가 비호교회를 섬길 때  군 장병이었던   분들 중에  연락 닿는 분 소식을 목사님 사모님된 동생편에 종종 듣는다.

사모님통해서 이름만 들어도 기억나는 그 때 주일학교를 섬겼던 장병 중에 목사님들도 장로님들도 여럿 계시는 소식이 반갑고 감사했다.청년 때 인격적으로 주님 만나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더욱 체험하며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군복무 중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이 장병들에게 얼마나 귀한 삶의 선물이 될지를 내가 체험하고 알기에

논산 훈련소에서의 이 찬양 영상이 더욱 감동이고 감격으로 다가 온 것 같다.

장하고 자랑스런 우리나라 모든 군장병들을 사랑하고 축복하고 감사하며

진심으로 군 복무기간동안 인격적으로 주님을 깊이 만나서 어렵고 힘든 군생활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고

범사 승리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하며 그들의 장래 모든 일들이 주님 인도하심 안에서 선하고 아름답게

잘 펼쳐지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코로나가 속히 물러 나고

논산 훈련소에서 다시 5000명이 함께 모여 힘차게 ‘실로암!’을 부르며 훈련 기간의 힘든 과정을

거뜬히 잘 이겨 낼 수 있게   되어지길 간절히 기도드리며 모든 장병들에게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놓는다.

할렐루야!

2020,12,27,주일,논산 훈련소의 ‘실로암’찬양을 들으며 청년 때 내가 부르던 실로암의 추억과 함께 더욱 조국과 민족과 군 장병들 위해 기도할 사명자임을 깨닫게 됨을 감사합니다.

‘실로암’

1.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 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2.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당신 눈 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 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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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I-5000천명의 장병과 함께 실로암을 외치다!!-CTSI WORSHIP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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