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9일 주일 이른 새벽에
지난 토요일부터 막내가 감기가 들어서 잘 먹지 않고
없던 짜증도 부리면서 힘들어 하더니 어제부터 많이 좋아졌고
오늘은 누나랑 같이 학교 놀이도 하면서 신나게 재잘 거리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막내가 뛰어 다니고 말 소리가 울려 퍼지고 깔깔대고 즐거워하니
집 안이 다시 생기가 돌았다.
41개월이 된 막내는 요즘
“NO”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형들과 누나가 이 맘 때쯤”싫어”라고 했던 그 시기가 생각이 난다.
자기 주관이 벌써 생겨가기에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기특하지만
버릇없이 ‘노우’를
할 때면 ‘예스’를 하는 법도 가르치곤 한다.
고집도 생겨서 잘 안되면 막무가내로 울기도 한다.
한 번 아니라고 한 것을 운다고 번복하지 않기에
스스로 곧 그칠 줄 아는 법도 배워가기에 고맙다.
내가 가게 일도 몇시간씩 돌보고 이것저것 할 일들이 많아서 인지
막내인데도 오히려 형들과 누나 키울때에 비해
더 자립심이 강하게 그리고 더 엄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싶어
미안할 때도 있다.
아직도 엄마 쮸쮸를 만지고 자고
가끔씩 빈 젖을 빨기도 하는데
9월에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니
염려도 되지만
너무도 기다리고 가고 싶어하는 학교기에
잘 적응할 줄 믿고 기도하고 있다.
매 주 집을 한 번 방문하시는 아이들 피아노 선생님이
진경이가 우리말과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면서
똑똑한 아이라고 놀라와 하신다.
그 말씀이 감사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누구나 다 능력이 있는데
단지 활용을 잘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인 것 같다.
영어권에서 살다 보니 자연히 두 언어를 잘 구사하게 되는 것에 감사를 하게된다.
벌써부터 엄마 발음을 교정해 줄 정도로 많이 자랐다 싶어서 내 영어 선생님이
한 명 더 는 셈이다.
엄마가 우리 말을 신경써서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는 생각이다.
모국어를 잘 해야 외국어도 잘 할 수 있기에
그리고 내가 영어를 아이들 만큼 못하기에
우리 말을 제대로 가르쳐서
엄마와 마음이 통화는 대화를 늘 할 수 있게 하려니
우리 말을 더 신경써서 사용하게 돕게 된다.
동서네가 캐나다 영주권을 받았지만
그냥 한 3년 정도 유학온 셈으로 아이들과 동서만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서방님은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 남아 한 번씩 다녀 가는 것으로 거의 정한 것 같다.
“이민 오면 한국 생활은 다 내려 놓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각오를 단단히 해야된다”라고 한 우리 말과
가게를 하는 우리들의 생활이 많이 고생스럽게 느껴져서 본인들은 못하겠다 싶어서 인지
아니면 주변에서 이민가면 고생이라는 분들이 많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돈 주고 유학도 보내는데 아이들 학교를 무료로 나닐 수 있으니까
아이들 어릴 때 몇 년 공부만 시키고 갈 생각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와서 살다 보면 다시 돌아 가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아
아주 가족이 함께 와서 시작을 하면 좋겠다 싶은 내 마음이지만
본인들이 많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기에
최종적으로 잘 결정을 하길 기도하고 있다.
날씨도 좋고 한국서 다니기도 좋아서 벤쿠버를 생각한다기에
마음이 섭섭했다.
이곳은 너무 춥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긴 맞지만
서로 얼굴 보기도 어려운데 형제끼리 가능하면 가까이 살아야지
멀리 있으면 가까운 이웃만큼도 마음을 나누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
사실이기에
토론토로 오라고 권유를 했다.
이민 결정을 하기 전에야 우리가
“너무 좋으니 이민 와라 .이민 와라”소리를 하지 않은 것이
혹시라도 와서 고생스러우면 형이 좋다고 해서 왔는데 이게 뭐에요?라며
속상해 할 수도 있겠기에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만 했지만
이제 이민 와서 살 수 있는 영주권을 받은 상태기에
당연히 함께 가까이 지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지난 번에 다녀 갔을 때 동서랑 이야기 하다가 보니
정말 너무도 내가 말한 의도와
들은 동서 이해가 너무도 달라 오해가 되어 있는 것들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가까이 함께 지내면 생기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남도 가까이 함께 살면 정다와 지는데
형제야 더 말 할 것이 무엇이겠나싶다.
동서가 아이 둘만 데리고 와 있기에 물론 내가 마음 써야 될 부분들이 많겠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고
일단 가까이 있어야 나도 안심이 되고 서방님도 한국에 떨어져 있으면서 더 안심이 될 것 같다.
말이 별로 없고 표현이 별로 없는 동서라
답답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변덕스럽지 않고 은근하기에 참 좋다.
마음도 모습도 예쁜 우리 막내 동서다
내가 시집 왔을 때 대학생이었던 도련님이기에
장가 들어 아이가 둘이지만 나는 늘 친 동생 같고
동서 역시 친 동생 같은데
동서내외도 우리 부부에게 그런 형으로 늘 가깝게
다가오면 좋겠다싶다.
동서가 춥지도 않고 남편이 더 자주 왕래하기도 편하고
생활비도 더 저렴하고 등등의 이유가 있어
벤쿠버 쪽에 마음이 더 끌리는 것 같은 중에도
혹시 내가 그 사이 동서 마음에 섭섭함이나
불편함내지 부담스러움을 주지 않았나?
싶은 반성도 해 보게 된다.
“형님!형님이 계시는 토론토로 가고 싶어요”라고 했다면
내 기분이 훨씬 좋았겠다 싶다.
영 모르는 남이 와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 주고 했는데
정작 내 동생네를 못 챙겨주고 낯 선 곳에서 다른 사람 도움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최종 결정은 안 한 상태기에
잘 결정하길 기도하면서
동서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마음 편하게 잘 받아들이고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에선
마음을 많이 써 주어야겠다 싶다.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이
간혹 내 마음을 몰라 주어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진심은 언제나 또한 통하게 되기에
서방님과 동서를
너무도 사랑하고 늘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은
분명히 잘 알고 있음을 알기에 마음 편하게 갖고
낯 선 곳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안에 늘 감사하면서 건강하게 잘 적응하며
사랑스런 조카들도 공부에 큰 도움도 되고 장래 꿈을 이뤄가는데
좋은 디딤돌이 되는 기회되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다니러 오더라도 한꺼번에 만날 수 있게
동서네가 우리 가까이에 와서 함께 살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 간절하다.
아주버님도 부흥회에 다녀도 오시고 영적으로 회복되시니
육신의 약함을 또한 잘 이기시는 것 같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결혼 한 이후의 형제 정은 정말 들어온 아내 들의 몫인 것이다.
없던 정도 낼 수 있는 아내들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고
정이 있었던 형제들은 더욱더 결혼 이후에 정이 돈독해가야되고
그것은 바로 아내들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가까이 함께 살 수 있으면 그 사랑도 더 자주 표현할 기회가 되겠기에
형제들이 할 수 있으면 거리상으로도 서로 가까우면 더 좋겠다.
거리가 멀어도 물론 마음이 또 가장 중요하고 서로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신앙 안에 사니 이 또한 안심이고 감사하다.
내가 시댁 식구들에게 살뜰한 정을 늘 느낄 수 있게 되는 이유를 돌이켜보니
다 남편 덕분인 것 같다.
남편이 기뻐하고 좋아 할 일들을 나도 자꾸 더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고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주시고 잘 키워주신 부모님이 감사하고
또 함께 잘 성장해온 아주버님과 두 서방님들이 다 귀하기에 그런 것 같다.
남편을 사랑하고 또 주 안에서 존경하기에
시댁 식구들도 다 참으로 감사하고 귀한 분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자 들린 시금치도 싫다는 사람이 있다는데
나는 시자들린 사람들도 다 너무 좋다.
이것이 예수님 사랑 안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싶다.
나도 예수님 믿고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복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매일 감사하다.
살아갈 수록 더 좋은
신실한 남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이시간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형님네한테도 두 동서네한테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선
최대한 사랑과 섬김을 잘 해야겠다.
형제들의 정은 들어 온 아내들 몫이라는 생각을
내가 늘 생각 하고 있음이 감사하다
ㅇ
2021년 1월 6일 at 2:30 오전
모든 사람들이 나와같이 생각하지 않죠 표현방식도 다르고요
넓은 마음을 가지시고 누가 어떤 선택을 하던 응원해주는 마음을 가지세요
모든 관계는 너무 가깝지 않게 너무 멀지않게 적정선을 지키며 살아가는것이 지혜입니다 알게모르게 주위사람들에게 부담을 많이 줄수도 있기에 조심하셔야할듯 가만히 계시는게 돕는일인 경우들이 있습니다
김 수남
2021년 1월 12일 at 5:05 오전
네,말씀 감사합니다,다녀 가신 줄을 지금 알았습니다 잘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