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7일 금요일 비 내리는 가을 정취 안에서
12시 30분에 오후 반인 막내를 유치원에 보낼 때 운동장에서
점심 시간이어서 친구들과 뛰어 노는 딸래미를 만나는 반가움이 있어서 좋다.
주 초에 막내가 아프고 그 이어 나랑 딸이 함께 토하는 증상이 있었지만 금방 나았는데
어제는 둘째가 토하지는 않았지만 많이 힘이 들어 했는데 잘 지나갔기에
남편과 큰 아이는 제발 이 감기 증상이 안 나타나길 기도하고 있다.
환절기에 겪는 다 아는 병이기에 안심을 하면서도
더욱 가족 건강 관리에 내가 신경을 써야겠다싶다.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다. 꽤 쌀쌀하고 기온도 많이 내려 갔다.
이곳 사람들이 인디언 섬머라고 하는 늦더위가 계속 이어졌는데
오늘은
나도 드디어 긴 소매 옷을 꺼내 입었다.
오늘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추수감사절 휴가여서
벌써부터 손님들의 발걸음이 더 바삐 움직여보인다.
이곳은 매 년 10월 둘째 주 월요일이 추수감사절이다.
딸아이 반 친구인 에마네는 할머니댁인 오타와에 간다고
오늘 학교에 못 온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고한다.
에마 엄마처럼 열성인 학부모가 아이 셋을 다 결석시키고까지
그리고 오타와는 수업 마치고 가도 4-5시간이면 충분히 갈
그리 먼 거리는 아닌 곳인데도
빨리 가족 곁에 가고 싶어 하는 그런 명절인 것이다.
우리의 추석을 연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우리도 이번 주일엔 각 구역별로 터키 한 마리씩 굽고 감자 10파운드씩을 쪄서
가져가기로했다.예배 후에 온 성도들이 함께 터키와 메쉬드포테이토와 셀러드를 먹으며
올 한해 동안도 풍성하게 채워주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하며 나누게된다.
한국에 살 때는 한 번도 칠면조 고기를 먹어보질 않았지만
이곳에 와선 적어도 일 년에 세차례는 칠면조 고기를 먹는다.
부활절.추수감사절.성탄절엔
우리도 함께 이곳 풍습처럼 터기를 먹으면서
감사를 드리게된다.
아침 일찍 아버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디지탈 폰에 입금할 겨를이 없어서 한 일주일 정도 전화를 못 드렸더니
많이도 궁금하셨다고 하신다.
전화 카드를 이용하면 일일이 번호 눌리는 절차가 복잡해서
우리는 디지탈 폰으로 한국에 사는 것 처럼 지역 번호만 누르고 바로 통화를 할 수 있는 전화를
매 번 돈을 입력해 둔 만큼 쓰고 다시 입력을 하기에
거의 매일 통화를 하는 편인데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데다가
벤쿠버로 간 동서네도 연락이 없다면서
많이 궁금해 하셨다.
임시 연락처에 연락을 해서 핸드폰 번호를 알아서
집도 구했고 차도 샀다는 안부까지는 잘 들었는데
집 전화 번호가 나오는 대로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어서 많이 궁금하다.
도련님이 한국에서 가져온 전화기가 해외에서도 된다고 했는데
그 번호 연결도 안되고
동서와 통화 했던 핸드폰도 임시 번호였다는 메세지만 나오고 연결이 안되니
나도 달리 통화를 열흘 정도 못해 보았기에
아버님께 안부를 자세히 전해 드릴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님은 캐나다에 두 아들이 사니까
서울과 부산 정도로 생각하시곤한다.
같은 나라여도 동쪽의 토론토와 서쪽의 벤쿠버는 비행기로도 6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라
금방금방 만나기가 어려운데 아버님은 우리 곁에 있다고 안심이 그나마 되셔하신다.
엊저녁에 동서 이 메일로 편지를 했으니까 편지를 보면 연락을 주려니 생각하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에 위안을 삼는다.
동생이니까 남편이나 나 역시 모든 것들을 다 잘 이해한다.
한 2년 정도 공부하고 간다고 할 때만해도
토론토로 당연히 올 줄 알았는데
벤쿠버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도 한국사람이 덜 있는 곳을 찾아서 갔다.
잠시 동서가 아이들이랑 공부하다 가는데 한국 사람들 많은 곳이면
영어 공부하는데 방해된다 싶었던 것 같다.
도련님이 한국서 일을 하면서 가끔씩 방문하는 말그대로의 기러기 생활을 해야되기에
한국서 드나들기가 가까운 벤쿠버가 토론토보다 좋고
춥지 않은 날씨와 덜드는 생활비 등이
동서가 토론토보다 벤쿠버를 정하게 된 이유인 것 같다.
형 가까이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것에
처음 섭섭하던 마음이 이런 이유들을 들으면서
사실 많이 이해를 하게되었다.
우리 동네는 방 한 칸 비용만도 한 달에 800불 이상인데
그곳은 1층 집 전체를 쓰는데도 750불 밖에 안한다니
동서와 도련님이 많이 생각하고 결정한 사항에 이해를 하고
모든 것들을 너무도 잘 알아서 잘 진행하기에 안심을 하고있다.
남편은 아이 둘 아빠인 도련님을 아직도 ‘막내’라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염려를 많이도한다.
그러면서도 주일 예배도 잘 드렸다.집도 구했다.차도 샀다.등등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도 흐뭇해했다.
정말 이제는 본인이 염려할 어린 막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듯했다.
일주일이 얼마나 빠른지 모르겠다.
그저께는 형님 생일이었는데 통화도 못했다.
예년에 늘 전화하던 동서가 전화가 없어서 형님은 아주버님을 잃은 허전함 속에
또 얼마나 섭섭한 마음이 더 들었을까 싶어 전화를 드리려고하니
벌써 밤이 깊어서 날을 미루다보니 아직 통화를 못했다.
대신 아버님께 안부를 부탁드리고
시간을 잘 맞추어서 오늘 저녁엔 꼭 전화를 드려야겠다.
내가 살기 바쁘니까 정말 마음을 열고 사랑을 나누고 싶은 가까운 사람들과도
대화하기가 쉽지가 않다.
다들 내 마음을 이해하시려니 싶지만
동서네가 이렇게 소식을 안 주니 내가 많이 궁금하고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경우를 보니
그래도 바쁜 중에도
마음을 내면 통화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나의 마음 씀으로 인해 더 반갑고 기뻐할 사람들에게
자주 연락하는 일을 게을리 말아야겠다싶다.
나는 이젠 두 세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실력엔 전문가가 많이 되었다.
지금도 내장된 강의를 새로 꺼내 들으면서
글을 쓰면서
또 오는 손님을 다 응대해가면서 가게 카운터에서 움직이고 있다.
어떤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한꺼번에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찾게 되는 습관이 붙어간다.
바쁘다보니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는 것 같다.
추수감사절을 맞으면서
모든 것이 다 감사함을 새삼 돌이켜본다.
친정은 물론이고
시댁엔
아주버님이 천국에 가신 큰 아픔은 있었지만
부모님으로 부터 막내네 서영이에 이르기까지
올 해도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일일이 다 나열하지 않더라도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이 한가지 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다.
막내를 오후 3시 15분에 픽업해야되기에
3시 10분인 지금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제게 있는 모든 것으로 만족함을 주시고
오늘 이 현재의 삶에서
기뻐하게 하시는
이 큰 복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