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연주회를 다녀와서

올린시간 2 005-09-29 19:44:54

큰 음악회가 열리는
예술의 전당은 일산에서 교통 왕복 거리만 4시간이 걸리고
세종문화회관은 두시간이 소요됩니다.
연주 시간까지 합치면 예술의 전당을 다녀 오려면 하루 낮시간을 거의 다 소모해야 하고
세종문화회관은 5~6시간
돌체는 집에서 10분거리에 있으니 연주시간을 합해서 3시간이면 남을 정도로 여유가 있습니다.
항상 시간을 얻지 못해 동동거리는 형편이라,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예술의 전당은 일년에 한번정도, 세종문화회관은 두세번 정도 큰 맘을 먹어야 가게 됩니다.

어제는 드물게 가게되는 세종문화회관을
정경화와 키로프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바이올리스트 정경화님은 내가 젊을 때 부터 좋아하던 연주자입니다.
그녀의 연주가 있다고 하여 설레임으로 그 연주회를 기다렸었습니다.
9월 23일 연주곡은
BRUCH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 g단조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고
29일 연주는
브람스의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입니다

저는 당연히 29일자를 선택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 비창 교향곡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도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멜델스존 베에토벤과 더불어
3대 협주곡으로 불리워지고 누구에게나 존중되는 곡이라
귀에 익숙하기도 하고 브람스의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곡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경화님이 손에 마비가 와서 23일 연주회가 시작전에 취소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일부관객은 환불을 받기도 하고 29일 연주회로 관객이 합쳐졌나봅니다.
오전에 공연기획사에 전화를 걸어서 정상적으로 연주가 있는가 문의를 했더니
다행이 예정대로 진행이 될거라고 하는군요.
그러나 도착이 되어보니 프로그램이 연주자의 사정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기분이 좀 나빠집니다.
난 당연히 브람스가 연주될 줄 알고 티켓을 구매했는데,BRUCH의 연주라니 속이 상했습니다.
서둘러 간탓에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기에 자판기커피를 한잔 빼 들고
창가에 앉아서 어두워오는 세종로를 내려다 보면서 기분을 가라 앉혔습니다.
차들과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거리에 차분한 저녁이 내려 앉고 있었습니다.

평소엔 입지 않는 크림색 투피스에 선물받은 스카프까지 두르고
내딴엔 성장을 하고 갑니다.
음악회를 왜 혼자 가느냐고 물으신다면 그 기분을 잘 몰라서 그러시는 겁니다.
대중음악이나 연극 같은것은 누구라도 함께 관람하는 것이 좋지만
클레식은 혼자 즐기는 것이 몰두 하기에 아주 좋고 행복합니다.
옆에서 음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리를 불편해 하면서
자세를 자주 고쳐앉고 목안이 간지러운 듯 잔기침을 하던지
더하면 졸기라도 하는 남편이랑 가는 것은 서로가 고역입니다.
그래도 전에는 혼자 가는것 보다 함께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언제 부턴가 서로가 불편한것은 강요하지 않기로 묵계를 했습니다.
남편의 모임에 가면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인 나도 아주 불편했거든요.

어제도 내 바로앞에 앉은 남자분이 열심히 주무시더군요.
부인이 옆구리를 찔러서 깨워 놓으면 겨우 정신을 차리는 듯 하다가
또 혼수상태에^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음악이 자장가로 들리나 봅니다.
특급호텔에서 두밤은 잘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내고 왜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잘까요? ^^
나중엔 부인이 포기를 하고 신경을 쓰지 않더군요.
그러니 등받이 왼쪽으로 고개를 떨구며 주무시기에 혼자 웃음이 났습니다.
울앤도 나에게
"가을 저녁의 브람스라…
함께 가서 옆에서 졸아주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아쉽네" 이랬거든요.

2)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그렇지만 그는 "연주가 끝날 때마다 죽음을 생각한다"고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말하더군요.
매 연주마다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아왔지만 정작 자신은 늘 마음에 안 들어
연주 후 “이대로 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연주를 하려는 연주자의 노력과 욕심이겠지요.
그런 노력이 있어서 그분의 지금이 있는 것이겠구요.
그런분이 이번에 공연 하나는 취소가 되고 하루는 예정된 프로그램을 하지 않았습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가을에 들으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환상적입니다.
그것도 대가의 연주를 연주홀에서 듣는 다는 것은 흥분될 정도로 기대가 되는 일 입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지요?
세종문화회관 입구에서 바뀐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 기운이 쫙 빠지는 듯 했습니다.
안내하는 분에게 왜 브람스곡이 아니고 브르흐 곡인가 물었더니
손이 아직 자유롭지 못해서 브람스곡을 새로 연습하지 못했고
지난번 연습한 브르흐를 한다고 합니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표를 사서 왔으니 들려주는 대로 들을 수 밖에요.

오랜지색 드레스를 입고 바이올린을 들고 박수를 받으며 나오는 모습은 활기차 보였습니다.
이분도 48년생이니까 우리나이로 58세 입니다.
이런분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이 때문일까?
손이 편치 않는 듯 자주 손을 주무르고 손가락을 폇다 오므리고 손을 터는 등
힘들어 하는것 같았습니다.
연주 사이사이에 그러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한주일에 한번 이상 돌체에 가서 음악을 들으면
연주자가 유명하고 신인이고를 떠나 라이브라는 자체에 만족을 하기 때문에
"큰 공연장을 갈 필요가 없다."며 음악에 그다지 아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듣는 귀가 많이 교만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도 정경화는 세계적인 연주자라는 평이 허명은 아닌것을 알겠더군요.
그녀 특유의 목까지 내려오는 긴 퍼머머리에 긴 오랜지색 드레스
팔팔한 성미를 드러내는 제스쳐 신들린 듯 한 연주!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찬 관객을 음악 속으로 빈틈없이 몰아 갑니다.
상화님 말씀처럼 제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나치게 기대를 해서 그렇지
BRUCH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 g단조 도 대단한 곡입니다.
런던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정경화가 협연한 테입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듣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대가는 다르더군요.
바이올린 선율 하나 하나에 깊은 맛이있고
깊이 침잠했다가 다시 날아 오르는 듯 하고
어둠에서 밝음으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이동과 연주의 폭이 아주 자유로웠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5~6번의 커튼콜에 환한 미소로 답례를 하는 모습은
여전히 싱싱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정경화를 길러낸 이원숙 여사가 참 대단한 분입니다.
정명훈에 대한 기사를 자료실에 상화님이 올려 주셨는데
첼리스트 정명화와 바이올린 정경화 피아노 정명훈
이세분이 정트리오로 연주를 해도 정말 대단합니다.
많은 자녀를 이렇게 훌륭하게 길러낸 이원숙여사에 대해 깊은 존경심이 생깁니다.

연주자가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연습을 얼마나 혹독하게 했으면
손에 이상이 왔겠습니까?
손이 잘 치료되고 건강도 유지되어서
앞으로 더욱 원숙한 연주를 오랫동안 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정경화가 육십대 후반에도 세종문화회관에 서고
나도 육십대가 되어 그곳에서 조우를 하면 또 다른 느낌이 들지 않겠습니까?
70대 80대…..연주자와 관객으로 만남이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연주자의 손!
빨리 회복 되기를 기원합니다.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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