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큰아들

2004-09-09 21:34:34

대구에 사시는 오라버님이
서울 세미나에 참석하러 오셨다가 늦은밤 어머니를 뵈러 집에 왔습니다.
막내 남동생이 오라버님이 계신 강남에 가서 모시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집에 도착이 되어서
그때부터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모두 잠을 설치게 되었습니다.
초저녁 잠이 많으신 어머니는 보통 9시 뉴스 시작전에 주무시는데
큰아들이 온다니 잠이 다 뭡니까?
뭘 먹일까 궁리 하시느라 분주하십니다.
늦은 밤에 왔다가 새벽에 갈사람인데 뭘 먹겠느냐고 해도
"모처럼 어미 찾아 왔는데 어떻게 그냥 보내냐"며 안절부절을 못하십니다.

오라버니는
어머니의 두부조림을 좋아하셔서
새언니가 두부조림을 해 주면 "어머니가 해 주시는 맛이 안난다"고 하다가
"그럼 어머니께 가서 먹으라"고 구박을 받는 답니다.
우리 새언니는 요리 솜씨가 뛰어나서 자신이 한 요리에 자부심이 대단한데
시어머니랑 비교가 되는 것을 몹시 자존심 상해 하십니다.
기회에 한가지 알려드리면 남편분들 식탁에서 아내가 해준 음식을 먹으려고 앉아서는
어머니 솜씨가 어쩌고 그러다가는 우리 오라버니뿐 아니라
누구라도 구박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사실 강원도 비탈에^^ 살던 사람들은 음식솜씨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감자나 옥수수 같은 것을 주식으로 삼고
콩으로 만든 두부음식 산나물 무침…..그런 정도 거든요.
그러나 어머니께서 오라버니 어릴때 만들어 주던 두부조림이 입에 익숙하니
맛있을 뿐인데 우리오라버니 눈치없이 새언니 앞에서 그런 말하다가
구박을 받으시는겁니다.
어머니께서는 맏아들이 좋아하는 두부조림에 된장국에 나물무침을 해 놓고
아들 저녁상을 차려 주실려고 하셨지만, 오라버니는
저녁식사는 초저녁에 이미 먹었으니 내일 아침으로 먹겠다고 겨우 사양을 해서
어머니를 달래고 냉수만 한컵 드시더군요.

우리 어머니만 맏아들을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도 우리오라버니를 무척 좋아합니다.
오라버니를 만나면 잠농사도 뒤로 미룰 수 있습니다. ^^
수다를 떨다가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아침을 먹자고 이른 아침에 어머니께서 깨웁니다.
아침 9시 까지는 세미나 장소에 도착해야 하니까
일찍 아침을 먹고 일산을 출발해야 합니다만
잠 못 잔 이른 아침에 밥 먹기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착한 우리오라버니은 어머니 좋으시라고 맛있게 아침을 먹습니다.
된장찌게와 두부조림은 어머니처럼 맛있게 하는 사람이 없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나물도 이렇게 무쳐야 맛있는데 요즘 식당에 가면
양념을 너무 많이 해서 맛이 없다고도 합니다.
우리어머닌 아들이 밥먹는 식탁에 마주 앉아 흐믓해 하십니다.

그렇게 이뻐하는 막내 아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강남에서 일산까지 모시고 오고 모시고 갈 사람이 막내 아들인데
큰 아들에게만 관심을 집중하십니다.
어머니께서 식사후에 막내에게 "커피 타 줄께 마셔라!" 그럽니다.
오라버니는 원래 커피를 안마시니까 물어 보지도 않으시고
막내도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아시는데
"커피를 마시겠냐?" 의향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마셔라!" 명령하듯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머니 막내는 커피 안좋아하는데요. 저혼자 마실께요." 했더니
막내가 웃으며 "아니요 누님 제가 커피 안마시면 어머니께서 불안해서 안되니까
저도 커피 주세요."이럽니다.
"너가 커피 안마시는데 어머니가 왜 불안하냐?" 눈치 없는 내가 물었더니
"누님! 큰형님이 계시니까 저는 지금 마소꾼으로 어머니께서 보시는 겁니다.
형님 모시고 가는데 잠 못자고 운전하면 졸다가 형님 다치게 할까봐
커피를 먹여 보내려는 것이지요."
ㅎㅎㅎㅎㅎ
온식구가 크게 폭소가 터졌습니다.
어머니도 내심 그런 생각이 있으셨는지 조금 무안해 하십니다.

자주 보는
막내 아들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계실 정도로 이뻐 하시면서도
큰아들 사랑에는 미칠바가 아니였습니다.
그런 어머니 심정을 아는 오라버니는 어머니와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인처럼 전화 데이트를 하십니다.
오라버니가 지금은 무슨일로 어디에 있고 누구랑 밥을 먹었고 이러며 시시콜콜한 보고를
하시기에 뭣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시나 했더니
멀리 있어도 아들이 어머니 가까이 있는듯 어머니 관리(?)하에 있는듯
그런 느낌을 드리나 봅니다.
어머니께서도 그런 전화 받으면
"날 더운데 너무 찬음식 먹지 마라"
"대구는 비가 온다는데 운전 조심해라."
"바람부는데 일찍 집에 들어가라…"이런 말씀을 하시는것을 보며
쉰이 넘어도 아들은 어머니에게 아기구나..그런생각을 합니다.

자신을 마소꾼이라 지칭 하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어머니 마음 편하라고 마시고
형님을 깍듯이 모시는 막내도 의젓해 보였습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들어왔지만
어머니는 차 타는 곳 까지 따라가셔서 차가 멀리 사라질때 까지
배웅을 하고 들어 오셔서도 눈물을 글썽이시는 것을 보면
어머니께 맏아들은 대단한 의미인것을 느꼈습니다.
하긴 저도 우리도치들에게 그러기는 합니다만…..

2 Comments

  1. 한들가든

    2006-03-01 at 07:51

    ㅎㅎㅎㅎ~!

    공감합니다,
    제가 맏자식 이여서 ,ㅡ.ㅡ! ㅋㅋ

       

  2. 고운정

    2006-03-01 at 12:24

    남매분들이 어머님께 극진하시군요,
    아름다운 정경입니다,
    이다음 자녀들에게 효도받으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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