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쥐 생각하듯

2005-05-19

오월도 중순이 지나가는군요.
일년 중 오월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오늘입니다.
햇살은 맑게 퍼지고 기온은 맞춤하고 촉촉한것이 산뜻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점심때가 되어
어머니께서 상추쌈 해서 밥먹자고 오라고 전화를 하셨기에 집에 갔습니다.
집을 들어서니 거실이 아니라 무슨 어린이집 같습니다.
4층 춤방에서 춤추는 엄마를 따라온 아기 3명에다가
3세 정도된 외국인 여자아이도 있습니다.
그아이를 돌보는 대학생인 듯 한 보모도 있구요.
장남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에, 보채는 아이에, 과자를 먹는 아이에 거실이 억망으로 널려 있습니다.
낯선 외국인 아기가 보여서 누군가 물었더니
미국에서 벨리 춤선생 아줌마가 왔는데 아기를 대리고 왔다는군요.
수업시간엔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영어를 하는
여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구요.

은근히 부아가 납니다.
여기가 유아원이야? 춤방이야?
춤방을 하면 했지 어머니까지 이렇게 고생을 시키면 어쩌자는 거야?
춤바람 동생을 만나면 야단 쳐야지 속으로 벼르는데
수업이 끝났는지 아이엄마들이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아이들을 한명씩 대리고 갑니다.
외국인 아기도 빠이빠이를 하며 방글방글 웃으며 보모와 함께 가는군요.

비로소 조용해 졌기에
"어머니 저애들이 매일 와요?" 라고 여쭈었습니다.
평소엔 내가 점심 먹으러 집에 들어가기 전에 수업이 끝나서 가니까
집안이 이렇게 복닥 거리는줄 몰랐거든요.
"오늘은 미국선생이 와서 좀 많이 온거고 수업도 길어 졌나보다.
아기들 하고 한시간 정도 놀아주면 나도 좋고 애들도 좋아한다.
미국애기는 제 보모는 마다하고 나를 잘 따라서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
"어머니 힘드시잖아요? 아래층에서 수업을 하면 아래충에서 대리고 놀지
왜 5층까지 와서 시끄럽게 한데요?"
"제엄마들 춤 추는데 애들이 시끄럽게 하면 집중을 못한다더라
잠깐씩 봐 주면 애들도 좋아하고 애엄마들도 편하게 수업받고 좋잖니?"
"춤추는게 뭔 벼슬이래요? 춤추는 일에 집중을 하면 뭐하고 안하면 뭐해요?
애들 시끄럽고 힘들어서 못 봐준다고 하세요."
"그럴일이 뭐 있냐? 할 수만 있으면 도와줘야지 젊은 사람들이 배울려고 애를 쓰는데…"
"춤배워서 뭘 할건데요. 재미로 운동삼아 하면서 애들은 왜 맏기고 그런데요?"
" 큰애야 뭘 그러냐? 심심하지 않고 좋지, 미국아기도 제 보모는 영어로 뭐라 그래도
들은척 안하는데 난 한국말로 뭐라고 해도 알아듣고 날 더 좋아하는구나.
내가 훈이에미 한테 애들 봐 준다고 했다. 그러니 뭐라하지 말아라."
"어머니는 고아원을 하셨으면 딱이겠어요. "
"그래 난 아기들이 좋다! 그 꼬물거리며 노는것이 얼마나 이쁘냐?"
어머니가 그러시는데야 뭐라고 하겠습니까?

어머니랑 마주앉아 먹는 상추는
아삭거릴 정도로 싱싱하고 고소하고 상큼하고 맛이있습니다.
어머니께서 뜯어온 상추쌈을 싸서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났더니
훈이엄마 야단 칠려던 생각은 다 잊어 버렸습니다.
"어머니 정말 맛있네요." "진짜 맛있어요." 를 수다스럽게 연발하며
상추쌈을 볼이 미어지게 싸서 입에 넣는 나를 어머니가 걱정스레 바라보십니다.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어머니가 심은 우리 상추가 진짜 맛있네요. ㅎㅎㅎ"

밥을 먹고 골목길을 돌아 나가는데
동내 할머니들이 길가에 의자를 내 놓고 무료히 앉아 계십니다.
내가 이곳에 점빵 자리를 잡을 때 그러니까 근 1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몇분 할머니들은 저렇게 이웃해 변함없이 시간을 죽이고 계셨습니다.
"점심 먹고 가우?"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계시니까 이웃의 행동반경을 외우고 계십니다.
" 네! 점심 드셨어요?" 인사를 건넸더니
"먹었나 안먹었나 잘 모르겠네…. 배고프면 먹어야지" 그러시며 웃습니다.
배고프면 식사하고 안 고프면 말고 몸이 무거워서 누우면 낮잠자고
밤에는 잠이 안와서 괴롭고 어딘지 모르게 온몸이 고달프고
시간은 안가고 할 일은 없고….
이런 모습으로 10년을 견디신 어른들입니다.

그런분에 비하면 아이들과 일거리에 묻혀서 사는 우리 어머니가
나은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입빠른 춤바람동생이 "엄마! 엄마한테는 막내딸이 효녀지? 엄마 심심할까봐 훈이 준이 맞겨주지, 훈이 준이 없을 땐 학원 아기들 맞겨주지…덕택에 엄마는 아플 시간도 없잖아요? 호호호"이럽니다.
"그래 막내딸 덕에 내가 사는 갑다." 그러시는 우리어머니….
저가 필요에 의해 아이를 맏기면서도 효녀라고 우기는 막내딸을 그냥 귀여운듯 바라 보십니다.
이럴때 고양이 쥐생각 한다고 하나요? ^^
(이거 울앤이 쓰는 말인데…ㅎㅎㅎ)
나도 나중에 우리도치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기꺼이 길러 줄 수 있을까?
난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점점 번답한것이 싫고 조용히 있고 싶고 움직이는 것이 싫어지는데
아이 봐 달라고 갔다 맞기면 안 봐 줄 수도 없고 어떻하나 싶네요.
무료한 노년이 되지 않으려면 머시님 처럼 몸을 많이 움직이고
일을 만들어서라도 해야하고 우선은 건강해야 하는데…

게으른 난
우리 어머니만큼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순이

1 Comment

  1. 스크래퍼

    2006-06-15 at 09:07

    어머님의 젊고 건강하신 마음이 부럽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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