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살림살이 (母 입원일지 10)

사람이 하루 사는데 몇 가지 도구가 필요할까요?
산에 가는 분도 최소한의 생존 도구인 물컵과 수저 앵벌이용 그릇이 ^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어제 어머니 병실을 둘러보니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뭣이 많습니다.


병실에

기본적인 환자용 침대와 침구 이불장 옷장 냉장고 소파 텔레비전이 있지만
그 외에 것들은 집에서 하나씩 날라 간물건들이 구석구석 쌓여있습니다.

입원환자에게는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까
우선 휴대용 가스버너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곰국이라도 덥혀 드릴 때 필요하거든요.
버너가 있으니 냄비가 있어야 하고, 냄비에서 국을 풀 국자가 필요하고
국을 담을 그릇도 있어야하고,

먹었으면 씻어야하니까 주방용 세제와 그릇을닦을 수세미와 행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는 냉장고대로반찬과 음료수 과일 등으로 가득 합니다.

어머니께서

아무리 중한 수술을 받고 입원한 환자라고는 하지만 씻어야하고 머리도 감아야하니까
샴푸에 린스에 비누 치약 칫솔 등도 갖춰서 목욕탕에 두어야 하고
머리도 빗어야 하니까 머리빗도 있어야하고 거울도 하나 있어야 하고
티슈 곽이랑 스킨과 로션도필요합니다.

자는 일도 중요하지요?
집에서 날라 간 이불이 세 개,

거기다 베개 있어야지요,

요즘엔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서 춥기에 전기장판도 갖다놓고 깔고 잡니다.

오라버니가 장만해 놓은 돗자리 두개도 구석에 포개져 있습니다.
그러니 잠자리용 물건의 부피가 가장 클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테이프를 들으시느라고 카셋트 라디오도 있고
탁자엔 책과 잡지 신문이 가득합니다.

그 외에도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동생들이 가져다 놓은 렌즈 세척액도 있고
꽃바구니와 꽃병들도 있다 보니 조그만 병실이 복잡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과일을 깎아 먹을 칼이 필요해서 과도도 있지만
꽃을 정리할 때 쓰는 가위까지도 있어야합니다.
이번 입원 기간 중에 쓰인 물건 중 가장 작은 손톱깎이가 사고는 가장 크게 저질렀습니다.
수술부위에 의사선생님이 드레싱을 한 후에 거즈로 덮어서 반창고를 붙여놓고 가셨는데
어머니께서 수술 후 일주일이 되자 실밥이 거즈위로 뚫고 올라오고 몹시 조이고 아프시니까
붕대를 풀고 상처를 꿰맨 실밥을 손톱깎이로 몽땅 잘라버리신 겁니다
상처를 봉합할 때 매듭을 지은 후에 실밥을 1cm쯤 남겨두고 자르는 것은
실밥을 제거할 때 집기 좋으라고 해 놓은 건데
매듭 있는 곳 까지 바짝 잘라버리셨으니 실밥이 풀릴까 봐도 걱정이고 상처가 벌어질 것도 같고
여러 가지 이유로 선생님께서 뭐락하실것같아서 마음을 졸였습니다.

실밥이 찌르고 걸리적 거려서 심심한 김에 자르기는 하셨지만 어머니도
선생님께 야단맞을 것 같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기에 내가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사고를 치셨는데 어쩌지요?"
"무슨 사고를요?"
"수술부위를 꿰매놓은 실밥을 다 잘랐습니다."
"어머니께서 심심하셨나 봐요? 어디 함 보십시다! 이래서 어린이와 노인은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니까요. ㅎㅎㅎ
실밥이 안 보이면 나중에 스티치아웃 할 때 힘들어요."
"상처에 감염이나 실밥이 풀릴 염려는 없을까요? "
"지금으로선 괜찮아 보이는데 소독해 놓고 두고 보지요."
"지난번 떨어지셨을 때처럼 철사로 꿰매시지 않나요?"
"두고볼께요! 그냥 아물 것 같습니다만…..스티치아웃 할 일이 좀 고민입니다."
"그건 선생님이 하실 고민이지 어머니는 아무 상관이 없네요? ^^ 불편해서 아무도 없을 때 손톱깎이로 실밥을 자르긴 하셨지만 또 철사로 꿰맨다고 하실까봐 걱정하고 계셨거든요. "
"고민은 제가 할 태니까 어머니는 걱정하시지 말고 편히 계세요. ㅎㅎㅎ" 이러시는군요.

선생님이 착하니 그렇지 정말 야단맞을 일이지요?
"어린이와 어른들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고 노인 환자의 심심함을 이해하시는

우리선생님이 정말 좋은 선생님입니다.

다른 분 같았으면 야단 억수로 맞았을 일인데요.

사람이 하루 동안 숨 쉬고 살면서 필요한 것이 참 많기도 하지요?
집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는 잘 몰랐는데

어머니 입원실에서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니

사소한 소품에서부터 침구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유지하고 살아가는 일이쉬운게 아닙니다.

참으로 복잡한 살림살이입니다.
복잡 미묘하고 난이도가 높은사람살이입니다. ^^

순이

1 Comment

  1. Beacon

    2006-10-22 at 13:37

    저도 근 한 달을 넘게 입원해 봤던 적도 있습니다만,,
    그 때도 물건들이 그리 많았던가 싶네요,,ㅎㅎ

    거나저나 그 선생님,, 정말로 참 좋으신 분 같습니다.. 요즘은 다들 그러는가?
    그렇진 않겠지요? 그 선생님이 유난히 좋으신 분 맞을거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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