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가들이 길을 낸 ‘클래식의 숲’
[사람과 공간]애호가들이 길을 낸 ‘클래식의 숲’
# 음악감상실 ‘돌체’ 대표 김종수씨

경기 일산 ‘돌체’ 의 김종수 대표는 8년 동안 500회에 달하는 음악회를 이끌었다. 40평 남짓한 자그마한 음악감상실에서 연주자들의 숨소리와 표정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문을 열면 베토벤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부릅뜬 두 눈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커다란 스피커 2조가 눈에 띈다.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알텍604와 늘씬한 거인 인피니티 IRS베타 스피커다. 경기 일산 장항동에 자리한 음악감상실 ‘돌체’. 40평 남짓한 이 클래식 공간에서 99년부터 시작한 ‘돌체 음악회’가 어느덧 500회를 맞았다.

“혼자서 음악 들으려고 이 공간을 마련했죠. 98년이었어요. 처음엔 오로지 저만을 위한 ‘도피처’였는데… 그때 IMF가 막 시작됐잖아요. 직장에서 명퇴한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죠. 그러다가 소문이 조금씩 나면서 아예 일반에게 개방하게 됐어요. 돌체 음악회는 99년 11월 시작했죠.”

‘돌체’라는 숲에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다보니 자연스럽게 ‘길’이 생겼다. 돌체의 대표 김종수씨(51)는 음악애호가였던 부친 덕택에 중·고교 시절부터 클래식에 흠뻑 빠졌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는 부친의 손에 이끌려 무교동 ‘르네상스’를 들락거렸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명동의 ‘돌체’를 즐겨 찾았다. 5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던 클래식 음악감상실. 무교동 르네상스에는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많았고, 명동 돌체에는 좀더 젊은 층이 모여들었다. 음악을 듣는 취향도 달랐다. 명동쪽이 좀더 밝고 화사했다. 당시의 돌체는 정통 클래식뿐 아니라 세미 클래식까지 틀어줬다.

하지만 김대표가 98년 문을 연 일산의 돌체는 오로지 정통 클래식만 추구한다. 게다가 지자체나 기업체의 도움도 전혀 받지 않고 클래식 콘서트를 7년간이나 진행해오는 ‘믿기지 않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애호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온, 풀뿌리 문화의 본보기다.

“음반만 감상하다가 누군가가 라이브도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좋은 아이디어였죠. 그런데 초창기에는 연주자 수급이 정말 어려웠어요. 아시다시피 정식 공연장도 아니고, 출연료를 넉넉히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죠.”

김대표는 일단 음악대학 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흔쾌히 돌체를 찾아와 연주해줬던 ‘산타클로스’가 현재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용배씨였다. 이후 이경숙 연세대 음대 학장,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양고운, 첼리스트 홍성은 등 굵직한 연주자들이 속속 돌체를 찾았다. 돌체에 마음의 꽃다발을 전해준 것은 연주자들뿐만 아니었다. 클래식에 해박하기로 소문난 만화가 신동헌씨는 음악회 해설을 자청했고, 돌체를 드나들던 단골들은 오디오와 음반을 아낌없이 기증하기도 했다. 김대표는 “기증받은 LP가 1,000장쯤 된다”고 귀띔했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전문가 수준의 ‘귀’를 가진 분들이 적지 않아요. 그게 소문이 나니까 연주자들이 꽤 긴장하더군요. 당연히 자신의 연주에 열과 성을 다하게 되지요. 게다가 저희는 연주자 바로 코앞에서 연주를 감상하잖아요. 얼굴 표정, 손놀림…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감동의 폭이 다르죠.”

돌체 음악회의 입장료는 1만원이다. 커피는 무료다. 연주회가 없는 날에는 5,000원만 내고 커피나 차를 마음껏 마시며 음악을 들을 수 있다. 9년 동안 한번도 오르지 않은 가격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따로 갖고 있는 김대표는 “처음엔 나 혼자만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젠 다 틀렸다”며 허허 웃었다.

“일산에 사는 분들이 절반쯤 오시고, 나머지 분들은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 오세요. 이번에 돌체 음악회 500회를 맞으면서 후원회까지 결성됐어요. 이제는 이곳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거죠. 저는 이제 빠져 있을 겁니다.”

넉넉지 않은 재정에도 불구하고 일산의 ‘돌체’를 클래식 명소로 만들어놓은 김대표. 그는 요즘 “마크 레빈슨 앰프에 인피니티 스피커를 물려서 말러나 부르크너의 교향곡을 주로 듣는다”고 말했다. 돌체가 문을 여는 시간은 낮 12시 이후부터 밤 11시까지. 오는 9일 저녁 8시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브람스의 ‘소나타 3번 d단조’와 비탈리의 ‘샤콘느’, 슈베르트의 ‘론도 Op.70’,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을 연주한다. 10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우예주가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소 전곡 연주를 선보이고 신동헌 화백이 해설한다. (031)902-4953

〈글 문학수·사진 박재찬기자〉

1 Comment

  1. 래퍼

    2006-12-09 at 06:02

    끄응..그 곳에 가고 싶다..
    탈출을 감행해야 하나..
    고민..고민..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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