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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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

테너 엄정행 선생님의 강의를 두 주째 들었습니다.

첫 주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꿈꾸는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 그리고 살아오면서 우리가곡을 엄정행 선생님의 목소리로

얼마나 많이 들어왔습니까?

특히 엄정행선생님이 부르는 목련화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고

온 국민 애창하는 노래이다 보니 국민의 테너가수이십니다.


요즘도 새해가 되면 신년음악회를 합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도 하고 예술의 전당에서도 자유롭게 하는데

오래전엔 청와대 안에 있는 영빈관에서 했나봅니다.

대통령 내외분과 삼부요인 그리고 주한외국 주요 인사가 모여서

유명 음악가와 오케스트라를 초청하여 신년을 축하하는데

그 분위기가 얼마나 경직되었는지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저녁 일곱 시에 시작하는 음악회를 오전 일곱 시까지 청와대로 오라고 했다니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군사정권 시절엔

누구도 거역을 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라 오라는 시간에 가야 합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청와대 출입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교향악단과 가수에 이르기까지 한 줄로 주~욱 세워놓고는

한 사람 한 사람 세밀한 검사가 끝나야 비로소 들어갈 수 있습니다.

911 이후에 뉴욕 케네디 공항을 들어가는 중동사람이 당하는 정도의

몸수색과 소지품 하나까지 검사를 하고 영빈관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연주회 시간까지 오랜 시간 대기를 해야 합니다.

어쩐 일인지 새벽부터 서둘러 집을 나온 연주자들의 긴장과 불편은 전혀

고려해 주지를 않았답니다.

예술가의 귀함을 몰라서였는지?

저녁 일곱 시까지 기다리게 하려면 출연진을 편안한 장소에서 쉬게라도 해 주면

좋겠지만 대통령과 고관들이 앉는 곳이니까 객석 의자에 내려가 앉는 일도 못하고

리허설도 없이 연주자는 배관이 들어나 보이는 으스스 한 보일러실에서 연습을 하고

가수들은 조명실에서 지루한 공연시간을 대기 했답니다.


그러고 있는데 정복을 입은 어떤 분이 와서 거수경례를 붙이더니

"엄정행교수님 노래를 3분 안에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러시더랍니다.

총 5분짜리 노래를 3분 안에 하라면 할 수 있는 일인가요?

그래도 군사정권 아래서는 "안 되면 되게 하라" "불가능이란 없다."

이런 구호로 온 나라가 살 때니까 이유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3분 40초에 맞추었답니다.

그러니 연주자가 얼마나 긴장을 하겠습니까?

음악이라는 것이 불러서 즐겁고 들어서 행복한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부르는 분도 긴장하고 듣는 분들도 마음이 편치 안은불편한 시간입니다.

외국인들은 그나마 표정도 밝고 자세도 편안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기도 한데

우리나라 내빈들은 대통령이 계신자리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차렷 자세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으니 노래를 할 때 어려움은 말로다 표현을 못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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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으면 아무리 대단한 무대라고 해도 연주자가 노래 한곡을 부르기 위해서

12시간을 대기하라고 하면 아무도 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럴 필요도 없구요.

5분짜리 노래를 3분에 끊어 달라고 한 공무원의 무식은 인터넷에서 비난이 빗발 칠 거고

청와대 출입을 위해 몸수색을 당한 사람들은 인권문제를 초미의 이슈로 다룰 겁니다.

요즘엔 정말 사회가 좋아지고 성숙한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높은 분들 시간이 귀하면 연주자의 시간도 중요하고 개개인의

삶의 질은 다 소중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요구를 서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불필요한 권위에 휘둘리지 않는 클린하고 쿨 한 사회가 되었다고 보여 지고

나는 만족하다고 느끼는데 일부에서는 그것도 부족해서 권위라고는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현실을 많이 봅니다.



대부분 우리세대는 그런 독제 시대에도 불평하지 않고 순응해 살아왔는데

요즘엔 대통령께도 초등학생이 아웃을 외쳐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권위도 연장자에 대한 존경도 없어지고

모두가 평준화가 되어야 좋은 사회라고 하는 분들이 그런 경험을 했으면

뭐라고 할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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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행 선생님께서

정성을 다해 두 손을 모으고 온유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실 때

가까이에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바라 볼 수 있는 것이

너무도 행복해서 내가 이게 무슨 호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 영부인께서도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있으셨을까? ^^

어려운 대통령이 옆에 계시니 이렇게 평안한 행복은 못 느끼셨을 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부르는 목련화 보리밭 동심초 이런 노래들이

모두가 정겹고 가슴에 울림을 만들고 맑은 영혼을 깃들게 했습니다.

엄정행 선생님께서 살고 계시는 동네에서 "우리아파트엔 엄정행선생님이 산다."

며 동네 분들이 자부심을 느낀답니다.

누구를 만나도 먼저 인사 하고 하루에 몇 번을 만나도 먼저 고개를 숙이신다는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을 전파하는 엄정행 선생님이 너무 존경스러운 요즘입니다.

순이

2 Comments

  1. Lisa♡

    2008-09-13 at 05:39

    그러네요.
    마지막 문단이 끌립니다.
    뭔가를 알고 초탈하신 분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순이님의 행복 또한 마찬가지구요.
    행복하시죠?
    추석도 도치들과 함께 행복 나누시고
    어머님도 안부묻습니다.   

  2. 벤조

    2008-09-16 at 07:25

    두 손 모으고 노래부르는 사진,
    울컥 합니다.
    초등학교 친구 누군가가 저런 모습으로 노래를 불렀었지요.
    행복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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