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회사를 다녀온 남편이 집에 들어서면서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아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똑 같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

늦게 출근한 직원에게 직장 상사가 서류를 집어 던지며 똑 같은 말로

고함치는 장면도 텔레비전에서 보셨을 겁니다.

“뭐하는 사람이냐?” 고 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화가 난 것의

간접 표현이면서 본분을 벗어난 행동을 질타하는 뜻도 있습니다.

집안이 엉망으로 어질러 있을 때 주부의 역할을 하지 않은 아내에게

또 자녀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옷에 다림질이 안 되어 있을 때 등

남편이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을 갈등 구조를 그리는

연속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주부로서의 아내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못 함으로서 일어난 일에 대해

추궁을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모습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개인마다 맡겨진 역할이나 직업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의무를 다해야 하고 책임이 따른다고 봅니다.

아내나 남편, 자녀는 물론 자신의 위치와 직업에 맞는 역할을 서로가 서로에게

은연중 요구하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어쩌다 성적이 잘 나오면 어머니께 칭찬이라도 받을까 해서

성적표를 내밀고 “엄마 나 잘했지?” 라고 물으면

우리 어머니는 "해주는 밥 먹고 그까짓 공부도 못하냐? 남은 힘든 일도 하는데."

이러시면서 공부하는 것은 아주 쉬운 것으로 치부하셨습니다.

그때는 서운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 밑에서 해주는 밥 먹고

공부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때 인 것을 알겠습니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하던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정말로 공부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대게는 공부라면 치를 떨지만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본분입니다.


피아노 연주하는 선생님께 “피아노 연주하는 것이 좋은가?” 여쭈었더니

“지루하지 않고 늘 행복해 하면서 연주한다.”고 하시는군요.

나는 콩나물 대가리가 그려져 있는 악보가 그림으로 보이지만

선생님은 악보를 읽으면서 연주하는 모습이 활기차 보였습니다.

바이올린리스트 장영주씨도 그렇지만 첼리스트 장한나씨도

연주할 때 보면 얼굴 표정이 쉼 없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의 몰입이 그대로 얼굴에 들어납니다.

엄의경 선생님도 연주를 하면서 설명을 곁들이실 때

“내가 좋아하는 곡”이라고 소개한 곡은 더 심취해서 연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영화가 성공하는 필수 요소로는 폭력과 섹스가 적당히 녹아있어야 한답니다.

그 비유를 들어서 베토벤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로 연주 되다가도

어느 순간 감적의 폭발이 느껴지고 어떤 부분엔 피아노를 부실 듯

강렬하게 폭력적으로 연주를 해야 할 때가 있답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쇼팽은

감정의 격정적인 순간에도 아주 유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그런지 쇼팽의 당대에는 베토벤이라는 거장의 그늘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사후에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으면 시인이 아니더라도 맑고 고운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쇼팽의 피아노곡에는 감정의 폭력이 없어서 더욱 좋습니다.

쇼팽의 맑은 피아노곡을 들으면 맑은 정신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건반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피아니스트의 손을 보면서 듣는 연주는

저절로 가슴이 뛰는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연주자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술을 보는 것 같습니다.

왼손이 피아노 건반 왼쪽 끝부분을 누를 때 나는 저음의 깊고 우울한 느낌과

오른손의 높고 경쾌한 느낌이 어느 땐 둔탁하게 어느 땐 날카롭게 마음을 두드립니다.

팔을 교차 시키면서 왼손으로 높은 음을 낼 때도 있고

오른손으로 낮은 음을 잠시 내기도 하면서

바쁜 손놀림으로 흰건반과 검은 건반을 골라 음을 내는 것이

나로서는 신기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쇼팽의 피아노곡을

그것도 소슬한 가을밤에

보고 듣는 쇼팽의 녹턴은 호사스럽고 벅찬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도 베토벤의 장인정신 또한 좋습니다.

나는 음악적인 것에 관해서 아는 것이 없지만

설명에 의하면 협화음이나 불협화음이나 간단한 음 하나 가지고도

교향곡 하나를 써내는 대단한 장인 정신이 베토벤 음악에는 있다는 군요.

"장인" 그러면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남다른 아름다운 표현을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야말로 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입니다.

누가 베토벤에게 “당신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물으면

“ 작곡갑니다.” 라고 당연하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겠지요.


제목을 이상하게 잡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웃에 사는 60세가 거의 다 된 아주머니가 안색이 좋지 않고

살이 쪽 빠진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의외의 모습에 놀라서 왜 그러신가 물었더니 남편과 이혼소송 중이라고 하시는군요.

육십이 다 된 나이에도 남편에게 맞는데 얼마 전에는 손자 손녀가 보는 앞에서 맞아

병원에 한 달간 입원했다가 퇴원하셨다고 합니다.

물리적인 폭력도 못 견딜 노릇이지만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 앞에서 남편에게

매를 맞는 일은 죽는 것 보다 더 힘든 좌절이 아니겠습니까?

집안일이든 밖에 일이든 잘 안 되는 것은 아내 탓으로 돌리고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냐?” 라고 하면서 트집을 잡고 때린답니다.

아내가 무소부지(無所不知) 한 神도 아니고 어쩌라고 그러는지 모른답니다.

아버지의 폭력에 어머니가 평생 시달리는 것을 봐온 자녀들이

변호사 비용을 대 주어서 소송을 시작하긴 했는데

법원 출두 날자가 다가오자 가슴이 뛰면서 잠을 한숨도 못 자고

고통가운데 있다고 하시는군요.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 라고 묻는 말 속에

그렇게 큰 폭력이 숨어 있는 지 몰랐습니다.

누가 나에게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을까 겁나네요.

순이


3 Comments

  1. 김진아

    2008-10-10 at 08:49

    이혼심리끝난후에..많이 아프실거예요..
    십수년의 마음의 아픔이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겠지만,
    든든하게 받쳐주는 자식들이 있으니..
    그나마 복받은 분이세요..
    ..

    베토벤과 바흐의 곡을 주로 많이 들었어요..
    리사님의 쇼팽이야기에..
    순이님의 이야기..
    올 가을엔, 쇼팽을 만나봐야 할가봐요..

    고맙습니다..   

  2. Lisa♡

    2008-10-10 at 14:53

    순수한 진아님.
    순이님.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구요?
    행복바이러스 전도사입니다.
    라고 대답하면 때릴 거죠?   

  3. 데레사

    2008-10-11 at 06:39

    누가 제게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뭐라고 할까요?

    심심하고 너무 너무 호기심이 많아서 온갖것에 다 손 대보고
    다닌다고 말해야지요. ㅎㅎ

    순이님. 반갑습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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