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 보다 더 엽기적인 오페라 살로메

클래식이라고 하면 고고하기만 할까요?
고전은 늘 차분하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정화되고 좋은 감정만 생긴다고 생각한 것은 오해였습니다.
우리가 클래식으로 분류하는 오페라지만 정말 눈 뜨고 보기 어려운
끔찍한 장면이 나오는 것이 살로메입니다.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를 비난했는데 이건 막장을 더 넘어서는 내용과
광경이 나옵니다.
그것도 20세기 초에(1905년) 공연된 내용이니 앞서간 천재적 예술가의
광기를 보는 듯 끔찍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대본에 리하르트 스트라우스가 작곡한 오페라 "살로메"는
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 속에 살로메를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세례자 요한입니다.
불어로 살로메를 쓴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 사람으로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시키던 때라
동성애로 감옥을 다녀오기도 한 남색한입니다.
요즘에야 호모나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감옥에 가는 일이 없지만
20세기 초엔 남색한을 엄벌에 처했다는 군요.

유미주의(탐미주의) 라고 하는 것이 오스카와일드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는데
정신 보다는 감각을 내용보다는 형식을, 현실 보다는 공상을 중시하고
아름다움을 진실함이나 선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때로는 악에서까지 미를 발견하는
것이라 맨 정신으로는 그들의 탐미주의에 동조하지 못합니다.
초현실주의나 환각적인 내용의 시들이 유미주의에 속하는데
사회적 윤리적인 면에서 충돌하게 되어있습니다.

살로메 하면 유혹적인 살로메의 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춤이 아름다울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기 쉬운데
임산부나 마음이 약한 분은 절대 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시다 시피 헤롯은 형을 죽이고 형수를 아내로 차지해 살고 있으면서도
계부이긴 하지만 자신의 딸인 살로메를 원합니다.
형의 아내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그의 딸마저 끈질기게 유혹합니다.
살로메 또한 근육질의 사내인 감옥에 갇힌 요한을 보자마자 그의 육체에 반합니다.
요즘 막장드라마에 대한 비난이 심하지만 살로메는 그 도가 더합니다.
선지자 요한은 헤롯과 헤로디아의 불륜을 비난하다 감옥에 갇히는데
엄마와 계부를 욕하는 요한에게 육욕이 끓어오르는 것은 오스카 와일드가 아니면
생각해 낼 수 없는 퇴폐의 극치입니다.
나 어린 처녀가 처음 본 남자의 육체에 반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지 않겠어요.
성경에는 그렇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엄마인 헤로디아의 사주를 받아서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선정적으로 오스카 와일드가 각색을 한 것이지요.
작은 모티브를 가지고 그렇게 엄청난 막장 오페라 대본을 쓴 분이
유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입니다.

세례요한이 후에 오실 예수님을 알리면서 헤롯과 헤로디아의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를 비난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것 까지는 비슷합니다.
요한을 추종하는 무리들에게 반발을 살까 두려워 헤롯은 반대파들이 죽이라고
요구하는데도 죽이지 않고 둡니다.
요한을 가장 미워한 사람이 헤로디아었는데 이 여자는 남편을 죽이고
시동생을 차지해 살고 있는 것을 비난하는 요한이 끔찍하게 싫었습니다.
요한을 죽이기를 가장 원하는 사람은 살로메의 어미인 헤로디아입니다.
헤롯이 자기의 딸인 살로메를 탐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살로메를 이용합니다.
헤롯의 생일에 연회에서 살로메가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자,
기분이 좋아진 헤롯이 살로메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노라"고
맹세를 합니다.
그러자 살로메가 헤로디아가 시키는 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은쟁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라고 청합니다.

헤롯이 살로메가 원하는 그 어떤 소망이라도,
비록 그것이 자기 왕국의 반일지라도 들어주겠다고 맹서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살로메는 유명한 "일곱 베일의 춤"을 관능적으로 춥니다.
살로메는 한 겹씩 베일을 벗어 던져버리고 거의 나체가 된 채 호색적인
왕의 발밑에 쓰러집니다.
요염하고 음탕한 춤의 선율이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넋이 나간 헤롯이
그녀에게 원하는 바를 묻습니다.
살로메는 요한의 목을 원하고 헤롯은 그것만은 안 된다고 하지만 이미
약속을 한 이상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쟁반에 담겨온 요한의 머리를 안고 피 범벅이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합니다.
살로메는 은쟁반에 담겨져 나온 요한의 머리를 잡고
마치 요한의 머리가 살아있기나 한 것처럼 자기의 연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매우 퇴폐적인 몸짓으로 춤을 추며 욕정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절정에 이르자 그녀는 죽은 요한의 입술 위에 열정적인 키스를 퍼붓습니다.
살로메의 광기에 놀란 헤롯은 살로메를 죽이라고 하고 극은 끝이 납니다.

죽은 사람의 목이 등장을 한다든가
하얀 속옷이 피로 물들 정도로 죽은자의 머리채를 잡고 뒹구는 모습
처녀인 살로메가 목이 잘린 요한 입술에 키스하는 것 등
악마적 유미주의는 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사람을 기분 나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살로메는 그 퇴폐적인 탐미주의의 모델로 지금도
많이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입니다.

천재와 광기를 넘나드는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어록을 첨부합니다.

*천박함이야말로 최고의 악덕, 몸으로써 안 것만이 진리요 진실이다.
*탈취하는 것보다는 구걸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
그러나 구걸하는 것보다는 탈취하는 편이 더 기분이 좋다
*평론가의 의견이 아무리 갈라지더라도 예술가는 자기 자신과 일치한다.
*남자는 늘 여자의 첫째 애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허영심이다.
여자는 보다 더 빈틈없는 본능을 갖고 있다. 여자가 바라는 것은 남자의
마지막 애인이 되는 것이다.
*남자란 일단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날엔 그 여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주지만,
단 한 가지 해주지 않는 것은 언제까지든지 계속해서 사랑해 주는 일이다.
*남자와 여자와의 사이엔 우정이 있을 수 없다. 정열·정의·숭배·연애는 있다.
그러나 우정은 없다.
* 노년의 서글픔은 그들이 늙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지요? ^^

순이

3 Comments

  1. 데레사

    2009-12-03 at 23:49

    마지막의 오스카 와일드의 어록이 재미 있습니다.

    노년의 서글픔은 그들이 늙었다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는데 있다는 말,
    바로 날 두고 하는 말 같네요. ㅋㅋ   

  2. mutter

    2009-12-04 at 01:28

    순이님 글 잘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 부분에서 의문나는게
    있었는데 이렇게 해석하니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드네요.
    데레사님, 젊다고 생각하는게 훨씬 좋지요. 영원히 젊은 언니로 화이팅!!입니다   

  3. 벤조

    2009-12-04 at 07:32

    저도 데레사님과 동감.
    살로메가 그렇게 기괴한 오페라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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