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 향을 피워서 잠을 청해 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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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모리를 향해 출발 하던 첫 날
즐거운 여행을 가기위해 일찍 일어났지만
이른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은 나에겐 큰 고통입니다.
잠을 만족하게 못자서 무거운 눈꺼풀을 하고
전날 싸놓은 짐을 끌고 공항 리무진을 탔습니다.
나만 부지런한 줄 알지만 리무진 속에는 낮 시간에 탓을 때 보다
오히려 승객이 많았습니다.

이른 시간에 잠을 깨어 집을 나온 탓에 의자에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집니다.
비행기 승무원 차림의 숙녀는 출근중인가 본데 내가 앉은 통로 옆자리에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받느라 손가락이 분주합니다.
그걸 보다가 잠시 졸았나 싶은데 사람들이 다 내립니다.
"벌써 김포공항이네 한숨만 더 자야지, 일산교 다리가 개통되어 그런지 빠르네…"
속으로 생각하면서 다시 의자에 깊숙하게 몸을 굽히는데 기사분이
차를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소리를 지릅니다.
"안내리세요?"
"저 인천 공항 가는데요?"
"여기가 인천공항입니다."
"그래요? 저는 여기가 김포공항인줄 알았어요."
무슨 인천공항을 눈 깜빡 할 새에 오나…..
혼자서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내리고 보니
한정거장 전에 내렸으며 친구들과 약속 한 장소에 바로 갈 수 있었는데
한정거장 더 가서 내리는 바람에 가방을 끌고 공항 동편 끝에서 서편 끝으로
비몽사몽간에 한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일산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긴 합니다.
기사분이 내 가방을 짐칸에서 발견했으니 인천공항이라고 내리라고 했지
의자 깊숙하게 고개를 박고 잠이 든 나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일산을 돌아 인천공항을 다시 갈 뻔 했습니다. ^^

여행 중에 친구들은 각자의 소질을 살려 친구들에게 배려를 하는데
나는 바쁘다고 친구들이 많이 봐 주지만 그나마 쓸모 있을 때가
건강의 문제를 가진 친구를 돌보는 일입니다.
친한 친구들과 가지는 작은 모임이지만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는 늘 필요합니다.
돈이 많은 친구는 기금을 충분히 내고 요리를 잘 하는 친구는 먹을 것을 해 가지고 오고
선생님인 친구는 리더를 하고 잘 웃기는 친구는 웃음을 주고
영어나 일어를 잘하는 친구는 통역을 합니다.
계산을 잘 하는 사람은 회계를 맡아 합니다.
나는 몸이 아프거나 예민하거나 잠을 못자는 등
건강의 문제를 가진 사람과 한방을 쓰게 됩니다.
지난번 여행에서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투병을 하다가 회복기에 든 친구와
한방을 쓰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건강 염려에 대한 문제를 나누었고
이번엔 불면증이 심한 친구와 한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는 잠이 많은 사람이라 잠자는 것을 즐깁니다.
아침형인간이라야 성공을 한다고 얘기를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잠을 덜 자가면서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젊을 때는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졸리면 자야했거든요.
많이 싸워보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싸우다가도 배고프면 "밥 먹고 합시다." 하고
나는 "일단 자고 나서 연장전을 합시다."이런 스타일이라
잠 때문에 부부싸움도 그다지 심하게 하질 못했습니다.

잠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럽지 않는 부자라 불면의 고통을 잘 모릅니다.
이번에 잠을 못자는 친구와 한방을 쓰고 보니 내가 이론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불면의 고통이 심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불면증 친구와 한방을 썼던 사람이
도대체 잠을 못자서 여행이고 뭐고 하나도 즐겁지 않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은 터라 불면증 친구의 행동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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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방에 두 사람 따로 따로 요와 이불을 펴 놓았기에
창가 쪽 이불에 내가 누웠고 친구는 화장실 가까운 쪽에 눕게 했습니다.
나는 아침잠을 설치고, 온천 했겠다, 잘 먹었겠다 ,친구들과 수다 떠느라
하루 종일 에너지 소모가 많았겠다, 잠은 저절로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데
친구가 부스럭 거리더니 초를 켭니다.
물론 깡통 같이 생긴 양초라 그 속에서만 타겠지만 다다미방에서
촛불을 켜는 것은 좋지 않고 그 냄새 또한 나는 싫었습니다.
친구는 촛불을 켜놓고 나에게 얘기합니다.
“이건 라벤더 향인데 잠을 못자는 사람 머리맡에 켜 놓으면 잠이 잘 온데
그래서 저녁마다 이걸 피워“
"그러니? 그런데 여기가 다다미방이라 불조심을 해야겠다.
혹시 잠결에 넘어트리면 불 날 염려가 있으니…"
"아니야 내가 자기 전에 꺼야지."
"그러다 그냥 잠이 들어야지 잠들기 전에 끄고 자려고 신경 쓰면 잠이 들겠니? ㅎ"

잠시 후에는 성당에 다니는 친구라 손에 묵주를 들고 돌립니다.
나는 잠속으로 빠져드는 정신을 겨우 수습하여 친구의 하는 양을 누워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땅치 않는지 손에 든 묵주를 내려놓고 보온병에 담긴 물을
컵에 따라서 국화차를 타서 마십니다.
국화차가 잠을 잘 오게 한다는 군요.
그래도 안 되니 가방을 뒤져서 약을 찾습니다.
무슨 약을 먹는지 봤더니 안정제 아티반입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한 시간도 훨씬 더 되었는데 약이 있으면 미리 먹지 왜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마지막에 약을 먹느냐고 했더니

약을 먹으면 해롭다고 해서 되도록 안 먹으려고 해서 그런답니다.
어느 땐 라벤더 향기가 나는 초를 켜 놓으면 잠이 오기도 하고
국화차를 마시거나 묵주를 돌리다 잠이 들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잠이 안 드는 때는 아티반 두 알을 먹어도 잠을 못 잔답니다.

그렇게 잠이 들려고 애를 쓰는 사람을 두고도 친구가 약을 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친구는 약을 먹고도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다고 하면서
아침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니 허우적거리며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러고는 오전 내내 잠에 취해서 멍해 보이고 몸이 늘어지고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둘째 날 저녁부터는 잠을 들기 위한 작전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잠을 부르기 위해 라벤더 향 촛불을 켜고 묵주를 돌리고 국화차를 마시고 마지막에 약을

먹을 것이 아니라 앞에 과정을 다 생략하고 아티반을 초저녁에 먹고 자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녁 식후에 바로 수면제를 먹으면 두어 시간 후에는 잠이 오니까
밤에 푹 자고 아침에 일찍 깨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어차피 먹을 수면제면 해로울까 걱정하지 않고 먹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잠을 못자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몸이 더 괴롭고 아프니까
약을 먹고라도 쉬어 주는 것이 몸에는 더 좋다고 설득했습니다.
수면제를 먹어서 해로운 것 보다 잠을 못자고 고통을 받는 것이
훨씬 몸에 해롭지 않겠어요?

잠자기 작전을 그렇게 했더니 잠을 훨씬 많이 잘 자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하면서 오히려 잠을 쫓는 바람에 잠이 드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고 활동할 시간에 졸려하는 것이 덜 했습니다.
집에 가서도 잠 때문에 고통을 받으면 초저녁에 수면제를 먹고 자겠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일정한 시간에 잠드는 습관을 들이면 약 없이도 잠을 잘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잠을 자려고 몹시 애쓰는 친구를 보면서 불면의 고통을 실감했습니다.
잠들기 위해 라벤더 향과 국화차를 매일 동원하는 배우자가 있으면

함께 잠 못들고 힘들 것 같습니다.

잠을 잘 자는 것도 큰 복에 속합니다.

순이

4 Comments

  1. 데레사

    2010-02-17 at 06:34

    그럼요. 잠을 잘자는것 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을라구요.
    젊어서 저도 잠이 너무 많이 와서 애를 먹었는데 나이 먹어가면서
    차차 잠이 없어지더라구요.
    한 5년 정도 그러고 나니 이제는 달인이 되어서 그러거나 말거나
    안오면 놀고 오면 자고 그러고 지냅니다.

    그 친구분의 고통, 이해 합니다. ㅎㅎ   

  2. 리나아

    2010-02-17 at 09:10

    이해하구말구요,,,,,ㅎㅎ
    `간혹.? 아니 종종.. 나와 비슷하네~~`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3. 운정

    2010-02-18 at 05:51

    잠이 않오면 책을 봅니다.
    그것도 않되면 우유를 한컵 따끈하게 해서 마십니다.
    그럼 잠에 쉽게 들어요…

    잠 않오는것도 노년의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4. 리나아

    2010-02-18 at 08:42

    맞아요 갱년기 이후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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