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을 때 가끔 기시감에 시달립니다,
시달린다는 말은 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그 음악을 오래전 어느 땐가
내가 듣고 감동했었는지? 무언가 흡족하지 못했던 아쉬움 같은 느낌!
아니면 어디론가? 어느 장면으로 생각은 달려가게 됩니다.
DVD로 보면 펼쳐진 화면에 정신이 팔리게 되어 좀 덜하지만
CD로 음악만 듣게 되면 영락없이 그렇습니다.
나는 전생이 있다면 어느 음악이 연주되는 궁정의 하녀였을까?
이런 생각을 제법 진지하게 합니다.
그러면 궁정의 음악을 맡은 연주자가 아니고 왜 궁정의 하녀 일까?
음악에 영 소질이 없는데 듣는 것만 좋아하니까 그럴 것 같다는 추리입니다.
만약에 음악을 연주하던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음악에 소질이 없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피아노를 비롯하여 다룰 수 있는 악기는 한 가지도 없고
노래도 못하고, 악보도 제대로 읽을 줄 몰라서 음악하고는 친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에 천착하는 이유를 따지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녀 노릇이나 제대로 했을까 싶게 커튼 뒤에 숨어서 귀족을 위해 연주되는
음악을 훔쳐 듣다가 늘 흡족하게 듣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을까?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
기시감(déjà vu)은 예전에 겪은 것 같은데 그것이 언제 어디서였는지를
확실히 기억해내지 못하는 묘한 기분을 말합니다.
이 용어는 "이미 경험한" 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 어에서 유래하였는데
정신과 의사들은 “현재의 경험과 불분명한 과거의 유사성에 대한 인지적으로
부적절한 인상” 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학적 설명은 이런 묘한 기분을 가질 때 느끼는 답답함과
신비스러움을 완벽하게 해소해 주지는 않습니다.
내가 느끼는 기시감이 정신적인 병리기전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좀 심한 것은 있습니다.
내가 수요일 오후 일곱 시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도착이 되려면
여러가지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환자가 몰리면 그 시간에 몸을 빼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고
일산에서 광화문까지 가는 시간도 한 시간을 잡아야 합니다.
버스를 타는 시간만 왕복 두 시간 버스 대기 시간 정류장까지 오가고 하다보면
두 시간 강의를 듣기 위해 세 시간을 길에서 소모하고
수요일 저녁 시간은 세종아카데미를 위해 쓴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세종아카데미가 강의를 시작한 이래
해외에 간다거나 하는 때 한두 번의 결석을 빼고는 기를 쓰고 들었습니다.
주일날 예배 시간을 어기지 않듯이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점방 상황이 몹시 복잡하여 자리를 뜰 수 없을 때 초조해 지는 마음은
마약 중독자가 아편을 찾는 그런 불안과 비슷합니다.
그 시간이 너무 좋기 때문에 그러기도 하겠지만
어울리지 않게 음악에 천착하는 모습이 어느 땐 우습기도 합니다.
이번 학기에는 정준호 선생님의 "문학과 클래식"을 듣습니다.
바흐에서 토마스만까지, 셰익스피어에서 스트라빈스키까지
고대 서양음악의 탄생과 더불어 계속되어 온 "말이 먼저이냐? 음악이 먼저이냐?"
하는 논쟁을 압축해서 살펴보는 강좌입니다.
"음악과 말이 하나이며, 음악이 곧 언어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견디며 인간의 가치를 지킨 예술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문학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음악으로 표현한 작곡가들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고 하는 이번 강의를 제대로 잘 듣는 다면
나도 음악에 대한 헛헛함이 조금은 달래 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음악에 무지한 사람의 리뷰가 되겠지만
정준호 선생님의 강의를 이렇게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준호 선생님은 독문학을 전공한 분인데도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 코리아"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프리랜서로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KBS FM 실황음악을 매일 밤
10시 진행하고, 음악과 문학과 영화 및 미술을 망라하는 여러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분으로 보여 집니다.
우리 시대에 클래식 음악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한국영화 "복면달호"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하는 감각 있는 분 강의라
저도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정준호 선생님 저서로는 작년에 발간한 "이젠하임 가는 길"
을유문화사 2008.02월에 발간한 “스트라빈스키”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 등이 있습니다.
정준호 선생님 조선 블로그 주소
http://blog.chosun.com/hanno21
순이
데레사
2010-02-25 at 07:50
저도 노래도 못부르고 피아노는 조금 흉내만 낼줄 알고
그러면서도 듣는거는 즐기는데 하녀였으리라는 생각까지는 안해
봤거든요.
그래서 이글 읽으면 ㅎㅎㅎ 하고 웃어 봅니다.
순이님.
열심히 다니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