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파 내 친구들도 어디선가 영화 “시” 볼까?

아침에 학교를 가다가 보면 은행이 있습니다.
지금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그 은행이 국민은행인지 농협이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은행이 있고 보도블록 가까운 곳에 은행 홍보용 게시판이 있었습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는 학교든 관공서든 은행이든 게시판 활용을 많이 했습니다.
은행이니까 당연히 저축을 하면 미래가 밝아진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여 두었는데
포스터 속에는 윤정희씨가 쪽 진 머리에 한복을 곱게 입고 지갑을 가슴께에 안고
예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등하교 길에 늘 쳐다보곤 했습니다.

남정임 문희 윤정희씨 이 세분이 내가 여학교 다닐 때 트로이카로 불리면서
은막의 여왕으로 전성시대를 구가했습니다.
우리 친구들도 무슨 파가 있었는데 그 파 이름이 웃기게도 남정임파 문희파 윤정희파 이랬습니다.
난 무슨 파에도 속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속했다면 윤정희 파에 속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나도 어린 마음에 윤정희씨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파라고 하면 조직을 연상하실 건데 사실 촌에 사는 여중생들이
조직을 결성해서 뭐 할게 있겠습니까?
그냥 어울려 노는 친구들끼리 아니면 통학거리가 같은 이웃에 사는 사람들 끼리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지요.

여학생 때는 손거울을 하나씩 들고 다니잖아요?
손거울 한 면엔 거울이 달려있고 뒷면엔 문희나 남정임 윤정희씨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내 친구는 문희를 그렇게 좋아해서 문희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문희처럼 웃으려고 하고
단발머리를 문희 스타일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20100524_212916_cde54d1f6eac465dc29ea18f1cc0ae30.jpg 20100524_212920_853b31a4349520d111d6f5239398a3.jpg

그렇게 아름다웠던 여인 윤정희씨도 이제는 세월을 많이 지나온 것 같습니다.
그분의 나이가 67이 되셨더군요.
배우답게 곱게 나이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세월을 건너 띄어 20여년 만에 스크린에서 보니
세월과 함께 시들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릿했습니다.
10여년 후엔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생각하니 당연한데도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나야 평생 외모를 내세워 유익을 본 적도 없고 외모로 승부를 걸어 본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숨고 싶어지는데
그 아름답던 세월이 밀려나고 노년에 접어들어 주름진 얼굴을 대중에게 보인다는 것은
배우로서는 대단한 용기이고 훌륭한 것 같습니다.
미국의 어떤 여배우는 중년에 들어서자 모든 활동을 접고 은둔을 하다가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첫사랑의 연인을 그래서 나이 들어 만나면 환상이 깬다고 하는 가 봅니다.

일 년에 영화를 한두 편 보는 것이 고작인 사람인데
일요일 밤 윤정희가 나오는 "시"를 보러갔습니다.
인터넷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일산에서 하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랜드 백화점에서 저녁 늦게 2회 상영하는 것이 있어서 겨우 보게 되었는데
관객이 큰 극장 안에 열 명이나 될까?
관객이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웬만큼 화끈하고 자극적인 것 아니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관객에게
영화"시" 는 재미의 요소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쩌면 지루하고 평이한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멋내기를 좋아하는 할머니가 핀트가 맞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 입니다.
집에서 잠이나 잘 껄 속으로 후회를 하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뭐 영화가 그래? 잠 만 손해 봤잖아
이러며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영화의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김용택 시인의 모습 할머니가 엉뚱한 시심을 찾아다니는 모습
손자가 6명의 친구들과 여학생 한명을 성폭행해서 그 여학생이
물에 빠져죽었는데도 반성이나 후회를 하지 않는 여드름난 중학생의 모습
중풍 때문에 몸이 자유롭지 못해 간병인에게 의지해서 목욕을 하면서도
남자로서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환자
시 낭송회…..이런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필름이 돌아갑니다.

할머니는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예민한 여성입니다.
소녀 같은 취향이고, 꽃 한 송이를 봐도 감탄하고.
옷도 예쁜 색으로 꽃을 수놓아서 자기만의 옷을 만들어 입고,
외출할 때는 항상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두르고 아름답게 하려고 하고.
시적인 감성이 있고. 좁은 집 안에서 여기저기에 꽃을 놔두는,
조금은 엉뚱한 캐릭터입니다.

시간이 지나 되 새겨 보니 영화의 의미가 조금씩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어제 칸에서 각본상을 받았다는 군요.
내나라 언어로 내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영화를 보고 며칠이 걸리는데

칸의 심사위원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각본상을 줄 정도면 그 분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물론 나야 감성이 둔해서 그렇긴 합니다만
영화를 감독하고 심사하는 분들은 사물의 통찰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거의천재라고 보여집니다.
어찌 되었든 시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겨 주었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인데 현실은 죄와 고통이 늘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것을 해결하려는 방법은 각자 다르지만 시심을 찾아 마음을 부양시켜 양심을 지키는

아름다운 할머니에게서 우리의 희망을 발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문희파 윤정희파남정임파 하던 것은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팬클럽의 원조가 아니었을까?

요즘 애들처럼 인터넷 게시판이 있어서 소식을 주고 받고 공연에 가고 한 것이아니라

소극적이고 아름다운 60년대 팬클럽이었던 것 같습니다.

윤정희파 문희파 남정임파 우리 친구들도 어디선가 이 영화를 볼 것 같습니다.

순이

2 Comments

  1. Lisa♡

    2010-05-28 at 09:58

    저는 이 영화보고

    완전 감동하면서 봤는데…ㅎㅎ

    구성과 각본이 어찌나 탄탄한지..

    황금종려상 못받아서..섭하기만…ㅎㅎ   

  2. 한들 가든

    2010-05-30 at 01:44

    문희파 댕겨갑니다~~ ㅋㅋㅋ

    리사야,~~ 낸도 봤따~~머~~~ ㅎㅎㅎ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