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 파탈, 두려우면서도 매력적인 존재

남자들에게 팜 파탈은 두려우면서도 매력적인 존재인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아베프레보의 유명한 소설 마농 레스코가
프랑스 문학에서 매력적인 악녀가 본격적인 주역으로
각광받은 시발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남자를 망치는 악녀임에는 틀림없지만 매력적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아름다우면 다 용서가 되는 것일까요?
농담처럼 우리가 하는 말로 “예쁘면 다 용서가 된다”고 하는데
그 기원이 마농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팜 파탈은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의 여인”을 뜻하는 사회심리학 용어인데 모든 남자들이
숙명의 여인을 만날까 겁이 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런 운명적인 사랑을 고대하는 지도 모릅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한 번 해 보고 싶은 사랑이 여자에겐들 없겠습니까만
남자들은 예쁜 여인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운명적”이라는 말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굴레를 뜻합니다.
즉 팜 파탈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될
숙명을 타고난 여성입니다.
따라서 팜 파탈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 역시 팜 파탈의 손아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남성을 압도하는 섬뜩한 매력과 강인한 흡인력 앞에서 남성은 끝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팜 파탈의 속성이 되는 것입니다.

두 주에 거쳐 마스네의 마농을 오페라와 발레로 연속해서 봤습니다.
마스네는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유명한 작곡가입니다.
어릴 때 라디오에서 저녁 9시만 되면 타이스의 명상곡이 흐르면서
“청소년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기억이 나실 겁니다.
타이스 때문인지 마스네 작곡이라고 하면 어쩐지 에로틱 한 느낌이 먼저 듭니다.
소설 원작은 남자 주인공 그뤼의 연애심리인데 반하여,
마스네의 오페라에서는 자유분방하고 부도덕하고 아름다운 마농의 입장에서
보게 되어 팜파탈의 합리화 내지는 동정론까지 들게 합니다.
마농이 처음 남자인 그뤼를 만날 때가 15살이라니
팜 파탈이라기보다 철없는 아이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마농을 오페라와 발레로 연속으로 보면서
오래전 이문열씨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소설로 환치해도
무리가 없는 설정이고 대입할 수 있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거기서는 여주인공을 팜파탈로 그리진 않지만 미래를 포기하고
사치와 환락을 즐기며 현재를 살려는 여인에게 사로잡힌 남자의
슬픈 추락을 그린 소설입니다.
임형빈이라는 사람은 전도가 유망한 시골출신의 가난한 수재로 법관이 되어
사회적으로 성공하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학교 교정에서 서윤주라는 예쁜 여학생을 만나면서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마농에서 그뤼는 귀족의 자녀로 성직을 꿈꾸는 건실한 청년인데
마농을 만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는 임형빈과 닮은꼴입니다.
매혹적이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실을 즐긴다는 면에서
마농과 서윤주가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몇 가지 도식이 있습니다.
남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랑이 있고
여자의 희생을 끝없이 강요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대게는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여자의 이야기가 많지만
마농이나 카르멘처럼 남자를 망치는(?) 여자도 많습니다.
망친다는 것이 좀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여자가 치명적으로 예쁜 것이

늘 사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배비장전에서 보면 사랑의 증표로 생니를 뽑아 달라고 하는
여자에게 이빨을 뽑아주는 사랑에 망가지는 남자도 있기는 합니다.
치명적으로 아름답다는 이 말도 풀어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같은 여자가 봐도 "참 예쁘다." 하는 분을 못 본 것은 아니지만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 정도로 그러니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한 여자에게 목숨을 걸고 죽음과 맞바꿀 수 있는 아름다움은
어느 정도일까 상상이 잘 안됩니다.

아름답고 천진한 마농은 철없는 나이에 허영에 물든 여인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서윤주는 상처가 많은 과거 때문에
현재의 삶을 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무절재한 사람입니다.
꼭 이런 여자에게 걸려든 사람은 순진한 남자입니다.
순진(!)은 착한 것이 아니라 바보의 다른 말이라고도 하더군요.
참 순진한 사람이야! 이 말은 바보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함정을 비켜가라고 표지를 해 두었어도 못 보고 꼭 그길로 가서
빠지는 그런 부류인 것 같습니다.
어느 땐 예감처럼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막아야지 하면서도
막지 못할 때가 있는 것처럼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어디서든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혀 갖고 있지 않고 낭비와 사치가 심한 여자와
맹목적인 남자의 사랑은 불 보듯이 번히 보이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볼 때, 보는 사람은 그 위태함이 보이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것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사랑을 기대하고 꿈을 꾸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행운을 얻지는 못합니다.
소설을 읽거나 오페라나 연극 영화를 보면서
가상경험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유사한 자기 경험을 떠올리며 추억을 반추하기도합니다.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평생 가슴에 담은 채 살기도 하고
막연히 동경하며 일생을 보내거나
가상의 대상에 대한 연민을 통해 욕망을 해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랑 이야기는 예술작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합니다.
돈 조반니처럼 바람둥이 남자의 이야기도 있지만
카르멘처럼 바람둥이 여자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도 한 순진 하는 사람인데 ^^
그런 오페라나 발레를 보면서 가상 연애를 하는 것이
인생에 여러모로 유익이 되겠지요? ^^

2 Comments

  1. 이나경

    2010-12-10 at 13:11

    가상 연애는 부담이 없긴 하지만 사실적 그림이 덜 그려지는 통에 별로 실감은 덜..
    연애라는 것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지는 것이 슬픈 일이어야 하건만
    이젠 연애라는 말에 대해 나하고는 상관 없는 남의 이야기 같아서 허전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 평생을 연애하는 감정으로 산 괴테같은 사람이 때로는 부럽고 때론 신기합니다. 순이님은 어떠신지 잠간 궁금하네요. ㅎㅎ   

  2. 생각하기

    2010-12-14 at 04:48

    팜 파탈 – 되고 싶다고 하면 웃겠지요! ^^
    연애를 할 수 있다면 어디꺄지 내던질 수 있을까,,,
    누구나 한번은 일탈을 꿈꾸나봐요……………-,-
    가상연애로 만족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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