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내를 만난 것이 재앙이었던 남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A.S.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난 것은 모두 그리워만 진다.

푸시킨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법한 시 입니다
이 시의 작가 푸시킨은 러시아의 "국민 시인"이라 추앙받는 대문호입니다.
나는 이 시를 중학교 2학년 때 거울가게에서 만났습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 중간쯤 유리 액자 거울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그 즈음엔 그런 가게가 성업을 했었습니다.
카메라가 귀중품이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족사진이라도 찍으려면 사진관에 가서 찍어야 합니다.
학교 졸업 사진은 사진관 아저씨가 출장 나오셔서 그분에게 부탁을 드려 찍어서
이름과 주소를 적어 드렸다가 사진관으로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찍은 몇 장 안 되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 마루나 안방에 걸어 두는 것이
은근 유행을 하던 때라 유리가게가 번창을 했었나 봅니다.

어느 날 나름 몹시 고민이 많아서 기운을 쭉 빼고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데
거울가게에 내 걸어 놓은 액자 속에 저 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쩌면 저렇게 좋은 시가 있을까?
내 마음을 그대로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럽기조차 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하고
슬픔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온다고 하니
얼마나 희망적인지….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이라고 하니 나만 슬픈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 슬프고 괴로운 감정이 있구나….
시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즈음
나만 세상에서 젤 슬프고 고민이 많은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우리 담임선생님이 음악을 가르치던 몹시 야박한 여선생님인데
이분은 등록금을 제때 못 낸다고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출석부로 때리고 꼬집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등록금을 못 내어 상한 자존심에 선생님께 매를 맞는 서러움에
가난한 부모님과 줄줄이 이어진 어린 동생들에….
사춘기라 그렇지 않아도 고민이 많은데 괴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혼자 가득 진 듯해서 소심한 나는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하면서
서울로 갈까? ….나름 생각이 많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마음에
이시가 주는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트를 꺼내들고 쭈그리고 앉아서 시를 옮겨 적었습니다.
읽을수록 사춘기 고단한 소녀의 가슴에 딱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푸시킨의 시를 발견하고 난 후 나는 자주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이 시를 만났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가난을 벗어나려는 60년대 우리 국민에게
커다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것을 정작 푸시킨은 알지 못했겠지요.

그런 푸시킨을 요즘 들어 오페라에서 종종만납니다.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라 불리는 19세기 초에 활동한 작가입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를 연 표트르 대제의
에디오피아 출신 흑인 노예였습니다.
총명했던 그의 재능을 높이 사 표트르 대제는 그를 유학을 보내는 등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었고, 후에 귀족으로 사회적인 지위가 승격됩니다.
외할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푸시킨은 귀족학교를 다니고 학창 시절부터 문학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황실과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서 유명인사가 됩니다.
아름다운 여러 시들과 <에브게니 아네긴>을 비롯한 소설, <금계>와 같은 동화까지
푸시킨이 다루지 못한 문학 장르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러시아 민족음악가 5인방의 음악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 차이코브스키 등은 가장 러시아적인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들이 즐겨 사용한 소재들은 대부분 푸시킨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오페라를 들으면 반 이상이 푸시킨의 원작을 사용하거나
푸시킨이 직접 대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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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가 흑인이었던 관계로 그의 외모는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 왜소한 체격으로
원숭이 같다고 놀림을 받았는데 그의 아내는 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고 합니다.
푸시킨이 합석한 가운데서도 아내를 향해 남자들이 노골적으로 유혹을 하곤 했었고
아내를 짝사랑하는 남자와 결투를 벌여 마흔도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아름다운 아내가 재앙이 되었습니다.
연적의 칼에 죽지 않았으면 오래 살아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 탠데
러시아로서도 많이 아쉬울 것 같지만
마지막 서사시 “청동의 기사”에서 전제적 국가권력과 개인과의 대립 모순을 조명하고,
제정 러시아의 역사적 숙명을 제시하는 등 국가와 갈등관계가 깊어졌다고 합니다.
표면상은 연적과의 결투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의 진보적 사상을 미워하는 궁정세력이
짜놓은 함정이었다고 합니다.
푸시킨의 작품은 모두 농노제하의 러시아 현실을 정확히 그려내었고
깊은 사상과 높은 교양으로 일관되어, 러시아 문학의 모든 작가와 유파는 모두
‘푸시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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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의 아내)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시인은
자신의 문제는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를 둔 불안 때문이었는지
아름다운 여자의 허영 때문에 일어난 불행이었는지
푸시킨은 연적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연적의 칼에 죽게 됩니다.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고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었으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왔을까요?
하긴 아내의 연적과의 싸움은 참고 견딜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네요.^^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스페이드 퀸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원작자인 푸시킨이 더 마음에 들어서 푸시킨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습니다.
스페이드 퀸도 도박으로 인한 인간의 파멸에 대해 한번 써 볼만한 주제인데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감동이 희미해져서 쓸 맛을 일어버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푸시킨 이야기 재미있지요?ㅎ

순이

5 Comments

  1. 이도사

    2010-12-19 at 16:58

    아주머니에게 재미있는 것은 남편이 있음에도 뭇 사내들의 노골적인 유혹이 끊이지않았던 건가요…아니면 푸시킨이 연적에게 죽임을 당한건가요?…ㅎㅎㅎ   

  2. 대성

    2010-12-20 at 15:41

    푸시킨의 삶이 그렇게 끝났군요.
    조금 허망하기도 하고 아쉽군요.
    그의 아내는 그 때 어떤 태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 결투를 말렸어야 하는 것 아니었는지……   

  3. 벤조

    2010-12-21 at 06:38

    그러게 말예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고 오래 참으면 좋은 날이 올것을…ㅉㅉ
    뿌쉬낀보다 순쉬낀이 더 좋습니다.ㅎㅎ

       

  4. Annie

    2010-12-23 at 13:21

    20년전 제가 러시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거기 가기전에 푸시킨의 인적 상항을 미리 좀 알고 갔어야 했는데…
    님의 자세한 푸시긴 소개를 읽으니 러시아 사람들의 그분에 대한 추앙하는 맘이 대단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금계"라는것도 그분의 각품 아닌가요? 볼쇼이 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했는데? 감사합니다 푸시긴의 작품 을 다시 읽고 싶네요
       

  5. 아킬러스

    2010-12-23 at 15:03

    동서고금의 진리는 절세미인이나.호걸미남은 한사람만이 소유?하는게 바로 불공평하다는 것이지요…ㅎ..범부범생은 다 사적소유?가 허용되는 여유를 주는것이나..그 절세는 독점이 비극을 낳는 것이고.공유는 긴장속에 균형을 가는것이 아닐까?요.물론 외부적 강력한 힘(돈.권력.명예등등)의 소유자는 강력한 힘으로 독점을 유지하겟지만…그것이 무너지며..역시 공유적 관계로 복원되는것이니…푸시킨은 아마도 여자에 대하여서는 과욕이 아닌가? 그래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고 슬퍼하거나 노하지말라…고 자문햇겟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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